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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한·일관계 ‘아베 그늘 벗기’ 3년이 골든타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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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총격을 받고 사망한 나라시 사건 현장 근처에 마련된 임시 추모소에서 시민들이 합장한 채 절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만간 주한 일본대사관 측이 마련할 분향소를 직접 찾아 조문할 예정이라고 대통령실은 10일 밝혔다. [AP=연합뉴스]

지난 9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총격을 받고 사망한 나라시 사건 현장 근처에 마련된 임시 추모소에서 시민들이 합장한 채 절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만간 주한 일본대사관 측이 마련할 분향소를 직접 찾아 조문할 예정이라고 대통령실은 10일 밝혔다. [AP=연합뉴스]

갑작스러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 피습 사망은 윤석열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 구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간 일본 내 보수우익 성향을 대변하면서 한국에 강경한 목소리를 내 온 자민당 내 ‘아베파의 그림자’가 참의원 선거 이후 짙어지면서 윤 정부의 관계개선 구상이 단기적으론 추동력을 덜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기시다 총리가 아베 전 총리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기 색깔을 낼 역량을 강화한다면 중장기적으로 한·일 관계에 청신호가 켜질 거란 기대도 적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만간 주한 일본대사관 측이 마련할 아베 전 총리의 분향소를 방문해 조문할 예정이다. 취임 후 이어온 한·일 관계 개선 행보의 연장선상에서다. 강인선 대변인은 10일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금명간 아베 전 총리를 조문할 예정”이라며 “분향소는 11일 차려질 예정으로,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박진 외교부 장관이 조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분향소 조문과는 별개로 한 총리와 정진석 국회부의장, 중진 의원들로 조문사절단을 구성해 일본에 파견할 예정이다.

한·일 관계 개선이 단기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전망은 ‘파벌정치’로 규정되는 일본 정치지형에서 기인한다. 단순하게 보면 자민당 내 아베파가 힘을 잃으면 아베의 그늘에서 벗어난 기시다 총리의 향후 국정 운영 동력이 그만큼 강해질 것 같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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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기시다 총리와 아베 전 총리 간에는 적절한 균형이 있었다. 정책이나 스타일에서 온도 차가 있지만, 서로를 일정 부분 배려하면서 견제하는 사이였다. 아베파 내 강경 목소리는 그나마 아베 전 총리가 나름 강약을 조절하면서 메시지를 내왔다. 하지만 앞으로 아베파의 다른 중진들이 돌출 언행에 나서며 ‘강성 경쟁’을 벌이게 되면 기시다 총리 입장에서도 통제하기 힘든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자민당 내 온건파인) 기시다 총리가 당장 한·일 관계 개선에 주도적으로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자칫 ‘아베가 사라진 틈을 타 한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이익을 챙기려 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만큼 당분간은 아베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뒤집는 결정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2025년까지 대형선거 없어 … 기시다, 대외정책 주도권

아베 전 총리 피습 사망 이후 자민당 특유의 보수우익적 색채가 짙어지고, 이에 따라 한국에 적대적인 분위기가 수그러들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장 평화헌법을 개정해 자위대(일본 군대) 보유를 명문화하는 개헌 작업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 아베 전 총리가 스스로 ‘필생의 업’이라고 밝힌 만큼 그의 유지를 받드는 의미도 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피습사건은 일본에서 치안에 대한 국민적 우려와 함께 군사력과 안보 강화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며 “결국 ‘스스로 지킬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던 일본 극우 세력의 목소리가 커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기시다 총리의 자민당 내 리더십이 점차 강화될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1월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는 과정에서도 당초 기시다 총리는 한국의 반발을 의식해 보류하려고 했다. 또 기시다 총리는 지난 4월 한·일 정책협의단을 만나서도 “한·일 관계 개선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에서 한·일, 한·미·일 협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시다

기시다

이번 참의원 선거 후 일본은 2025년까지 대형 선거가 없다. 기시다 총리가 이 ‘3년의 황금기’에 주도권을 쥐고 대외 정책을 펴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한·일 외교장관 회담 개최 등 한·일 관계 개선의 ‘시작 버튼’을 한국이 주도적으로 누르는 것이 좋을 수 있다는 제안도 있다. 당초 오는 18~21일께로 조율되던 박진 외교부 장관의 첫 방일 일정은 이번 사건의 영향을 받고 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나 “예기치 않은 사건 때문에 앞으로 일본 측과 협의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기시다파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기시다 총리는 한국이나 일본에서 정상회담을 조기에 개최하는 데는 여전히 신중하다”며 “9월 말 뉴욕에서 열릴 예정인 유엔총회 같은 곳에서 첫 단독회담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열린 일본 참의원 선거(전체 의석 248석 중 125석 새로 선출)에서 집권 자민당과 연립 여당인 공명당이 각각 59~69석, 10~14석을 확보해 선거 후 과반을 유지할 것이란 출구조사 결과가 보도됐다. 일본 공영 NHK는 출구조사 결과 선거 후 참의원 전체 의석 248석 중 연립 여당이 139~153석을 확보해 과반을 유지할 것으로 봤다. 이날 오후 10시10분 현재 자민당은 125석 중 60석을 얻어 기존에 갖고 있던 55석에서 의석을 크게 늘렸다. 공명당에서 확보한 10석을 포함하면 여당이 70석으로, 이번에 바뀌지 않는 70석(자민당 56석, 공명당 14석)을 합쳐 140석을 확보했다. 이미 참의원 과반(125석 이상)을 넘어서 큰 승리로 평가된다. 일본 헌법 개정에 긍정적인 입장인 자민·공명당,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 등 이른바 ‘개헌4당’도 10시10분 시점에 82석 이상을 얻어 개헌 발의에 필요한 인원인 참의원의 3분의 2 의석(166석)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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