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사주·궁합 ‘MBTI 열풍’]시행착오 용납 안 되는 사회, 완벽한 선택을 위한 몸부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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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초청소년도서관에서는 MBTI 성격유형 검사를 접목한 책 추천 프로그램 ‘bbTI’을 운영하고 있다. 유쾌함, 섬세함 등 성격에 맞춰 도서를 추천한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서초청소년도서관에서는 MBTI 성격유형 검사를 접목한 책 추천 프로그램 ‘bbTI’을 운영하고 있다. 유쾌함, 섬세함 등 성격에 맞춰 도서를 추천한다. [연합뉴스]

“교수님의 MBTI 유형이 궁금해요?!”

최근 몇 년 사이 학생들에게 정말 자주 듣는 질문이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가만히 보니 학생들이 자기소개를 할 때 꼭 덧붙이는 필수요소이며, 관심 있는 누군가를 만나면 상대의 MBTI 유형을 묻는 것이 일종의 규칙이다. 자기보고서 문항을 통해 개인의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주는 MBTI는 요즘 MZ세대 일상의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뿐만이 아니다. 정치, 경제, 언론,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MZ세대의 MBTI 선호를 겨냥한 많은 상품들이 출시되고, 트위터와 유튜브 등 각종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MBTI와 관련된 수 없이 많은 콘텐트들이 쏟아져 나온다. 몇몇 기업들에서는 입사지원 시 지원자의 MBTI 유형을 가지고 자기소개서 작성을 요구하고, MBTI가 특정 유형인 경우 채용하지 않는다는 채용공고도 드물지 않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쯤 되면 MBTI 광풍이라 부를 만하다. 이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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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MBTI 자체의 특성에 주목할 수도 있다. 그러나 MBTI 못지않게 혈액형과 사주(四柱), 타로점, 그리고 각종 심리테스트 역시 MZ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니 MBTI의 특별함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그보다는 MBTI와 혈액형, 사주 및 타로점, 그리고 각종 심리테스트에 대한 MZ세대의 몰두가 궁극적으로는 그들 ‘자신에 대한 탐구’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현상의 본질에 근접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MZ세대는 자아를 탐구하기 위해 이 같은 각종 테스트에 열중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일차적인 답은 이들의 세대적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MZ세대는 ‘미 제너레이션(Me generation)’이라고 불릴 만큼 타인보다 ‘나 자신’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갖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엔 ‘내가’ 존재하며, 선택의 기준 역시 자기 자신이 된다.

MZ세대,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은 ‘나’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각종 정보기술(IT) 기기와 온라인 환경을 접하며 성장한 ‘디지털 원주민’이기도 하다. MZ세대에게 온라인은 오프라인 현실과 구분되는 가상의 공간이 아니라 엄연히 실재하는 또 하나의 생활세계로 간주된다. 학업과 업무, 여가와 쇼핑, 취미와 대인관계에 이르기까지 MZ세대는 모든 일상을 디지털과 함께하며, 그 과정에서 재미를 추구한다. 사뭇 진지한 사안도 MZ세대를 거치면 ‘밈(meme)’화 되며 유희의 대상으로 거듭나고, 어려운 문제에도 재미라는 요소가 가미되면 쉽게 몰입한다.

효율성에 대한 고려도 빼놓을 수 없다. ‘엄지족’이라 불릴 만큼 모든 것을 스마트폰으로 해결하고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를 통해 관심사와 성향이 맞는 사람들과 즉각적인 관계를 맺고 취향공동체를 형성하는 MZ세대에게 오랜 시간 공들여 타인을 알아가는 일은 비효율적인 일이다. 이들은 온라인에서 확인할 수 있는 타인에 대한 정보를 취합해 자신과 ‘통하는’ 타인을 빠르게 선별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MBTI를 비롯한 각종 테스트들은 MZ세대에게 디지털 매체를 통해 쉽고 빠르게, 또 재미있게 자아를 탐구하고 타인을 파악할 수 있는 최적의 도구가 된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한 답을 얻었다고 볼 수 있을까? MZ세대의 자아탐구를 이들의 세대 특징으로만 설명하기엔 충분하지 않다. 현상의 본질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MZ세대는 왜 자아탐구에 몰두할까? 이 질문은 우리의 좁아진 시야를 시대적 맥락과 사회구조로 넓힐 것을 요한다. MZ세대의 특성은 시대와 구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계층 이동 기회 막혀 근면의 신화 퇴색

한강의 기적, 급속한 경제 성장, 사회적 성공을 보증하는 대학 학위, 그리고 근면의 신화까지. MZ세대의 부모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가 살아온 한국의 단면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충분한 계층 상승의 기회와 노력의 결실이 주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그들의 부모에게서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었고, 그 결과 MZ세대는 한국 역사상 최고 수준의 대학 진학률과 문화자본을 갖춘 세대로 성장했다.

그러나 MZ세대의 현실은 달랐다. 경제 성장은 둔화되었고, 대학 졸업장은 더 이상 사회적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으며, 닫혀버린 계층 이동의 기회는 근면의 신화를 퇴색시켰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심화된 개인주의와 치열한 경쟁구도 하에 개인은 스스로를 기획, 관리하여 경쟁력 있는 자원으로 거듭나야만 하는 사명을 갖게 되었다. 이에 MZ세대는 안정된 삶을 책임져 주지 않는 사회 안에서 자기경영의 주체가 되어 실패 없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시행착오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화한 MZ세대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완벽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강박, 내 선택이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그리고 이러한 강박과 불안은 나에게 꼭 맞는 선택을 위한 기준을 세우는 작업으로 귀결된다. 결국 MZ세대의 자아탐구는 한국사회를 지탱하던 신화들의 붕괴와, 여기서 파생된 근원적인 불안이 만들어낸 새로운 신화 즉 ‘나를 알면 나에게 꼭 맞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개인적으로 불안한 시대와 사회를 살아내기 위해 나 자신에 대해 집중하고 탐구하는데 매진하는 것은 적절한 적응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자기 자신을 탐구해도 사회구조적인 부분이 변화하지 않으면 우리의 기회는 확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과도하게 침잠해 더 큰 맥락에서 문제점을 조망하고 다른 사회구성원들과 함께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사회가 MZ세대의 자기탐구의 열망을 함께 고민해야 봐야하는 이유다.

최샛별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사회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사회의 세대문화, 문화예술정책등을 연구한다. 한국문화사회학회 『문화와 사회』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문화사회학으로 바라본 한국의 세대연대기』   『현대문화론』  등 90여 편의 저서·역서 및 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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