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준석 궐위냐 사고냐…6개월 셈법에 '국힘 전대' 갈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오른쪽)와 권성동 원내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오른쪽)와 권성동 원내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이준석 대표가 지난 8일 현직 여당 대표로서는 사상 초유의 ‘당원권 정지 6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자 여권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여권의 차기 당권 주자들은 한목소리로 “조속히 당을 안정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각자 엇갈린 수습 방안을 내놓고 있어 향후 당의 진로를 놓고 파열음이 불거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11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 이어 초·재선, 중진 의원들이 선수별로 연달아 간담회를 열어 사태 수습 방안을 논의한다. 오후에는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주재로 의원총회를 열고 난상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이 자리에선 향후 지도부 운영 방안 등이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의원들 사이에선 일단 “이준석 대표가 윤리위원회의 징계를 수용하고 당분간 물러나 있는 게 맞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윤리위 의결 직후인 지난 8일 오전 비공개 원내대책회의와 오후 최고위원 긴급 회의에서도 이에 대해 특별한 이견은 없었다고 한다. 이 대표 역시 주말 동안 윤리위 결정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는 대신 향후 대응 방안에 골몰하는 모양새다.

문제는 이 대표의 6개월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에 대해 각자 셈법이 다르다는 점이다. 특히, 주장이 엇갈리는 건 대표가 궐위된 상황과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을 각각 규정한 당헌 제29조와 제29조의 2에 대한 해석이다. 29조는 대표가 ‘궐위’일 경우엔 원내대표 등이 ‘권한’을 대행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29조의 2는 ‘사고’일 경우에는 원내대표 등이 ‘직무’를 대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궐위’와 ‘사고’의 구분은 전당대회 개최 여부와 직결된다. 권한대행 체제에선 기존 대표의 남은 임기가 6개월 이상일 경우 60일 이내에 임시 전당대회를 개최해 새 지도부를 구성해야 한다. 반면 직무대행 체제에서는 전당대회를 열지 않아도 된다. 내년 6월 10일까지 임기인 이 대표는 남은 임기가 11개월이기 때문에 궐위로 볼 경우 새 대표를 뽑는 전대를 개최할 조건이 되는 것이다. 반면 당원권이 6개월 정지됐을 뿐이어서 산술적으로 징계 뒤 복귀하면 임기가 5개월 남게 되므로 ‘사고’로 보게 되면 전대는 개최할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주요 차기 당권 주자의 해석이 엇갈린다.

권 원내대표는 당원권 정지 6개월을 ‘사고’로 규정하고 “그 기간만큼 원내대표가 직무대행을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권 원내대표는 10일에도 한 언론에 “이 대표가 (대표직을) 그만둬서 궐위되지 않는 한 전당대회를 할 방법이 없다”며 “직무대행 체제를 6개월 간 할지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할지 여부는 의원총회에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당 사무처가 현재 상태가 대표 ‘궐위’가 아닌 ‘사고’라고 규정했다”며 “비상 상황이기 때문에 사무처와 다른 해석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친윤석열계를 포함한 다른 당권 주자 그룹에선 이 대표에 대한 중징계를 ‘궐위’ 상황으로 보고 “빨리 전당대회를 열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또 다른 차기 당권 주자로 꼽히는 김기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하루빨리 내홍을 접고 질서 있는 정상화를 통해 지도부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조기 전당대회를 통한 새 지도부 구성을 주장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의원은 “국민 삶을 챙기고 윤석열 정부 성공을 뒷받침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해결하려면 임기응변 차원의 시스템으로는 역부족”이라며 “시행착오를 감수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친윤계로 꼽히는 재선 의원도 “지금 상태는 대표 궐위 상태가 맞다”며 “여당으로서 당을 빨리 정비하고 윤석열 정부를 뒷받침하려면 당헌·당규에 따라 전당대회를 열고 새 지도부를 구성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당내에선 이 같은 해석의 차이가 전당대회 개최 시기에 대한 당권 주자 간 입장 차이에 기인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내년 4월까지가 임기인 권성동 원내대표로선 그 사이 전대가 열리면 출마할 명분이 크지 않고, 당권 주자 중 출마 준비가 가장 많이 된 김기현 의원으로선 전대가 빨리 열릴수록 유리하다고 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최고위원들과 비공개 면담 후 브리핑을 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뉴스1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최고위원들과 비공개 면담 후 브리핑을 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뉴스1

이 대표 징계를 ‘사고’로 보더라도 직무대행 체제가 아닌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혁신위원회 부위원장이자 3선인 조해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이 대표가 사퇴하지 않는 이상 전대를 열어 새 대표를 뽑을 수 없고, (직무)대행 체제로 6개월 간 운영하는 것은 비대위보다도 더 적절치 않다”며 “이 대표가 최고위의 징계 결정을 수용하면 당은 조속히 비대위를 구성해 6개월 간 비대위 체제로 당을 운영해야 한다”고 적었다.

이런 가운데 이 대표에 대한 중징계가 적절했는지 여부를 놓고도 주말 사이 여권 주요 인사들의 의견은 팽팽히 갈렸다.

대선 과정에서 이 대표와 밀착한 것으로 평가받던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업보라고 생각하라”는 글을 올렸다. 홍 시장은 “바른미래당 시절 대선배인 손학규 대표를 밀어내기 위해 그 얼마나 모진 말씀들을 쏟아냈나. 지금 당하는 것은 약과”라며 “차분히 사태를 정리하고 누명을 벗기 위한 사법 절차에만 집중하라. 좀더 성숙해져서 돌아오라”고 썼다. 이 대표는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이던 2019년 ‘손학규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하며 최고위원회의를 보이콧하는 등 강경 투쟁을 했었다.

반면 그간 정치 현안에 대해 침묵했던 유승민 전 의원은 전날 대구에서 북콘서트 행사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윤리위나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관계자)들은 조폭 같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증거가 없고 아무도 진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윤리위가 의혹만 갖고 중징계를 내린 것”이라며 “굉장히 졸렬한 처사”라고 했다.

이 대표 징계 과정에 대한 ‘윗선 개입설’을 놓고도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윤리위 심의가 이어지던 지난 7일 밤 JTBC는 이 대표의 성 상납 의혹을 제보한 장모씨가 성 상납 문제와 관련해 “그 사람이 OOO 비서실이야”라거나 “윗선에서는 안 돼요, 진짜. 윗선에서 자꾸 홀딩하라잖아요”라고 말한 녹취록을 확보해 보도했다. JTBC는 이튿날인 지난 8일에는 이 대표 징계의 결정적 근거로 활용된 ‘7억원 투자유치 각서’가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협상 카드로 활용됐다는 주장이 담긴 장씨의 녹취록 발언을 보도했다.

그러자 안철수 의원 측은 지난 9일 보도자료를 통해 “허무맹랑한 음해”라며 반발했다. 안 의원 측은 “후보 단일화는 정권교체라는 시대적 사명에 따른 순수한 헌신과 결단”이라며 “허위사실 유포행위에 대해 강경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 대표의 지지층인 2030세대에선 이 대표의 징계 문제에 대해 “적절성을 따지는 당원 토론을 벌이자”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2030 남성이 중심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당원 가입 후 토론 요구를 인증하는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