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어떤 상상하면 이런 작품 만들까" 팀 버튼의 세계서 영감 얻어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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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얼굴에 빨간 곱슬머리의 사내, 쪽 진 머리에 컬러풀한 의상을 한 난쟁이들, 풍선껌을 먹고 보라색 공처럼 변한 소녀, 뼈만 남은 앙상한 몸매에 과장된 속눈썹과 큰 눈을 가진 신부, 온몸에 핀이 잔뜩 꽂힌 아기…. 하나같이 기괴하고 몽환적인 인물들은 판타지·코미디·호러가 뒤섞인 이른바 버트네스크(Burtonesque·버튼 양식)를 대표하는 캐릭터들로 판타지 영화감독 팀 버튼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버트네스크 양식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으로 우울한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나타난 독일 표현주의에 영향을 받아 탄생한 감독 특유의 제작방식인데요. 비정상적이고 기이하며 왜곡된 세계가 영화와 애니메이션 속에 펼쳐지고, 그런 이미지를 영상으로 표현하여 현실의 질서를 비판하면서도 잔혹동화 같은 기묘한 아름다움을 그려냅니다.

‘판타지 영화계의 거장’ 팀 버튼은 몽환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으로 새로운 예술 장르를 개척했다. ⓒDisney

‘판타지 영화계의 거장’ 팀 버튼은 몽환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으로 새로운 예술 장르를 개척했다. ⓒDisney

그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환상적인 시각효과를 연출하는 영화 제작자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죠. 몽환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으로 새로운 예술 장르를 개척해 ‘판타지 영화계의 거장’으로 불립니다. ‘비틀쥬스’(1988), ‘가위손’(1990),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1993), ‘화성침공’(1997), ‘빅 피쉬’(2003),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 ‘유령 신부’(2005),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2007),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 ‘빅 아이즈’(2014), ‘덤보’(2019) 등 지난 50여 년간 탄생시킨 수많은 영화는 꾸준히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어요.

비현실적인 시각효과를 연출해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팀 버튼의 상상력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할 만큼 창의적이죠. 그의 풍부한 창의력은 영화뿐만 아니라 미술‧건축‧의상‧음악 등 여러 예술 분야에서 탁월한 행보를 보입니다. 특히 2012년 팀 버튼 프로덕션과 뉴욕 현대 미술관이 공동 기획했던 ‘팀 버튼 전’은 뉴욕·멜버른·토론토·로스앤젤레스·파리·서울을 순회하며 연일 매진사례를 이어갔죠.

작품 제목처럼 팀 버튼은 자신 같은 사람은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한 종족인 것 같다고 느끼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남은 종족(The Last of Its Kind), 1994 ⓒTim Burton

작품 제목처럼 팀 버튼은 자신 같은 사람은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한 종족인 것 같다고 느끼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남은 종족(The Last of Its Kind), 1994 ⓒTim Burton

이번에 새롭게 시작된 팀 버튼 월드 투어 전시의 첫 시작이자 10년 만에 서울에서 다시 열리는 ‘팀 버튼 특별전 THE WORLD OF TIM BURTON’은 지난 50년에 걸쳐 창조된 팀 버튼의 예술 세계를 폭넓게 조명합니다. 회화·드로잉·사진·영상·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매체로 구성했고, 그의 예술관을 형성한 유년 시절 작품부터 영화 제작을 위한 스케치와 캐릭터 모델, 실현되지 못한 프로젝트, 다른 전시에서 선보인 적 없는 신작까지 모두 만날 수 있죠.

한 도시에서 한 번 이상 전시를 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그가 서울을 다시 찾게 된 데에는 10년 전 한국 방문 당시 우연히 찾은 광장시장에서 먹은 부침개 맛과 시장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 등 서울에 대한 좋은 기억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고 해요. 또 존경하는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건축물에서 꼭 한번 전시를 열고 싶었는데, 자하 하디드의 유작인 DDP에서 전시를 열게 되어 무한한 영광이라고 전시 소감을 밝히기도 했죠.

팀 버튼은 아이들이 전시를 보고 그림을 그리고 싶고, 창작할 수 있는 영감을 받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Disney

팀 버튼은 아이들이 전시를 보고 그림을 그리고 싶고, 창작할 수 있는 영감을 받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Disney

전시 디렉팅을 위해 이번에 내한했을 당시 하루도 쉬지 않고 경복궁·창덕궁 등 고궁들과 이태원·서촌 등을 둘러보며 한국 문화에 큰 관심을 가졌다고 하는데요. 전시를 주최한 지엔씨미디어 전시사업팀 안현웅 과장은 “평소 여행을 하며 차기 작품의 영감을 얻는 그에게 혹시 서울이 어떠한 영감을 주었을지 기대가 됩니다”라고 말했어요.

팀 버튼은 기자간담회에서 “아이들이 저의 전시를 보고 그림을 그리고 싶고, 창작을 할 수 있는 영감을 받아갔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계속해서 창작물을 만들어갈 수 있는 그런 영감의 원천에 제 전시가 있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죠. 안 과장 역시 “팀 버튼은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의 세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풍부한 상상력과 영감의 원천을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시각으로 감상해보면 더욱 즐거운 전시가 될 것 같아요”라고 전시를 즐겁게 관람하는 팁을 줬죠.

오해받는 낙오자가 나오고 팀 버튼 특유의 우울함과 기괴함을 극대화한 작품. 무제(스테인보이의 세상) Untitled(The World of Stainboy), 2000 ⓒTim Burton

오해받는 낙오자가 나오고 팀 버튼 특유의 우울함과 기괴함을 극대화한 작품. 무제(스테인보이의 세상) Untitled(The World of Stainboy), 2000 ⓒTim Burton

이번 전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으로는 그의 큰 관심사였던 사회적으로 소외되어있지만 누구보다 순수한 존재들을 작품들에 투영한 ‘오해받는 낙오자’ 섹션이 꼽힙니다. 또 그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일정을 소화하는 중에도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메모지 또는 냅킨에 드로잉한 작품들도 재미있는 관람 요소예요.

무엇이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전시장에 들어서면 팀 버튼 감독의 시그니처인 대형 ‘벌룬 보이’와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디자인한 큰 눈알의 외계인 같은 8.5m 대형 조형 작품이 맞아주죠. 10년 전 한국에 처음 방문했던 팀 버튼은 스스로가 외계인처럼 이방인 같다는 기분이 많이 들었다고 회상했는데요. 그리고 이번에 외계인의 우주선을 닮은 신기하고도 아름다운 건축물, DDP에서 전시할 수 있게 되어 기뻤던 마음을 조형물로 표현해 봤다고 해요.

전시는 10개 주제로 나뉘어 팀 버튼의 예술 세계가 진화한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곳곳에서 드로잉 원본, 회화, 설치 작품을 빼놓지 않고 볼 수 있다.

전시는 10개 주제로 나뉘어 팀 버튼의 예술 세계가 진화한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곳곳에서 드로잉 원본, 회화, 설치 작품을 빼놓지 않고 볼 수 있다.

섹션마다 설치 작품과 매달려있는 작품 등을 독특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도 인상적이다.

섹션마다 설치 작품과 매달려있는 작품 등을 독특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도 인상적이다.

전시는 10개 주제로 나뉘어 팀 버튼의 예술 세계가 진화한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필기 노트와 드로잉 원본, 영화 데뷔작인 ‘피위의 대모험’(1985)부터 최근작인 ‘덤보’(2019)까지 직접 만든 콘셉트 드로잉, 회화 등을 볼 수 있죠. 팀 버튼의 세계관을 구석구석 정리한 것을 하나하나 눈앞에 실현한 느낌입니다. 공간과 설치 작품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도 인상적인데요. 관객들은 그림 사이를 걸어 다니기보다는, 각 섹션의 독특한 공간에서 다양한 위치와 모습으로 매달려있는 팀 버튼의 작품들을 만나게 됩니다.

전시장 한가운데 설치된 서커스 천막 안에서 오묘한 빛깔과 함께 만나는 벽면의 괴물들은 팀 버튼이 가진 세계관 중 하나를 잘 보여준다.

전시장 한가운데 설치된 서커스 천막 안에서 오묘한 빛깔과 함께 만나는 벽면의 괴물들은 팀 버튼이 가진 세계관 중 하나를 잘 보여준다.

특히 입구에서 검은 커튼을 들추고 들어가면, 어두운 체스판 바닥에 내리쬐는 시퍼런 조명 아래에 삐뚤빼뚤한 통로를 마주하게 됩니다. 마치 팀 버튼의 머릿속, 혹은 그의 집으로 초대돼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죠. 이 밖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꾸며놓은 공간, 서커스 천막 같은 원형 모양에 빙글빙글 도는 회전목마를 배치한 공간 등 팀 버튼 전시답게 독특한 분위기가 한몫하는 공간들이 시선을 끌어요.

자기에게 비추어진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빈센트의 모습. 무제(빈센트) Untitled(Vincent) 1982 ⓒTim Burton

자기에게 비추어진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빈센트의 모습. 무제(빈센트) Untitled(Vincent) 1982 ⓒTim Burton

팀 버튼의 캐릭터는 섹션 5의 이름 ‘오해받는 낙오자’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유령신부’, ‘가위손’, ‘프랑켄위니’ 등의 캐릭터들이 대표적인데요. 세상에서 동떨어진 소외된 아웃사이더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들이죠. 호감보다는 비호감에 가까운 이들은 팀 버튼 감독의 가장 큰 관심사죠. 감독은 외톨이가 되어봤을 때의 기분은 영원한 감정으로 내재한다고 말하는데요. 이들 캐릭터를 보며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외톨이의 감정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만들었던 다양한 영화의 피규어, 스토리보드 등을 전시한 ‘영화 속 주인공 섹션’, 즉석카메라를 사용해 제작한 오버사이즈 폴라로이드 시리즈도 있죠. 세계를 돌아다니며 순간순간 떠오르는 영감을 기록한 호텔 메모지와 식당 냅킨들도 보였어요. 단순히 그 위에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 그는 어떤 것을 통해서라도 머릿속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표현해 냈죠.

실현되지 못하고 중단된 필름·텔레비전·도서 프로젝트도 공개됐다. 눈과 발이 여러 개인 괴물과 꼬마의 이야기를 담은 드로잉도 눈길을 끈다. 무제(사탕 안 주면 장난칠 거예요) Untitled(Trick or Treat) 1980 ⓒTim Burton

실현되지 못하고 중단된 필름·텔레비전·도서 프로젝트도 공개됐다. 눈과 발이 여러 개인 괴물과 꼬마의 이야기를 담은 드로잉도 눈길을 끈다. 무제(사탕 안 주면 장난칠 거예요) Untitled(Trick or Treat) 1980 ⓒTim Burton

실현되지 않은 프로젝트 섹션에 있는 이 작품을 보며 ‘로미오와 줄리엣’의 괴물 버전을 상상할 수 있다. 무제(로미오와 줄리엣) Untitled(Romeo and Juliet) c.1981-1984 ⓒTim Burton

실현되지 않은 프로젝트 섹션에 있는 이 작품을 보며 ‘로미오와 줄리엣’의 괴물 버전을 상상할 수 있다. 무제(로미오와 줄리엣) Untitled(Romeo and Juliet) c.1981-1984 ⓒTim Burton

마지막 두 섹션에서는 팀 버튼의 ‘실현되지 않은 프로젝트’와 그의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팀 버튼 스튜디오’를 공개하는데요. 실현되지 못하고 중단된 필름, 텔레비전, 도서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섹션에서는 발상 단계에서 중단됐거나 감독의 의도가 반영되지 않아 차마 공개되지 못한 작업물을 보여줍니다. 1부터 10까지의 숫자를 이용해 캐릭터를 구상하고, 각각의 숫자에 스토리를 덧입혀 의인화한 콘텐트가 눈에 띄죠. 비록 공개되지는 못했지만 팀 버튼이 숫자로 어떤 상상을 했는지 엿볼 수 있어요.

팀 버튼은 자신의 작업실에서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며 미래를 계획하는 예술가입니다. 그의 작업실 책상 코르크 보드에는 새로운 신작들의 탄생 과정들이 가득 붙어있었죠. 작업 공간을 그대로 재현한 곳에서 그의 예술가로서의 삶과 정신을 느껴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 캐리커쳐 같은 작품을 실물로 만든 조형물도 전시됐다. 악마견(Devil Dog), 2014 ⓒTim Burton

마치 캐리커쳐 같은 작품을 실물로 만든 조형물도 전시됐다. 악마견(Devil Dog), 2014 ⓒTim Burton

무엇보다 영감을 얻고 싶은 사람에게 이번 전시를 추천합니다. 전시장을 나서면서 무언가 끄적이고 싶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질지도 몰라요. 팀 버튼의 작품은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빠져들어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의 작품을 보았든, 보지 않았든, 전시회장에 들어가는 순간 다양한 작품과 그림에 매료되어 빠져나오기 힘들 수도 있어요. 이 전시를 오래 간직하는 최고의 방법은 팀 버튼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 전시와 함께 그의 작품을 찾아보며 팀 버튼의 세계를 온전히 만나보세요.

팀 버튼 특별전 THE WORLD OF TIM BURTON


기간 9월 12일(일)까지(휴관일 없음)
장소 서울 중구 을지로 281 DDP 배움터 B2F 디자인전시관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8시(입장 마감 오후 7시)
관람료 성인 2만원, 청소년 1만5000원, 어린이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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