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김포 장릉의 조망을 가린 신축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그법알 사건번호 56] '왕릉뷰' 아파트 공사중지 명령 취소한 법원
이른바 '왕릉뷰' 아파트에 대한 법원의 1심 판단이 나왔습니다. 결론은 건설사 승. 8일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이주영 부장판사)는 문화재청이 건설사에 내린 공사 중지 명령을 취소했습니다.
사건의 쟁점은 이렇습니다. 김포 장릉 앞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자, 문화재청이 공사 중지를 명령하고 건설사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건데요. 장릉은 조선 16대 임금 인조가 부모인 원종과 인헌왕후를 모신 능인데, 경관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거든요. 아파트가 들어서면 봉분에서 바라보는 계양산 경관이 가려지는데도 건설사들이 미리 심의를 받지 않았다는 게 문화재청 주장입니다.
공사가 한창일 때부터 소송전은 시작됐습니다. 건설사들은 우선 법원에 중지 명령을 멈춰달라며 집행정지 신청을 냈고요. 지난해 12월에는 법원이 건설사들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공사가 계속됐습니다. 현재는 속속 입주가 시작되고 있죠. 법원은 어떤 근거로 이 아파트를 그대로 둬도 된다고 판단했을까요?
관련 법령은?
문화재보호법 제35조 제1항 제2호는 '국가지정문화재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행위'를 하려는 사람은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행령 제21조의2에는 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행위'가 자세하게 나와 있는데요. '국가지정문화재의 경관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건축물을 설치하는 행위'가 포함됩니다.
법원 판단은?
재판부는 이 아파트가 법령에 있는 '국가지정문화재의 경관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건축물'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문화재청 지침도 먼 산 전망 고려 안 해"
재판부는 장릉 내부 정자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시신이 묻힌 봉분 앞 혼유석(왕릉의 봉분 앞에 놓는 직사각형의 돌)에서 바라볼 때, 이전에는 멀리 보였던 계양산이 아파트에 가리긴 합니다.

지난 5월 경기 김포 장릉에서 바라본 '왕릉뷰 아파트' 모습. 뉴스1
재판부는 문화재청의 내부 지침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능의 조망 침해를 검토할 때는 내부 주요 조망점에서 가까운 맞은편 산(안산)이 보이는 지를 중요하게 보고 있을 뿐이고, 이보다 멀리 보이는 산(조산)의 조망은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는데요. 즉 장릉 무덤에서 계양산이 잘 안 보이긴 하지만, 계양산은 지침에서 잘 고려하지 않는 '조산' 즉 멀리 보이는 산이라는 겁니다.
재판부는 도심 속 다른 능도 살펴봤습니다. 동구릉, 정릉, 의릉, 선릉·정릉 역시 봉분에서 바라보면 고층 건물로 인해 조산이 가려져 있다네요. 게다가 김포 장릉의 경우, 기존에 있던 아파트로 인해 안산조차 보이지 않던 상태라고 합니다.
◇세계문화유산 취소되는 거 아냐?
일각에서는 아파트 건설로 인해 장릉이 세계 유산에서 취소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는데요. 재판부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도심 속 조선 왕릉의 조산 조망이 가려져 있는 경우가 많은 점, 김포 장릉의 경우 가까운 안산 조망도 이미 많이 가려져 있다는 점을 유네스코가 이미 고려했을 것이라고 재판부는 판단했습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할 때 이 같은 사실이 보고가 됐다는 거죠.
게다가 문제가 되는 아파트 윗부분을 철거한다고 해도, 계양산이 가려지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다른 신축 아파트들이 또 지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아파트들이 계양산 전망을 가렸다고 해서 문화재 경관이 중대하게 해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법알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