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박정호의 시시각각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지난 8일 귀국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아들을 껴안고 있다. [뉴스1]

지난 8일 귀국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아들을 껴안고 있다. [뉴스1]

줄탁동기(啐啄同機)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려면 새끼와 어미닭이 서로 안팎에서 쪼아야 한다는 불교 화두다. ‘수학계 노벨상’ 필즈상을 한국 학자로는 처음 받은 허준이(39) 프린스턴대 교수도 병아리 시절이 있었다. 서울대 물리학도였던 그는 2008년 모교 초빙교수로 온 일본 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廣中平祐)를 만나며 수학의 매력을 알게 됐다.

‘필즈상’ 허준이와 히로나카 교수
“수학의 기본은 상대방 입장 되기”
우리 정치는 국민을 뭘로 보는가

 하늘에서 떨어진 듯 엄청난 주목을 받은 허 교수는 반면에 너무나 침착했다. 수상 인터뷰는 ‘도인과의 대화’처럼 들렸다. 마흔도 안 된 젊은 학자가 맞나 싶었다. “주위 사람들 모두 배울 점이 있다” “친구들과 선생님이 롤 모델” “집안일 하고 청소하며 매일 똑같은 일상” 등,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는 선승(禪僧)마저 연상됐다.
 허 교수의 평정심은 ‘어미닭’ 히로나카 교수를 닮았다. 1970년 역시 39세의 늦은 나이에 필즈상(40세 이하로 수상 제한)을 탄 히로나카는 이를 소심(素心)이라 했다. 소심은 ‘본디 지닌 마음’. ‘수학의 달인’은 상대방의 입장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편견과 선입견이 없는 상태다. “상대방과 일체가 돼서 생각하면 상상도 못 했던 문제의 원인을 발견한다. 수학도 그렇다. ‘문제’가 ‘자기’인지, ‘자기’가 ‘문제’인지 모를 정도로 서로 융합된 상태에 이르러서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학문의 즐거움』)고 했다.

허준이 교수에게 수학의 무한한 즐거움을 안내한 히노나카 헤이스케 교수. [중앙포토]

허준이 교수에게 수학의 무한한 즐거움을 안내한 히노나카 헤이스케 교수. [중앙포토]

 사실 수학은 일상인과 거리가 멀다. 사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애면글면 문제집을 붙들고 살았던 학창 시절이 후회막급일 정도다. 한데 히로나카는 여유롭다. “인간의 두뇌는 과거에 습득한 것을 극히 일부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왜 고생해서 배우는가. 지혜를 얻기 위해서다. 전혀 배운 적이 없는 사람과 달리 최소한 마음의 준비는 돼 있지 않은가. 배우는 것은 낭비가 아니다. 많이 배우고, 많이 잊어버려라. 다시 많이 배우면 된다.”
 히로나카의 말 속엔 젊은 허준이가 들어 있다. “무명의 사람에게 더 많이 배웠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스승” “인생은 직선이 아니다. 우여곡절의 되풀이”라고 했다. 각각 시인(허준이)과 피아니스트(히로나카)를 꿈꾸다 수학자가 된 여정도 엇비슷하다.
 달관의 히로나카가 『학문의 즐거움』에서 거의 유일하게 현실정치를 언급한 대목이 있다. 사실·논리를 추구하는 수학과 달리 추정·억측에 의존하는 정치를 경계하며 1970년대 미국 최대의 정치 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을 인용한다. “닉슨 대통령은 사임 위기에서도 ‘내가 무엇을 했단 말이냐’라며 울면서 주저앉았다. 사실 그대로 공표하고 적절한 책임을 졌더라면 사임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의 권위에 안주한 희망적 관측이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하게 만들었다.” 여야 없이 사실 확인은 뒷전이고, 변명·궤변만 앞세우는 작금의 우리 정치판이 바로 겹친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정치 토양은 예전 그대로, 아니 뒷걸음친 것 같은 요즘이다. “상대편 잘못이 더 크다”며 상호 비방은 물론 내부 총질까지 마다치 않는 ‘죄수의 딜레마’에 갇힌 꼴이다.
 올봄 개봉한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가 있다. 문제 풀기에 급급한 한국 수학교육의 안팎을 다뤘다. 이런 박토에서 자라난 허 교수 또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가 아닐까 싶다. “답이 없는 문제를 풀고, 그게 맞는지 확인·증명하는 게 수학자다. 수학도 부대껴야 사랑하게 된다”는 영화 속 주인공이 허 교수를 닮아서다.
 그렇다면 이제 ‘이상한 나라의 정치가’도 나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 “초·중학교 때 한 반에 40~50명씩 있는 친구들과 알아가는 과정이 저를 성장시킨 자양분이 됐다”는 허 교수를 믿어 본다. 정치인만큼 많은 친구(국민)를 둔 직업도 없지 않은가. 국민을 핑계로 시시각각 시기하는 ‘용심’이 아닌 진정 국민의 아픈 곳을 헤아리는 ‘소심’을 기다린다. 그게 안 되면 국민은 언제든 ‘헤어질 결심’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