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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9조' 자위대 못박나…아베 죽음으로 개헌 탄력받는 여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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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개정은 자민당의 오랜 과제이며, 이번 선거의 대표 공약이기도 하다. 국민들의 뜻을 받아들여 국회에서 활발한 논의를 이끌어 가겠다."

10일 치러진 일본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11일 기자회견에서 헌법 개정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개헌을 위한 정당 간 논의 및 국민 설득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선거 이틀 전 숨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뜻을 이어가라는 국민들의 뜻을 새기겠다"고도 했다. 그동안 정치권 논의에만 그치고 실제 진전은 없었던 일본의 헌법 개정 프로세스가 본격적으로 가동될 가능성이 커졌다.

10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자민당 참의원 선거 당선자 알림판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EPA=연합뉴스]

10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자민당 참의원 선거 당선자 알림판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EPA=연합뉴스]

11일 새벽 발표된 참의원 선거 최종 집계 결과는 자민·공명 연립 여당의 압승이었다. 새로 뽑은 125석 가운데 자민당(63석)과 공명당(13석)이 76석을 얻어 이번에 바뀌지 않은 의석인 70석(자민당 56석, 공명당 14석)을 합치면 참의원 내 146석을 차지했다. 과반(125석 이상)을 훌쩍 넘긴 것은 물론 선거 전 의석(139석)을 웃도는 큰 승리로 평가된다. 투표율은 최종 52.05%로 집계됐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에 이어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도 자민당의 얼굴로 나서 승리를 이끌어내며 차후 정권 운영을 위한 안정적인 발판을 마련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특히 자민·공명당,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 등 개헌에 찬성하는 이른바 '개헌 4당'이 개헌 발의 정족수인 3분의 2를 크게 웃도는 의석을 차지했다. 일본유신회가 12석을 가져가 전체 의석수를 전보다 6석 많은 21석으로 늘렸고, 국민민주당은 5석을 확보해 총 10석이 됐다. 이들의 총 의석수는 177석이 돼 개헌 발의 요건인 참의원 전체의 3분의 2(166석)를 10석 이상 초과한다.

헌법 개정, 아베 전 총리의 '숙원'

현행 일본 헌법은 1947년 5월 3일 시행돼 올해로 75주년을 맞았지만 제정 후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헌법 중 여러 항목이 시대에 뒤처졌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개정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일본 참의원 선거 투표일인 10일 오후 야마구치현 야마구치시에 있는 에지마 기요시 자민당 후보의 진영에서 관계자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사진이 담긴 자민당 홍보물을 벽에 붙이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일본 참의원 선거 투표일인 10일 오후 야마구치현 야마구치시에 있는 에지마 기요시 자민당 후보의 진영에서 관계자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사진이 담긴 자민당 홍보물을 벽에 붙이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개정의 핵심은 헌법 9조다. 이른바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일본 헌법은 9조에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재무장을 막는다는 의미에서 '전쟁·무력행사의 영구적 포기, 전력(戰力) 불보유' 등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9조 2항에 "육해공군이나 기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명기돼 있는데, 이 조항에 따르면 일본이 실질적 군대인 자위대를 보유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주장이 지속해서 나왔다.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해 일본을 군대를 지닌 '보통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은 8일 숨진 아베 전 총리의 숙원이었다. 아베 재임 중이던 지난 2018년 자민당은 ▶헌법 9조에 자위대 명기 ▶긴급사태 조항 창설 ▶참의원 선거 합구(合區) 문제 해소 ▶교육 환경 충실 등 개헌안 4개 항목을 정리해 발표했다.

개헌안을 발의하기 위해선 중의원과 참의원 각각 전체 의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이후 국민투표에서 과반이 찬성하면 개헌이 성사된다. 하지만 워낙 예민한 문제인 만큼 개헌파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며 개헌안은 한번도 발의된 적이 없다. 하지만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미·중 경쟁 격화 등으로 안보 불안이 커지고 개헌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 점차 높아지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개헌 문제가 이번 참의원 선거의 주요 쟁점이었던 만큼, 충분한 의석을 확보한 개헌 세력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오쿠노조 히데키(奥薗秀樹)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개헌 찬성파가 아베 전 총리의 뜻을 받든다는 명분을 들며 빠르게 개헌 분위기로 정국을 이끌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10일 일본 도쿄 자민당 당사 앞에서 시민들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0일 일본 도쿄 자민당 당사 앞에서 시민들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국민 의견은 찬반 팽팽  

하지만 과정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개헌 세력 가운데 이번 선거 공약으로 '헌법 9조 개정'을 내건 당은 엄밀히 말하면 자민당과 일본유신회뿐이다. 자민당은 헌법 9조에 자위대 명기, 일본유신회는 9조에 자위대를 명확히 규정하겠다고 공약했다.

공명당은 헌법 개정이라는 큰 틀에는 찬성하지만 9조 1항과 2항을 견지하겠다는 입장이며, 국민민주당은 "9조에 자위대 행사 범위와 자위대 유지·통제에 관한 규정 등을 어떻게 넣을 것인가 등의 논점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다소 애매한 태도를 보인다.

여론은 찬반이 팽팽하다. 교도통신이 지난 5월 헌법의 날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헌법 9조를 바꿀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고 답한 사람은 50%, '없다'는 48%였다. 다만 9조에 한정하지 않고 전반적으로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은 68%로, '필요가 없다'(30%)의 두 배를 웃돌았다.

개헌 필요성엔 동의하지만 단기간에 서두를 문제는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당시 조사에서 기시다 총리의 임기 중 개헌이 가능할 만큼 '개헌의 기운이 높아지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는 응답이 70%였다. 지난 6일 아사히신문이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기시다 정권에서의 개헌을 '찬성'한다는 응답은 36%로 '반대'(38%)보다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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