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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자유로이 숨 쉬고 뛰놀게, 코로나 방역 개선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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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6호 28면

러브에이징

어린이는 나라의 기둥이자 미래의 희망이다. 누구나 동감하는 말이지만 현실에서 어린이 지위는 매우 낮고 어린이를 위한 정책은 늘 후순위다. 어린이의 해맑고 순진무구한 미소 이면에 미숙함과 무기력함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실로 인류는 문명사회에 진입한 후에도 보호자 손길을 떠난 수많은 어린이를 착취와 희생의 대상으로 삼았다. 사피엔스 뇌에는 약하고 힘없는 대상이라야 수월하고 후환 없이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동물적  본능이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용맹한 맹수들이 사냥할 때 가장 선호하는 먹잇감도 무리에서 뒤처진 새끼다.

80대 이상 치명률 아동 대비 수천 배

역사적으로 인권 선진국 영국에서도 산업혁명 시기에 취약계층 어린이들은 휴일도 없이 매일 12~16시간씩 노동을 했고 1842년 이전에는 위험한 광산 노동에도 동원됐다. 미국은 20세기 초까지 고사리손으로 농장은 물론 공장과 광산에서 마스크 없이 장시간 노동한 어린이들이 저체중, 저성장, 결핵, 기관지염 등에 시달렸다.

현대사회에 진입하면서 선진국을 필두로 아동노동을 금지하는 문화가 확산됐지만 지금도 저개발국에서는 만연하다. 유니세프와 국제노동기구(ILO)가 발표한 ‘아동노동: 2020 동향과 전망’만 보더라도 2020년 어린이 노동 인구는 1억6000만명 선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빈곤층 경제난이 심화되고 학교 폐쇄까지 겹치면서 올해 말까지 900만~4600만명의 어린이가 학교 대신 노동 현장에 투입될 것으로 전망한다.

따라서 성장기 어린이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법적인 보호와 배려를 받도록 해야 한다. 국제사회는 1989년 ‘유엔(UN)아동권리협약’을 통해 어린이는 생존권, 보호권, 발달권, 참여권 등 네 가지 기본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선언했다. 한국은 유엔에 가입한 1991년 북한과 함께 비준했고 소말리아도 2015년에 비준했다. 북한은 어린이 영양실조 문제가 국제 사회 이슈가 되는 나라며, 소말리아는 어린이들을 소년병으로 강제로 징집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권력을 가진 어른들이 어린이를 대하는 후안무치하고 표리부동한 언행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례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렇다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30년이 넘는 대한민국의 실정은 어떠한가. 우선 코로나19 팬데믹 시작 이후 지금까지 30개월 동안 시행된 각종 방역대책을 보면 어린이의 권리와 인권은 관심 밖이다. 물론 팬데믹 초기에는 신종 바이러스의 정체도, 대응 방법도 잘 모르던 시기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나 마스크 착용 같은 방역 수칙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상황이 이해된다.

하지만 팬데믹이 시작된 지 반년쯤 지나자 신종바이러스가 고령층과 기저질환자(당뇨, 고혈압, 면역 저하, 비만, 심장병 등)를 집중적으로 위협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다시 말해 건강한 어린이는 코로나19에 감염돼도 그다지 위험하지 않은 것이다.

국내 상황만 봐도 팬데믹 첫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어린이 사망자가 전무했다. 또 30개월이 지난 7월 7일 기준 10세 미만은 220만명 이상이 감염돼 24명이 사망했고(치명률 0.001%) 10대는 240만명 이상 감염자 중 11명이 사망했으며(치명률 0.00045%), 사망자는 대부분 심각한 기저질환을 가진 어린이다.  참고로 80대 이상 치명률은 아이들에 비해 수천 배 높은 2.69%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이런 모습은 기존의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과 무척 다르다. 기존의 호흡기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어릴수록 증상이 심하다. 기관지가 좁고, 가스를 교환하는 허파꽈리 숫자는 적은 데다 가래가 많아 폐렴이 잘 생긴다. 또 면역 기능이 미숙해 생애 처음 접하는 바이러스에 대항하기도 버겁다. 코로나19는 어린이가 생후 처음 걸려도 증상이 가볍게 나타나는 신종 호흡기 바이러스인 셈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구미 선진국들은 2020년 가을부터 코로나19 방역정책은 최대한 어린이의 성장과 발달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진행했다. 확진자가 급증해도 어린이 등교를 강행한 국가가 많았던 이유다. 휴교하면 공교육에만 의존해야 하는 저소득층 아이들은 학력 저하, 건강 소홀, 위험 노출 등으로 건강이 나빠지고 결국 수명도 단축된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방역으로 초래된 어린이 피해에 대해 사과하고 현실적인 개선안을 찾는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편하게 맑은 공기를 마시는 법을 잊기라도 한 듯, 무더위에도 습관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어린이들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다. 저 아이들의 희생으로 우리 사회는 무엇을 얻은 걸까. 보수적인 지침을 제시하는 세계보건기구(WHO)도 다섯 살 이하 어린이는 마스크 착용 대상이 아니며, 실내에서도 뛰노는 어린이에게는 창문은 열어주고 마스크는 씌우지 말라고 권한다〈표 참조〉.

한국의 코로나19 현주소는 항체 생성률 95%, 공식적인 확진자 1800만명 이상, 2차 접종률 86.9%다. 어린이 감염자의 치명률은 0에 가깝다. 반면 2020년 사망한 10세 미만 어린이는 1001명, 10대는 766명이다. 또 아동 학대 피해자도 3만905명이며 이 중 90명은 세상을 떠났다(2019년 60명 사망). 코로나19 확진자 감소에 집중하느라 상시로 발생하는 심각한 어린이 관련 문제점들이 간과된 모습은 빈대 잡느라 초가삼간 태운 모양새다.

어린이 홀대하는 나라는 미래 없어

지금 국민은 코로나 공포와 피로감으로 심신이 지친 상태다. 방역 당국은 오미크론 BA.5 유행으로 확진자가 하루 20만명까지 갈 수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 대신 BA.5 변이가 초기 코로나19나 델타 변이에 비해 얼마나 순한 모습으로 변했는지를 ‘과학적’인 데이터로 설명해줘야 한다. 또 아이들에게도 자유롭게 숨쉬면서 뛰어놀 수 있는 권리를 되돌려줘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린이를 위하지 않는 나라, 홀대하는 나라의 미래는 없다.

황세희 연세암병원 암지식정보센터 진료교수.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서울대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MIT에서 연수했다. 1994년부터 16년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황세희 박사에게 물어보세요’ ‘황세희의 남자 읽기’ 등 다수의 칼럼을 연재했다. 2010년부터 12년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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