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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대근이 고발한다

사형수 33명 만났다, 그들이 두려워했던 건 '사형'이 아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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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대근 한국형사ㆍ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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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천주교 정의평화위 소속 사제가 손에 든 사형제 폐지 주장 팻말. 배경은 헌법재판소. 그래픽=김은교 기자

한국천주교 정의평화위 소속 사제가 손에 든 사형제 폐지 주장 팻말. 배경은 헌법재판소. 그래픽=김은교 기자

1997년 12월 30일의 23명 집행 이후 한국에선 실제 사형이 이뤄지지 않았다. 2022년 7월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형수는 59명이다. 사형수는 있으나 사형 집행은 없는 나라로 25년을 보냈다. 그동안 공식적으로 사형제도를 없애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헌법재판소는 오는 14일 관련 헌법소원 사건 공개변론 절차를 밟는다. 헌재는 앞서 두 차례(1996년, 2010년)엔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 공개변론을 앞두고 사형제 존치를 옹호하는 전원책 변호사와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의 칼럼을 동시에 게재한다.

25년간 사형 집행이 단 한 차례도 없었던 한국은 사실상의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된다. 2020년 11월 75차 유엔 총회 3위원회에서 우리 정부는 ‘사형집행 모라토리움’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유럽 국가들은 사형을 전면 폐지했고, 미국 주 가운데 사형을 두 번째로 많이 집행하는 버지니아주도 지난해 3월 사형제를 없앴다. 세계적 추세가 이렇다.

1997년 12월 30일 사형 집행 관련 뉴스 화면. 이후 한국에선 사형 집행이 없었다. [사진 MBC 뉴스 캡처]

1997년 12월 30일 사형 집행 관련 뉴스 화면. 이후 한국에선 사형 집행이 없었다. [사진 MBC 뉴스 캡처]

우리 헌법에 생명권이 기본권으로 명시돼 있지는 않다. 하지만 학계와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여러 조문 해석을 통해 생명에 대한 권리를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권리로서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 인정한다. 사형제가 위헌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헌법 37조 2항('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에 주목한다. 여기에서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사형이라는 형벌은 생명권을 '제한'하는(합헌) 것일까, '침해'하는(위헌) 것일까?

사형이 흉악범죄 줄인다는 증거 없어  

이 조항의 '제한할 수 있다'는 쪽을 강조하더라도 생명권 제한은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정당성을 갖는다. 형벌의 목적(필요성)은 응보와 범죄 예방(억제)이다. 그렇다면 사형은 과연 범죄를 억제할 수 있을까? 대개의 연구는 그렇지 않다는 쪽에 손을 든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사형제의 효과를 실증적으로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 강력범죄 발생 원인은 너무나 다양해 형벌의 세기와 범죄 발생 사이의 인과성은 물론 상관성조차 입증할 수가 없다. 전 세계적으로 사형이 축소되거나 폐지됐지만 강력범죄가 증가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법원이 사형을 선고해서 흉악범죄가 감소했다거나, 거꾸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범죄가 증가했다는 통계는 없다.

범죄자는 사형 등 벌의 무게를 계산하면서 범죄를 저지를까? 필자는 2019년 연구에서 사형 확정자 33명을 인터뷰했다. 만난 사형수 중 대다수가 사건 당시엔 처벌 수위 등을 인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부분 술이나 마약을 복용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기에 이런 처벌 결과를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사건 당시나 직후 이들이 정작 두려워했던 건 범죄의 발각과 체포 가능성이었다. 범죄 억제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거운 처벌’이 아니라 ‘확실한 처벌’이라는 걸 시사한다. 사형이 아니라 무기징역을 법정 최고형으로 해도 범죄 억지력 면에서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생명 유지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위에 말했듯이 사형제는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헌법 조항에 반한다. 물론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는 쉽게 가늠할 수 없고, 심지어 그런 게 객관적 실체로 존재하느냐가 논쟁의 대상일 수 있다. 그럼에도 헌법에 ‘본질적인 내용’이라고 적혀 있기에 이를 전제로 기본권을 해석해야 한다.

그렇다면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은 무엇일까? 단연코 생명 그 자체가 아닐까? 생명이 바로 생명권의 본질적 요소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고 본다. 따라서 생명권의 본질적인 내용으로서 생명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적 요청은 입법자에게는 물론 헌법재판관도 준수해야 하는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임시정부 헌법에 사형제 폐지 명시 

우리 헌법 전문(前文)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시작한다.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 부분을 주목해 보자. 1919년 4월 11일 공포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첫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 헌장」은 총 10개의 조문으로 간략하게 구성되었지만, 흥미롭게도 “생명형, 신체형 및 공창제(公娼制)를 전부 폐지한다”(제9조)는 조문을 두었다. 즉 사형과 같은 생명형, 태형(笞刑)과 같은 신체형 형벌을 전격적으로 없앰으로써 인간 존엄성을 강조하고 근대적 형사사법체계를 적극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사형제 폐지를 통한 생명형의 배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념이자 가치로서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의 연혁적·이념적 기초가 된다.

올해 초에 실시한 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

올해 초에 실시한 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

헌법에 '사형' 단어 있다는 게 합헌 근거?

일각에선 헌법 110조 4항에 '사형'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 헌법이 사형제도를 인정하고 허용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조항은 군사법원의 헌법적 근거를 제시한 것인데, 특히 4항은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을 규정한다.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은 군인·군무원의 범죄나 군사에 관한 간첩죄의 경우와 초병·초소·유독음식물공급·포로에 관한 죄 중 법률이 정한 경우에 한하여 단심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그러지 아니하다’. 이 문구에서 '다만, 사형을…'이라는 단서는 비상계엄이라는 예외적 상황에서 한 번의 재판으로 사형을 선고하게 되는 현실적 상황을 진단하고, 이로 인한 위헌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헌법적 장치일 뿐이다.

소수의견이지만 1996년 김진우 당시 헌법재판관은 “헌법 제110조 제4항 단서는 사형제도가 법률 차원에서 하나의 형벌제도로 인정되고 있다는 법적 상황을 전제로 사형의 선고가 갖는 기본권 침해의 심각성에 비추어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이 일정한 범죄에 대하여 단심제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 본문의 규정에 대한 예외를 설정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중략) 이 규정을 사형제도에 관한 실정 헌법적 근거로 보는 데는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유사한 구조를 갖는 다른 헌법 조문이 있다.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폭행·협박·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에 의하여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 또는 정식재판에 있어서 피고인의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는 12조 7항이 그렇다. ‘고문·폭행·협박, 구속의 부당한 장기화’가 헌법에 쓰여 있다고 해서 헌법이 이를 허용한다고 볼 수 있는가? 노예제가 있다는 '현실'(사실)이 노예제를 허용해야 한다거나 허용할 수 있다는 결론(당위)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 

사형이라는 형벌은 우리 헌법의 이념과 가치에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과잉금지 원칙(※기본권 제한은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절성, 법익의 균형성을 갖춰야 한다)에 반하고 생명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한다. 그 밖에도 사형제도가 폐지돼야 하는 이유는 많다.

10년간 사형 집행이 없었기에 사실상 사형 폐지국이라며 폐지론자들이 2007년 12월 연 집회. [중앙포토]

10년간 사형 집행이 없었기에 사실상 사형 폐지국이라며 폐지론자들이 2007년 12월 연 집회. [중앙포토]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당위적 명제는 무엇일까.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많은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명제가 아닐까? 인류 문명과 계몽의 역사는 이 당연한 명제를 확인하고 실천하는 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명제에서 파생될 수 있는 하위 명제가 있다면 ①'사람을 죽이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와 ②'①의 유일한 예외는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자기 생명을 보존할 수 없는 경우이다'가 아닐까.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는 명제는 사람을 죽인 자에 대한 처벌의 형태가 또 다른 죽음이어서는 안 된다는 당위를 내포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사형을 무고한 시민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예외로 인정해야 할 합당한 근거도 없다. 이 자명한 명제를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하는 시간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