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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초 고민없이 음모론 믿어"…세계가 팩트체크 위해 모였다

중앙일보

입력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난해 1월 6일 대선 조작을 주장하며 미국 의회로 난입하던 모습. 지난달 오슬로에서 열린 팩트체크 행사에선 이런 음모론에 대한 대응 등이 주요 화두로 다뤄졌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난해 1월 6일 대선 조작을 주장하며 미국 의회로 난입하던 모습. 지난달 오슬로에서 열린 팩트체크 행사에선 이런 음모론에 대한 대응 등이 주요 화두로 다뤄졌다. [AP=연합뉴스]

“사람들은 2초의 고민도 없이 음모론을 믿는다.”
“음모론의 구조를 뒤집어 반박해야 한다.”

세계 팩트체크 기관들의 최대 행사인 '글로벌 팩트 서밋'의 참석자들이 전한 말이다. 지난 6월 22일~25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글로벌 팩트 서밋' 9주년 행사엔 65개국 504명의 팩트체커가 모였다. 3일간 이어진 컨퍼런스엔 퓰리처상 수상 역사가인 앤 애플바움과 팩트체크의 원조 격인 factcheck.org의 창립자 캐슬린 제미슨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WP의 팩트체크 에디터인 글렌 케슬러 기자 등 수십 명의 연사도 참석했다. 팩트체커들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선거조작 등으로 대표되는 음모론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퍼져나간 허위정보에 대한 대응책을 쏟아냈다. AI 기술을 활용한 자동 팩트체킹과 딥페이크 등 신기술에 대한 대응도 논의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접 찍은 영상도 팩트체크”

이번 ‘글로벌 팩트’의 키노트 스피치는 앤 애플바움이 맡았다. 애플바움은 지난 4월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했던 인터뷰를 언급하며 그 어느 시대보다 절실해진 ‘팩트체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애플바움은 퓰리처상 수상 역사가이자 미국 월간지 ‘더애틀랜틱’의 전속 기자기도 하다. 애플바움은 “우크라이나에선 이미 물리적 전쟁과 함께 정보전쟁도 벌어지고 있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접 영상을 찍어 국민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린 것 자체도 팩트체킹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애플바움은 “젤렌스키 대통령은 인터뷰 과정에서 어떠한 의전이나 예우도 요구하지 않았다”며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 자체가 러시아의 선전전을 반박하는 메시지라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또한 이와 같은 정서적 접근을 통해 “서방 국가들의 지지도 끌어낼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대국민 연설 중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하는 모습. 팩트체커들은 이런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접 찍은 영상도 일종의 러시아 선전전에 대한 팩트체킹을 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제공=연합뉴스]

대국민 연설 중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하는 모습. 팩트체커들은 이런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접 찍은 영상도 일종의 러시아 선전전에 대한 팩트체킹을 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제공=연합뉴스]

애플바움은 미국 하원의 ‘1.6 국회 난입 폭동 조사 특별위원회’에 대해서도 “거대한 팩트체킹의 일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애플바움은 “미 하원 특위는 철저히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가족과 측근, 공화당 인사의 증언을 바탕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믿는 선거조작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며 “사실을 전달하는 방법을 두고 의회가 상당한 고민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바움의 키노트 스피치를 시작으로 ‘글로벌 팩트’에선 팩트체크와 관련한 수십 개의 세션이 진행됐다. 미국 탐사보도 전문매체 프로퍼블리카의 기자인 크레이그 실버만의 ‘탐사보도 실전 강의’부터 전 세계 팩트체커 연구자들의 강연과 틱톡 등 SNS를 활용한 팩트체크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방법 등도 논의됐다. ‘FactCheck.org’의 창립자인 캐슬린 제미슨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독자의 기억에 남는 팩트체크 기사 작성 방법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음모론 빠지면 팩트체크 효과 없어”

제미슨 교수는 “단순히 특정 허위 정보가 거짓이란 제목을 달고 반박하는 것만으론 독자의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며 “제목부터 ‘실제 사실은 이렇다’라고 시작해 일목요연하게 팩트를 전달한 뒤, 거짓 주장의 반박을 덧붙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제미슨 교수는 다만 “이미 음모론에 깊이 빠진 사람들에게 팩트체크는 큰 효과가 없을 수 있다”며 “음모론에 빠지기 직전의 사람들까진 설득할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의 팩트체크 에디터인 글렌 케슬러 기자도 패널 세션에서 “팩트체크로 트럼프 지지자들의 생각마저 바꾸진 못했다”면서도 “최근엔 단순 허위정보를 반박하는 것을 넘어 왜 사람들이 음모론과 허위 뉴스에 빠지는지, 그 이면의 스토리를 반박하는 기사를 쓰려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팩트9 행사에 참석한 피터 맥킨두(오른쪽)의 모습. 이번 행사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박태인 기자.

글로벌팩트9 행사에 참석한 피터 맥킨두(오른쪽)의 모습. 이번 행사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박태인 기자.

이번 행사엔 유명 연사만큼이나 아칸소주 출신의 24세 청년 피터 맥킨두(Peter McIndoe)가 큰 주목을 받았다. 맥킨두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음모론을 풍자하려 2017년 “새는 진짜가 아니다(Birds aren‘t real)”는 가짜 음모론 운동을 4년 가까이 했던 인물이다. 맥킨두는 “미국에 있는 모든 새와 비둘기는 사실 드론이며 CIA가 심은 감시카메라가 달려있다”고 주장하며 미국 전역을 다녔다. 트위터 본사에서 새 모양의 로고를 바꾸라는 시위까지 했는데 그를 따르는 수십 명의 지지자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맥킨두는 그렇게 ‘가짜 음모론자’ 행세를 하다 지난해 NYT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주장은 음모론에 대한 풍자라 밝히며 실제 정체를 드러냈다. ‘글로벌 팩트’가 맥킨두를 초청한 것도 이런 풍자를 통해 음모론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맥킨두는 “단 2분만 찾아봐도 내 주장이 풍자이자 허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하지만 사람들은 2초도 고민하지 않고 음모론을 믿었다”고 말했다. 이어 “풍자와 웃음이 음모론과 어리석음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반박이자 대응 아니겠냐”고 했다.

이날 행사엔 AI 기술을 활용한 자동 팩트체킹과 딥페이크 영상 등의 진위 분석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팩트체크의 창시자라 불리는 빌 아데어 듀크대 교수는 “AI를 이용한 자동 팩트체킹은 팩트체크를 거부하는 독자들에게 효과적인 접근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글로벌팩트 행사는 서울에서 개최된다. [SNU팩트체크 센터 제공]

내년 글로벌팩트 행사는 서울에서 개최된다. [SNU팩트체크 센터 제공]

내년 '글로벌팩트' 서울서 개최 

내년이면 10주년을 맞은 ‘글로벌팩트 서밋’의 개최지는 다름 아닌 서울이다. 서울대의 SNU팩트체크 센터가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과 2023년 6월 28~30일 공동 주최한다. 글로벌팩트체크가 아시아에서 열리는 건 처음이다. 정은령 SNU 팩트체크 센터장은 “세계 각국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해온 팩트체크의 과거와 미래를 조망해보며, 국내에서도 팩트체크가 더욱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 센터장은 “특히 국내 팩트체크의 모범을 제시해야 할 한국 언론의 글로벌팩트 참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서울대학교 SNU팩트체크센터와 한국언론학회,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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