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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주·궁합 ‘MBTI 열풍’]“우리와 잘 맞는 인재 찾겠다” 가치관 평가, 삼성·SK·LG 등 대기업 채용 필수 관문 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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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6호 09면

SPECIAL REPORT

5월 삼성그룹 채용에 지원한 취업준비생이 적성검사 응시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5월 삼성그룹 채용에 지원한 취업준비생이 적성검사 응시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업에서 채용 전형으로 활용하는 인성·적성 검사는 짧은 시간 안에 지원자의 가치관을 다각도로 평가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검사다. 삼성그룹의 GSAT, SK그룹의 SKCT, LG그룹의 LG way fit test, 포스코그룹의 PAT 등이 대표적이다. 언어이해, 추리 등 다양한 유형을 출제해 지원자의 직무 기초 역량과 창의성, 인성을 평가하는 데 활용된다.

일명 ‘삼성고시’라고 불리는 삼성직무적성검사(GSAT)는 채용시즌 때마다 약 10만 명의 취업준비생들이 응시하는 인·적성 검사의 표본 중 하나다. 1996년 처음 도입된 삼성직무적성검사는 당시 이건희 회장의 “졸업장으로 기회의 차별을 두지 말고 능력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의지에서 시작됐다. 삼성 관계자는 “수리, 추리 능력을 중점으로 지원자의 종합적인 자질을 평가한다”며 “단순 암기식 필기시험으로 ‘줄세우기식’ 인재를 뽑기보단 삼성에 맞는 ‘맞춤형’ 인재를 뽑기 위해 도입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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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검사는 IQ 테스트, 인성검사는 운”

유수의 대기업들이 채용과정에서 인·적성 검사를 도입한 이유는 기업문화와 맞는 인재를 뽑기 위해서다. 쉽게 해고하기 어려운 국내 고용시장 특성과 맞물려 채용 단계부터 꼼꼼히 따져보자는 의도다. 홍석환 HR전략컨설팅 대표는 “좋은 성과를 내는 것만큼이나 성과 창출에 방해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시작된 채용절차”라고 설명했다.

인·적성 검사가 주요 평가수단으로 자리 잡은 데는 1970년대부터 이어져 오던 대규모 공개채용 문화도 한몫했다. 수만 명의 지원자를 한정된 기한 안에 평가하다 보니 경험, 역량 위주의 평가보다는 정량적 평가방식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이완 잡플랫 대표는 “다수의 지원자를 동시에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하기에 인·적성 검사만큼 효율적, 과학적인 수단이 없다”며 “면접처럼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지원자를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어 활용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반면 해외에서는 인·적성 검사가 흔치 않다. 대다수 기업이 인턴이나 아르바이트 등 실제 수행했던 활동을 기반으로 지원자의 역량을 5~6단계에 걸쳐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의 경우 획일화된 교육방식이 굳어져 있다 보니 지원자들이 다양한 경험을 쌓을 기회가 없고, 간혹 대외활동을 하더라도 범위가 제한돼 있어 이른바 줄세우기식 정량 평가방식이 자리잡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취업준비생 입장에서는 이 과정이 달갑지만은 않다. 어학 능력, 대외활동 경험, 자격증 등 소위 정량적 스펙을 갖춘다해도 인·적성 검사는 노력만으로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적성검사는 IQ 테스트, 인성검사는 운”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2020년 채용정보 플랫폼 잡플렉스가 취업준비생 74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구직자 56.3%는 가장 의미 없는 채용 전형으로 인·적성 검사를 꼽았다. 구직자들은 ‘직무와 상관없는 평가요소가 많다’, ‘변별력이 없다’, ‘인·적성 검사로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등을 이유로 꼽았다. 특히 가치관, 성향 등을 파악하는 인성검사의 경우 일반인이 문항의 의미나 평가 기준을 파악할 수 없도록 설계돼 사실상 대비가 불가능하다. 기업들은 인·적성 검사가 객관적, 과학적 도구라고 주장하지만, 취업준비생들은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다.

기업에서는 한국행동과학연구소 등 오랜 시간 인간 심리를 연구한 곳과 협업으로 만든 검사라 신뢰도가 90% 이상이라고 주장한다. 검사를 만드는 절차도 단순하지 않다. 기업 내에서 근무 평가점수가 높은 구성원을 검사해 표본을 만들고, 수천 명의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표준화 작업을 거친다. 다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금물이다. 윤영돈 윤코치연구소 소장은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검사라 타당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검사가 그렇듯 100% 맹신하거나, 이 검사만으로 모든 역량을 판단할 수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이 대표도 “전문가를 제외하고 데이터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잘못 활용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며 “기업과 가치관이 다르다는 결과를 두고 마치 반사회적이고 절대 채용해서는 안 되는 인물, 혹은 능력이 부족한 인물로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채용과정에서 MBTI 등 신뢰도나 타당도가 낮은 성격유형 검사들을 활용하는 경우가 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성격 유형을 분류하기 위해 만들어진 MBTI 결과를 채용에 반영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윤 소장은 “MBTI는 유형별 특성만 학습하면 얼마든지 조작, 연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변별성이 없는 도구”라며 “가장 공정해야 할 채용 전형에 신뢰도가 낮은 MBTI를 활용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홍 대표도 “MBTI는 응답자가 처한 환경이나 맡은 직책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며 “자신들과 유사한 성격의 지원자를 채용해 편리하게 조직을 운영하겠다는 생각이겠지만, 사실 조직의 성장에는 백해무익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특정 유형만 있을 경우 조직 혁신 저해”

지난 4월 기업 정보 플랫폼 잡플래닛과 이한준 명지대 교수팀이 기업별 MBTI 분석을 내놓은 것도 채용 시장에서의 MBTI 남용을 막기 위해서다. 기업 구성원의 조직 평가를 바탕으로 기업별 성격유형을 분석했다. ‘스파크형’인 ENFP 유형에는 카카오, 당근마켓, 네이버 등 IT 기업들이, ‘언변능숙형’인 ENFJ 유형에는 쿠팡, 마켓컬리, 빗썸코리아 등 유니콘 기업들이 이름을 올렸다. 연구팀은 “구성원의 성격유형과 조직의 성격유형이 비슷할수록 만족감이 높았고, 조직 또한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분석됐다”면서도 “하지만 특정 유형의 조직원만 조직에 있을 경우 조직 혁신을 저해하고,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등 오히려 부작용이 크다는 결과도 함께 나왔다”고 밝혔다. 잡플래닛 관계자는 “기업이 MBTI를 특정 유형의 구성원을 채용하는 식으로 활용할 것이 아니라, 회사의 조직 문화는 어떤 상태인지 진단해보는 수단으로 사용했으면 한다”며 “결국 구성원과 기업이 서로의 다른 성향을 이해하고 포용할 때 직원 만족도도 높아지고, 기업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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