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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원책이 고발한다

20명 살인마도 생명권 있다? 흉악범은 인간의 탈 쓴 짐승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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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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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 유영철, 강호순, 이춘재(왼쪽부터). 배경은 대법원 앞에서 사형 집행을 요구하는 1인 시위 장면. 그래픽=신재민 기자

연쇄살인범 유영철, 강호순, 이춘재(왼쪽부터). 배경은 대법원 앞에서 사형 집행을 요구하는 1인 시위 장면. 그래픽=신재민 기자

1997년 12월 30일의 23명 집행 이후 한국에선 실제 사형이 이뤄지지 않았다. 2022년 7월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형수는 59명이다. 사형수는 있으나 사형 집행은 없는 나라로 25년을 보냈다. 그동안 공식적으로 사형제도를 없애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헌법재판소는 오는 14일 관련 헌법소원 사건 공개변론 절차를 밟는다. 헌재는 앞서 두 차례(1996년, 2010년)엔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 공개변론을 앞두고 사형제 존치를 옹호하는 전원책 변호사와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의 칼럼을 동시에 게재한다.

현재 수감 중인 사형수 중 가장 유명한 이는 유영철일 것이다. 1988년부터 2004년까지 20명의 무고한 여성과 노약자를 살해하고 시신을 절단한 ‘살인마’이다. 2004년 체포됐을 때 이미 강간 등 전과 14범이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그가 현재 대구교도소에서 살고 있다.

‘한국은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나라’가 지금의 상식이다. 천인공노할 흉악범에게도 좀처럼 사형을 선고하지 않는다. 사실상 사문화(死文化) 단계에 이르렀다. 헌재가 거듭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사형제가 폐지돼야 문명국이 된다'는 주장은 계속 나온다. 가장 열렬한 폐지론자는 종교단체다. 사라져야 할 야만이라며 사람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타인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느냐는 고상한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그동안 사형을 선고한 판사들은 모두 야만인이라는 말인가? 나는 이렇게 묻는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유영철 같은 자에게 사형 외에 어떤 합당한 형벌이 있다는 것인가?

지난해 11월 30일 서울 용산구 순교성지새남터기념성당에서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들이 세계 사형 반대의 날 기념 조명 퍼포먼스를 했다. [뉴스1]

지난해 11월 30일 서울 용산구 순교성지새남터기념성당에서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들이 세계 사형 반대의 날 기념 조명 퍼포먼스를 했다. [뉴스1]

사형제에 대한 이번 헌법소원 심판은 세 번째 받는 헌재 판단이다. 늘 뻔한 공방이다. 존치와 폐지로 갈린 양측의 주장은 언제나 같다. 언론은 '헌재 재판관 중 폐지론자가 많아서 이번에는 위헌 결정이 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려도 사형 집행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설령 윤석열 대통령이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사형 집행 의지를 갖고 있어도 정치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나 많다.

흉악범 교화 가능성 믿지 않아 

지난 2010년 5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롬브로소 박물관’ 폐쇄를 주장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민들 주장은 박물관에 전시 중인 인체 부위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한다는 것이었다. 이 박물관을 건립한 범죄학자 체사레 롬브로소(1836∼1909)는 의사였다. 그는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여러 나라 흉악범의 시신 해부에 참여하면서 “범죄인은 선천적으로 타고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른바 범죄인 생래설이다. 그는 범죄인은 두개골과 얼굴에 형태적 특징이 있다며 이를 전시하는 박물관을 만들었다.

나는 롬브로소의 범죄인 생래설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흉악범의 잔인함은 상당 부분 타고난 것이며, 이는 어떤 방법으로도 교화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칼로 사람을 찌르는 짓을 대부분의 사람은 하지 못한다. 단지 벌을 받을까 두려워서가 아니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 그러나 사악하고 잔인한 자들은 다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자신과 동등한 가치를 가진 인격체로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 잔인함은 어떤 교육으로도 순화되지 않는다. 그것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든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든 말이다. 결국 그런 ‘인간이 아닌’ 자들에게는 형벌에 대한 두려움만이 범죄로 나아가는 행동을 중지시키는 수단이 된다.

일본은 미국과 함께 문명국 가운데 사형제를 유지하는 드문 나라다. 그런데 1995년 ‘옴진리교 테러 사건’을 계기로 사형제 존폐 논쟁이 불붙었다. 일본 정부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2018년 도쿄 지하철역에서 벌어진 사린가스 테러 관련자 13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국제앰네스티는 ‘13명의 사형 집행은 전에 없던 사태다. 이로 인해 일본 사회가 조금이라도 안전해졌다고 할 수 없다’는 성명을 냈다. 여기에 주제넘은 말까지 덧붙였다. ‘사형이 집행되면서 왜 사람들이 위험한 사상을 가진 교주에게 이끌렸는지 밝힐 수 없게 됐다.’

도쿄 지하철에서 사린가스 테러를 한 옴진리교의 교주 아사하라 쇼코. 그는 사형에 처해졌다. [중앙포토]

도쿄 지하철에서 사린가스 테러를 한 옴진리교의 교주 아사하라 쇼코. 그는 사형에 처해졌다. [중앙포토]

설득력 없는 사형 폐지론 

사형제를 놓고 벌이는 싸움은 오래된 뻔한 주장의 대결이다.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늘 이렇다. 첫째, 생명권을 침해하는 반인권적인 형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흉악범들은 생명권을 주장할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이다. 나는 이들에 대한 생명권 주장은 정신적 사치라고 생각한다.

둘째, 사형을 선고한 재판에 오류가 있을 경우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수사가 완벽할 수 없는 만큼 단 한 명이라고 무고한 사람의 생명권이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판사들이 사형을 선고한 범죄자들은 이미 법정에서 어떤 오류도 존재하지 않을 정도의 엄격한 증명을 거친 끝에 사형을 선고받았다. 판사들은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하지 않기 위해 온갖 이유를 찾는다. 다시 말해 흉포한 범죄가 증명되고 사형을 선고하지 않을 아무런 이유를 찾지 못했을 때야 비로소 판사들은 사형을 선고한다. '무고한 사람 처형 가능성'은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 논리다.

셋째, 결코 범죄를 줄이는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극형에 처해질까봐 증거를 철저히 없애려고 더 심하게 범죄를 저지른다는 주장도 한다. 형벌의 목적은 범죄를 줄이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그리고 이 주장은 역으로 범죄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면 사형제를 존치시켜야 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억울한 사형수? 현실엔 없어 

반면 나처럼 사형제에 찬성하는 이들의 주장은 이렇다. 문명국의 사형수들은 사상범이나 정치범이 아닌 잔인한 범죄자들이다. 형법의 목적 중에는 위하(威嚇) 목적도 있다. 말하자면 범죄를 저질러서 얻는 쾌감보다 형벌을 받는 불쾌감이 크다고 판단하면 대개의 범죄자는 그 지점에서 범죄를 멈춘다. 과학수사의 발달로 더욱 엄격한 증명을 요하는 재판을 거쳐 사형이 선고되기 때문에 단언컨대 억울한 사형수는 없다. 또 잔인한 범죄자들은 절대 교화되지 않는다. 영화·드라마와 현실은 분명히 다르다.

2006년 개봉한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배우 강동원씨.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형수를 주제로 한 이 영화가 사형제 폐지론을 확산시켰다. [중앙포토]

2006년 개봉한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배우 강동원씨.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형수를 주제로 한 이 영화가 사형제 폐지론을 확산시켰다. [중앙포토]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 가운데 자신들이 만난 사형수 중에 교화돼 '새사람'이 된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한때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고 이미 선량한 사람으로 바뀐 이의 목숨을 빼앗아야 되겠느냐’는 게 이들의 감성적인 주장이다. 흉악범 중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자가 어찌 단 한 명도 없겠는가? 그러나 일부의 사례가 ‘모든 흉악범이 깊이 반성한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중국을 비롯해 반(反) 민주주의 진영 국가 대부분은 아직 사형제를 유지한다. 이와 반대로 선진국, 특히 유럽연합(EU) 국가는 원칙적으로 사형을 금하고 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도 미국과 일본 등은 여전히 사형을 실시하고 있다. 연방 국가인 미국의 어떤 주는 사형을 금지하지만 연방대법원은 사형을 합법적인 형벌로 인정한다. 어쨌든 우리는 아직 형식적으로 사형제가 존치된 나라다.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한다고 문제 될 건 전혀 없다. 사형제 존치 여부는 어디까지나 내정의 문제다. 그런데도 앰네스티를 비롯한 인권단체는 마치 사형을 집행하면 당장 한국이 독재국가나 미개국으로 전락하는 것처럼 말한다. 문명국과 야만국을 가르는 경계선은 사형제 존치 여부가 아니라 사람들이 범죄 걱정 없이 평안하게 살 수 있도록 범죄를 제어하는지가 아닐까?

문명국은 인간다운 인간이 사는 나라 

사형제 논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주장도 늘 비슷하다. 다만 요즘은 진영에 따라 확실히 갈려 있다. 대개 진보좌파 진영에서는 사형제 폐지를, 보수우파 진영에서는 유지를 역설한다. 최근 들어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더라도 그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 37조 2항을 근거로 생명권은 본질적 인권이므로 사형제는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나는 끝내 수긍하지 못한다. 사람을 이유 없이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마구 훼손한 자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 이미 인간이 아니다. 그런 자의 생명권을 인정한다는 것이 오히려 비문명적이다. 문명국은 인간다운 인간이 사는 나라이지 사람을 무참히 해치는 흉악한 짐승이 권리를 존중받으며 함께 사는 나라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