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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 팬 여성이 더 많고, 구단 홍보팀장도 배출 ‘여풍당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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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6호 24면

프로야구 달구는 우먼 파워 

지난 5월 만원을 이룬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한 여성 팬이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고 있다. [사진 롯데 자이언츠]

지난 5월 만원을 이룬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한 여성 팬이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고 있다. [사진 롯데 자이언츠]

“여성 팬들은 안타인 줄 아셨던 것 같은데요. 파울이었습니다. 여성분들은 맞으면 환호. 와~ 이러죠. 일단 배트에 맞으면. (박재홍 해설, 김수환 캐스터)”

지난 5월 프로야구 중계를 시청하던 10년 차 야구팬 김민영(가명·37)씨는 해설위원의 발언을 듣고 두 귀를 의심했다. TV 화면에는 여성 팬들과 남성 팬들이 환호성을 지르다 아쉬워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남녀 구분 없이 모두가 탄식을 쏟아내고 있었기에 특정 성별의 관람객이 야구 규칙을 숙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여부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김씨는 “실제로 여성이 남성보다 야구 지식을 적게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무시 발언은 잘못된 것 아니냐”며 “이런 중계가 계속되니 팬들이 야구장을 찾지 않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분노했다.

해설자들, 여성 무시 발언은 여전

SSG 랜더스 PD가 경기 전 비눗방울을 갖고 노는 크론(왼쪽)과 김광현(오른쪽) 선수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사진 SSG 랜더스]

SSG 랜더스 PD가 경기 전 비눗방울을 갖고 노는 크론(왼쪽)과 김광현(오른쪽) 선수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사진 SSG 랜더스]

문제의 발언은 이날로 그치지 않았다. 다음날인 14일에는 “야구장에 나오면, 남자친구분과 여자친구분이 동시에 오면 설명해주시느라 시간을 많이 할애해 주시죠.” (이동근 캐스터) 라는 해설이, 23일에는 KBS 야구 프로그램 ‘야구의 참견’에서 “여자친구나 집에 있는 아내가 야구에 관한 설명을 물어볼 때 포스플레이를 물어보면 제일 설명하기 어렵다” (권성욱 아나운서)는 발언이 잇따라 나왔다. 김씨는 “악의적인 발언은 아니었겠지만 그동안 기저에 깔려있던 여성 팬들에 대한 인식이 무심결에 새어 나온 것 같다”며 “5년 만에 야구를 다시 봤는데도 변한 게 없어서 상당히 아쉽다”고 전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프로야구는 더 이상 남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 ‘2021 프로스포츠 관람객 성향조사’에 따르면 2020시즌 응원팀의 홈 경기를 직관한 프로야구팬은 남성이 68.4%, 여성이 73.5%인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19의 영향에도 많은 여성 팬들이 야구장을 찾았다는 뜻이다. 프로야구의 인기가 식지 않은 데에도 여성 팬들의 역할이 컸다. 최근 5년 사이 프로야구팀을 응원하기 시작한 ‘새내기 팬’ 역시 여성(55%)이 남성(34.9%)보다 많았다. 야구장에서 기꺼이 지갑을 여는 사람도 여성이었다. 야구장 방문 시 입장권을 제외한 1인당 평균 지출비용은 남성이 4만2161원, 여성이 4만6142원으로 약 4000원가량 여성 관람객의 지출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재 스포츠’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여성 팬들의 영향력이 크다.

삼성 라이온즈 콘텐트에 출연한 ‘라클’ 김예린씨. [사진 김예린]

삼성 라이온즈 콘텐트에 출연한 ‘라클’ 김예린씨. [사진 김예린]

여전히 선수·감독·코치는 모두 남자이지만 구단 마케팅이나 소셜미디어(SNS) 기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열성 팬들은 여성 팬이 주를 이룬다. 삼성 라이온즈의 20년 차 팬인 김예린(25)씨는 구단 콘텐트 제작에 힘을 보태고자 지난 3월 신설된 ‘라이온즈 팬 크리에이터(라클)’로 활동 중이다. 라클은 구성원 8명 중 1명을 제외한 7명이 여성 팬이다. 김씨는 “선수 유니폼 사진 촬영, SNS 콘텐트 기획 등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며 “팬들 사이에서도 라클 덕분에 구단 이미지가 젊어졌다는 피드백이 많다”고 전했다. 김씨는 올 시즌에만 20번 이상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를 찾을 만큼 야구를 좋아한다. “‘여자들은 야구를 잘 모른다’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참 아쉽습니다. 응원석에 가면 절반 이상이 여성 팬이거든요. 수익이나 흥행을 위해서라도 여성 팬들은 중요한 존재라는 걸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KT 위즈 대학생 리포터 홍수아, 이주, 최다혜씨. 오유진 기자

KT 위즈 대학생 리포터 홍수아, 이주, 최다혜씨. 오유진 기자

지난 2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만난 KT 위즈 대학생 리포터 홍수아(25)·이주(22)·최다혜(22)씨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야구 ‘찐 팬’이다. 홍씨는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 보스턴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올 정도로, 최씨는 코로나19로 수도권 무관중 경기를 진행할 당시 매일 지방 야구장을 찾았을 정도로 야구와 KT 위즈를 사랑한다.

이들은 여성 팬들의 프로야구 유입이 전반적인 야구 문화를 뒤바꿔놨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과거에는 경기의 승패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경기 결과를 떠나 팬서비스를 해주는 게 기본”이라고 답했다. 이씨도 “야구장에 포토 카드, 인생네컷 등 여성 팬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리포터는 구단 내부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2군 선수 등 숨겨진 원석을 찾아 콘텐트를 발굴하는 능력이 탁월해 구단 안팎으로 칭찬이 자자하다. KT 관계자는 “2군 선수들이 활약하는 익산 야구장에도 자발적으로 찾아갈 만큼 열정적이라 큰 도움을 받는다”고 전했다.

일명 ‘쓱피디’로 불리는 정예인(가명·28)씨는 10개 구단 팬들이 가장 트렌디하고 유쾌한 콘텐트라고 입을 모아 칭찬하는 ‘SSG 랜더스(쓱튜브)’ 유튜브 채널의 운영진이다. 이 채널은 지난해  시즌 초반 구독자 1인당 평균 조회수 1위를 기록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타 구단 팬들에게도 사랑받는 콘텐트를 제작한 비결을 묻자 “콘텐트 제작에 적극적인 선수들 덕분”이라며 “선수들의 발언이나 행동이 왜곡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팬들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 좋은 성과를 낸 것 같다”고 전했다.

KBO, 여성팬·MZ세대 잡기 주력

대학 시절부터 오랜 야구 팬이었던 정 PD 역시 프로야구 산업에 발을 들이기 전까진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분위기에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막상 와서 일해보니 성별이 문제가 되는 상황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며 “남녀를 불문하고 진짜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목표는 야구장에서 미처 보여주지 못한 선수들의 매력을 유튜브 영상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정 PD는 “남성 팬, 여성 팬 누가 시청하든 즐겁게 볼 수 있는 영상을 만들고 싶다”며 “선수들과 팬을 잇는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것이 SSG 랜더스 PD로서의 목표”라고 전했다.

삼성 라이온즈 콘텐트에 출연한 ‘라클’ 김예린씨. [사진 김예린]

삼성 라이온즈 콘텐트에 출연한 ‘라클’ 김예린씨. [사진 김예린]

‘금녀의 벽’으로 여겨졌던 프런트에도 균열이 생겼다. 2018년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국에 첫 여성 홍보팀장이 배출된 이래 지난해 3월에는 KBO 역사상 최초의 구단 여성 홍보팀장이 선임됐다. 송은화 롯데 자이언츠 커뮤니케이션팀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송 팀장은 “성별보다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구단과 프런트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며 “최근 구단에 입사한 4명의 신입사원 중 3명이 여성일 정도로 프로야구 내 여성의 입지가 넓어졌다”고 설명했다.

송 팀장은 KBO 구단 최초로 캐치 프레이즈 홍보 영상을 제작, CG 작업까지 시도하는 등 마케팅과 브랜딩 영역을 넘나들며 대대적인 조직 혁신에 도전한다. 그는 “프로야구 최초 여성 홍보팀장이라는 타이틀에 앞서 저는 롯데자이언츠의 구성원일 뿐”이라며 “여전히 선수단 락커 출입 등 한계점도 있지만 여성의 강점이 분명 있다고 생각하기에 변화는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KBO도 여성팬들을 비롯한 MZ세대의 마음 잡기에 열심이다. KBO는 리그 40주년을 맞이해 성수동 ‘카페 포제’에서 오는 10일(일)까지 팝업 스토어 ‘SLIDING TO YOUR LIFE’를 운영한다. MZ세대를 겨냥한 뉴트로 컨셉으로 운영되는 팝업스토어에서는 다양한 굿즈를 판매 중이며, KBO 아카이브센터에 보관된 각종 기록물도 전시돼 있다. KBO 관계자는 “KBO 리그가 단순 스포츠 종목이 아닌 라이프스타일 중심으로 MZ세대에게 접근하기 위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 콘텐트를 제공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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