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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소리에 돌아보자 또 ‘탕’ 두 발의 총알이 생명 앗아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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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6호 03면

아베 전 일본 총리 피격 사망 

8일 오전 참의원 선거 유세 중인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사제총으로 쏴 숨지게 한 남성이 현장에서 경호원들에 의해 체포되고 있다. [사진 아사히신문]

8일 오전 참의원 선거 유세 중인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사제총으로 쏴 숨지게 한 남성이 현장에서 경호원들에 의해 체포되고 있다. [사진 아사히신문]

“판단을 했다. 그는 안 되는 이유를 생각하는 것은…. 펑!”

8일 오전 11시30분쯤 일본 나라현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大和西大寺)역 앞 로터리,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연설이 시작된 지 2분도 채 안 돼 첫 번째 총성이 울렸다. 사람들이 웅성대는 사이 두 번째 총성이 들려왔고 아베 전 총리가 앞으로 푹 쓰러졌다. 일본의 최장수 총리이자 일본 우익의 상징적인 정치인을 앗아간 두 발의 총알이었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일본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아베 전 총리는 이날 아침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내려 나라로 이동했다. 참의원 선거에 나선 자민당 사토 케이 후보의 가두 선거전에서 찬조 연설을 하기 위해서였다. 사건 당시 아베 전 총리는 선거 유세차에 올라타지 않고 역 앞 로터리 펜스 앞에 임시로 설치된 낮은 무대에 올라 연설을 하고 있었다. 유세 일정이 급하게 정해져 유세차 이용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장에서 발포 전 범인 야마가미 데쓰야(山上徹也·41)는 청중들이 모여 있던 아베 전 총리의 앞쪽이 아니라 뒤쪽 주변을 서성대고 있었다. 유세를 보러 온 일반 청중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베 전 총리의 연설이 시작되자마자 뒤쪽에서 총을 두 손으로 감싼 채 저벅저벅 걸어와 5m 거리에서 망설임 없이 총을 두 발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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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일본 도쿄 시민들이 총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기사가 실린 신문 호외판을 받아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8일 오후 일본 도쿄 시민들이 총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기사가 실린 신문 호외판을 받아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첫 번째 총격 후 아베 전 총리는 연설을 멈추지 않고 총성이 난 곳을 찾는 듯 범인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이 때문에 몸 뒤쪽이 아니라 앞쪽에 총을 맞았을 가능성도 있다. 갈색의 긴 바지에 회색 티셔츠를 입은 범인은 총을 쏜 그 자리에서 경찰에 제압됐다. 갖고 있던 개조된 총도 경찰에 압수됐다. 목격자들은 범인이 달아나려는 시도도 하지 않고 순순히 붙잡혔다고 전했다.

총격 직후 현장에 모여 있던 시민들 사이에서 “의사 없나요” “‘자동 심장충격기 없나요”라는 외침이 잇따랐다. 인근 병원에서 의사들이 달려오기도 했다. 의료진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피를 흘리며 누워있는 아베 전 총리를 심장 마사지하는 모습이 NHK 방송 등에 포착되기도 했다.

맨 앞줄에서 연설을 듣던 직장인 남성(26)은 아사히신문에 “아베 전 총리가 연설을 시작하자마자 팡 소리가 났고 ‘폭탄이 터졌다’고 생각해 곧바로 주저앉았다”고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경호원도 현장에 20~30명 있었지만 “대부분 아베 전 총리 앞의 청중들을 향해 서 있었고 뒤쪽을 살피는 것 같지는 않았다”고 이 남성은 설명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나라시에 사는 무직 여성(53)은 버스에서 내려 전단지를 받은 뒤 아베 전 총리의 연설을 듣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한 남자가 아베 전 총리를 향해 다가갔는데 통이 긴 총을 양손으로 잡고 있었다”며 “지금도 심장이 두근두근한다”고 말했다. 인근 4층 건물에서 연설을 들었다는 여고생(17)도 “남자가 바주카포 같은 것을 들고 총리 뒤쪽으로 다가가 쐈다”고 증언했다. 현장에 있던 50대 남성은 “범인이 다가오는 걸 봤는데, 들고 있는 게 망원렌즈가 달린 사진기라고 생각했다”며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아베 전 총리의 나라시 유세 현장 방문은 전날인 지난 7일 저녁에야 결정됐다. 그런 만큼 “아베 총리를 노렸다”고 말한 범인은 전날 밤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아베 전 총리의 방문을 알게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민당이 홈페이지에 올린 8일 유세 일정표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는 이날 나라시 유세를 마치고 교토로 이동해 낮 12시30분부터요시이 아키라 후보 찬조 연설에 나설 계획이었다.

아베 전 총리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열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정치권과 시민들 사이에선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상상할 수 없었던 비극”이란 비탄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아베 전 총리의 사망이 확인된 후인 오후 6시40분쯤 기자들과 만나 “정말 유감이며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슬픔을 표했다. 이어 “마음으로부터 명복을 빈다. 민주주의 근간인 선거 도중 비열한 범행이 일어났다.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로 가장 강한 말로 비난한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오전 아베 전 총리 피격 사실을 보고받은 뒤 야마가타현에서 진행 중이던 참의원 유세를 중단하고 급히 도쿄 총리 관저로 돌아와 대책실을 설치하고 긴급 각료 회의를 열었다.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 방위상은 “형은 목숨을 걸고 정치를 해왔지만 이렇게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 분하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아베 전 총리 피격 현장에 있던 시민들은 직접 찍은 현장 사진 등을 SNS에 올리며 정보를 나눴다. 아베 전 총리가 쓰러지는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도 다수 떠돌았다. 병원으로 실려간 아베 전 총리가 결국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SNS에는 추모 메시지가 이어졌다. 요미우리 신문 등 일본 언론도 이날 호외를 발행해 아베 전 총리의 피습과 사망 소식을 알렸다.

사건 직후 SNS에는 “용의자 국적을 밝히라”며 범인이 재일 한국인임을 의심하는 내용의 글도 올라왔다. 하지만 경찰이 현장에서 체포한 용의자가 전직 해상자위대원이란 사실을 공개하면서 이런 주장은 조금씩 가라앉았다. 오후에는 용의자가 중국에서 거액의 위안화를 거래한 흔적이 확인됐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뉴스가 떠돌기도 했다. 이에 트위터 등에서는 “가짜 뉴스에 속으면 안 된다” “또 다른 혐오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며 자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일본 정부는 아베 전 총리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10일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를 예정대로 치를 예정이다. 기시다 총리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안전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라”며 관계 부처에 경비·경호 강화를 지시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도 “폭력에는 굴하지 않는다. 선거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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