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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롱면허? 좋습니다, 100만원 드리겠습니다" 요상한 게시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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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경 보험사기] 

일자리를 찾던 30대 남성 장모씨는 지난 3월 한 인터넷 커뮤니티 내 구인·구직 게시판에서 '급전 필요하신 분 모집'이란 제목의 게시글을 발견했다. 내용을 살펴보니 ‘운전면허증이 있고 교통사고 이력이 없는 분 가능’이라고 적혀 있었다.

링크를 통해 텔레그램 대화방에 들어간 장씨가 “면허는 있는데 운전은 못 하는 '장롱 면허'”라고 하자, 상대는 “문제없다. 100만원을 벌 기회를 드리겠다”고 답했다. 상대가 설명한 방식은 고의로 교통사고를 낸 뒤 장씨 이름으로 보험 접수를 해 보험금을 타는 이른바 '보험빵'이었다. 상대는 “면허증을 가지고 차에 앉아만 있으면 된다”며 '작전' 일시와 만날 장소를 알려줬다.

정해진 날짜에 약속 장소로 가니 ‘실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총책’과 실제로 운전을 할 ‘기술자’, 텔레그램으로 장씨와 연락을 주고받은 ‘유인책’이 나와 있었다. 이들은 장씨에게 차량 공유 앱을 통해 승용차 한 대를 빌리라고 시켰다. 빌린 차의 운전대는 '기술자'가 잡았고 조수석엔 '총책' 뒷좌석엔 장씨와 '유인책'이 탔다.

이들이 향한 곳은 경기도 용인의 서수지IC 사거리였다. 1차로가 좌회전 전용 차선인 도로인데, 직진금지 표시가 실제 좌회전을 해야 하는 지점을 얼마 남기지 않고 나온다. 때문에 직진을 하려던 많은 차량이 급하게 2차로로 차선 변경을 시도하는 구간이다. '유인책'은 “교통법규를 위반하다가 사고를 낸 경우 상대방은 당황한다”며 “누가 운전자인지 알아채지 못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기술자'는 이 사거리를 빙빙 돌며 1차로에서 2차로로 갑자기 차선 변경하는 차량을 기다렸다. 이런 차량이 보이자 상대 차가 갑자기 튀어나와 어쩔 수 없이 사고가 난 것처럼 보이도록 속도를 줄여가며 가볍게 부딪혔다.

상대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기 전 이들이 먼저 차에서 내려 한바탕 소란을 피웠고, 장씨는 운전자인 것처럼 차량 공유업체에 전화를 걸어 사고접수를 했다. 사고를 낸 상대방에게는 보험사를 불러달라고 했다.

이 접촉사고로 장씨는 전혀 다치지 않았지만, 한방병원에 입원했다. 여기서 2주간 도수치료와 침 치료 등을 받고 보험사가 향후 치료비와 합의금으로 500만원을 보내자 퇴원했다. 장씨는 이 중 100만원을 챙기고 나머지를 '총책'에게 보내줬다.

이런 방식으로 이들은 총 54회 고의 사고를 내 4억여원의 보험금을 챙겼다. 건당 740만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이런 식의 사고가 반복되자 보험사의 '보험사기 탐지 시스템'에 꼬리가 잡혔고, 보험사의 수사 의뢰를 받은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의 계획적인 범죄 행위가 드러났다. 평소 별명으로만 소통하고, 적발 시 어떤 거짓말을 할 것인지도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미리 공유해왔다.

보험사기 적발금액 및 인원.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보험사기 적발금액 및 인원.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살림살이가 팍팍해지자 '보험빵'과 같은 보험사기에 가담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경남 창원에서도 2019년부터 3년간 총 88회의 고의 교통사고를 낸 A씨가 경찰에 적발됐다. 조사 결과 A씨는 약 5억원의 보험금을 부정 수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구에서도 신호위반 차량만 골라 고의로 접촉사고를 낸 권모씨와 가담한 23명이 지난해 12월 적발됐다. 주범 권모씨는 사고를 낸 뒤 몸에 새긴 문신을 보여주면서 상대 운전자와 보험사 직원을 위협하기도 했다. 총 23건의 교통사고로 권씨가 챙긴 돈은 약 1억7000만원이었다. 검찰은 권모씨를 구속해 재판에 넘겼다.

수사 의뢰를 한 보험사 관계자는 “지난 3년간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지고 생활고가 심해지자 보험사기에 가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최근 보험사기 탐지시스템이 고도로 발전해 대부분의 고의 교통사고가 적발되고 있고, 가담한 것만으로도 형사 처벌을 받게 되는 만큼 이런 유혹에 절대 빠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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