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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아베 사망으로 한·일 관계 흔들려선 안 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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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치테러는 용납될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  

조문 정국 능동적 대처로 대화 기반 다질 때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유세 도중 불의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세계 3위 경제 규모의 선진국 일본에서 거물 정치인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가 벌어졌으니 경악을 금할 수 없다. 해상자위대원 출신의 용의자는 “어머니가 빠진 종교단체와 아베 전 총리가 가까운 관계에 있다”고 생각해 극단적 행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의 동기가 무엇이든 정치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정치 테러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반인륜적 행위로,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비열한 범행을 저지른 용의자를 규탄하면서 전직 총리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슬픔에 빠진 일본 국민에게 위로를 전한다.

아베 전 총리는 두 차례에 걸쳐 총 8년9개월 동안 일본을 이끈 역대 최장수 총리로, 일본 우익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평화헌법 개헌과 방위비 증액을 추진했고, 위안부·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 등 주변 국가와 갈등을 빚었다. 그러나 국내적으로는 ‘아베노믹스’로 침체했던 경제를 부흥시키고 일본의 위상을 높인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2020년 9월 총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집권 자민당의 최대 파벌을 이끌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일본 국민의 안보 불안이 높아진 상황에서 아베의 사망은 일본의 우경화 흐름을 가속화할 공산이 크다. 자민당 내 강경파에 힘이 실리며 평화헌법 개헌과 방위비 증액 움직임이 강화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당초 참의원 선거가 끝나는 대로 본격적으로 대일관계 정상화에 나서려 했던 우리 정부의 계획이 일시 중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지난달 말 윤석열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네 차례나 만나면서 대화의 물꼬를 튼 만큼 모처럼 시동이 걸린 한·일 관계 정상화 프로세스가 아베의 사망으로 흔들려선 안 된다. 정부의 선제적이고 능동적인 대처가 절실하다. 아베 조문 외교가 열쇠가 될 수 있다. 최고위급 책임자를 조문 사절로 보내 일본 국민의 아픔을 달래고 대화의 기반을 다질 필요가 있다.

충격과 슬픔에 빠진 이웃 나라를 위로하는 데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아베 전 총리의 영면을 기원하며 모든 형태의 테러를 규탄한다”는 성명을 내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각각 “매우 안타깝고 비통한 마음” “충격에 밤을 새웠다”는 메시지를 낸 것은 그런 점에서 적절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주한 일본대사관 분향소를 찾아 조문할 것이라고 한다. 이를 계기로 여야 정치권은 더는 ‘일본’을 이념과 편 가르기 정치의 도구로 삼지 말고, 국익을 위한 외교의 대상으로 접근하는 공감대를 이뤄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이다. 이번 사태가 조속히 수습되고, 한·일 관계 개선 분위기도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