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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아베' 입에 올리지도 못한다…日선거 여당 동정표 몰리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베 전 총리가 총기 테러로 죽는 걸 보면서 '일본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투표를 하러 나왔습니다."

10일 오전 8시 30분 일본 도쿄(東京)도 주오(中央)구의 한 초등학교에 마련된 '제16 투표구 투표장', 막 투표를 끝낸 60대 남성은 "오전이라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꽤 많아 놀랐다"며 이렇게 말했다. 오전 7시부터 투표가 시작돼 한 시간 반이 지난 시간, 줄을 서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유권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10일 오전 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이 참의원 선거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10일 오전 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이 참의원 선거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초등학생 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온 30대 여성은 "아이와 나들이를 가기 전 투표장에 들렀다"며 "아베 전 총리의 사망 때문에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져 투표율도 올라갈 것 같다"고 말했다.

참의원 125석 주인 찾는다..여당 과반 확실시 

미국의 상원에 해당하는 참의원 선거 투·개표가 일본에서 10일 진행된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의 정책을 평가하는 의미가 담겼다. 그러나 선거를 이틀 앞두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총격 테러로 사망하면서 선거에 어떤 돌발변수로 작용할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9일 오후 일본 니가타현에서 참의원 선거운동 마지막 날 유세를 하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 [AP=연합뉴스]

9일 오후 일본 니가타현에서 참의원 선거운동 마지막 날 유세를 하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 [AP=연합뉴스]

이날 선거로 선출되는 의석수는 125석으로 참의원 전체 248석 중 절반이다. 일본 참의원은 6년 임기로 3년마다 선거로 절반씩 인원을 교체한다.

현지 언론들의 예측에 따르면 집권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 연합은 무난히 참의원 과반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요미우리·아사히·마이니치 분석에서 자민·공명 연합은 새로 뽑는 125석 가운데 최소 63석, 최대 80석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됐다.

이번에 바뀌지 않는 여당 의석수는 70석(자민당 56석, 공명당 14석)으로, 예상대로라면 자민·공명 연합은 선거 후 최소 133석에서 최대 151석을 얻게 된다. 참의원에서 과반(125석 이상) 유지가 확실시되는 상황이며, 기존 의석수인 139석(자민당 111석, 공명당 28석)보다 크게 늘어난 '압승'을 거둘 가능성도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또 하나의 주목 포인트는 일본의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자민·공명,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 등 '개헌 4당'이 국회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석(166석)을 얻을 수 있는가다. 개헌안 발의를 위해서는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하는데, 기존에도 참의원과 중의원에서 4당이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태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 선거에서도 개헌 세력이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가져갈 것이 확실시된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4당은 개헌이라는 큰 틀에는 동의하지만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견해차가 커 개헌을 위한 움직임이 바로 시작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일본에선 아직 개헌안이 발의된 적이 없지만,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갈등 격화 등으로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방향으로 개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다만 향후 개헌 움직임 역시 자민당 내에서 개헌을 주도해온 아베 전 총리의 부재에 따른 영향이 미칠 수 있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일본에선 향후 3년 간 대형 선거가 없다. 기시다 총리가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끌 경우, 장기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안정된 권력 기반을 마련한 기시다 정부가 한·일 정상회담 등 한국과의 관계 복원에 적극적으로 나설지도 주목된다.

"아베 전 총리 사망, 자민당에 동정표 몰릴 것"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은 물가 상승 등 경제 문제였지만, 아베 전 총리 사망으로 선거 막판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각 당 대표들은 9일 마지막 유세에서 구체적인 정책보다는 "테러에 굴하지 않겠다", "선거에 참여해 민주주의를 지켜나가자"는 내용에 중점을 뒀다.

9일 일본 나라현에서 시민들이 전날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유세 중 숨진 장소에 헌화하며 명복을 빌고 있다. [AP=연합뉴스]

9일 일본 나라현에서 시민들이 전날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유세 중 숨진 장소에 헌화하며 명복을 빌고 있다. [AP=연합뉴스]

기시다 총리는 야마나시(山梨)현 유세에서 "우리의 민주주의, 선거는 폭력에 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면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총리 유세가 열린 연설회장에는 금속탐지기가 동원되는 등 평소보다 훨씬 엄중한 경호 태세가 눈에 띄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이즈미 켄타(泉健太) 대표도 후쿠시마(福島)시 연설에서 "테러에 굴하지 말아야 한다"며 "함께 민주주의와 평화로운 사회를 지켜나가자"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아베 전 총리의 사망이 이번 선거에서 '동정표'를 끌어모아 자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제1차 아베 내각에서 후생노동상을 역임한 국제정치학자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는 도쿄신문에 "여당에 동정표가 몰릴 가능성이 있다"며 "반(反)아베 입장을 취했던 사람들도 (아베 전 총리에 대한 비판을) 입에 올리기 어려운 분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오쿠조노 히데키(奧園秀樹)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도 "일반적으로 이런 일(아베 사망과 같은 일)이 터지면 피해를 본 쪽에서 혜택을 받게 된다"며 "유권자들이 불행을 당한 쪽에 동정심을 가지고 표를 던져 자민당에 유리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라고 말했다.

50%를 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던 투표율도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3일부터 시작된 사전 투표에는 8일까지 유권자의 15.29%인 총 1612만명이 참가해 역대 최고의 사전투표율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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