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가격 뛰고 보조금 축소, 친환경성 논란도 재점화

중앙선데이

입력 2022.07.09 00:01

업데이트 2022.07.10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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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6호 16면

잘나가던 전기차 회의론 배경 

45%. 지난 8일 유럽연합(EU) 의회에서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금지 안’에 반대표(기권 포함)를 던진 비율이다. 이날 EU 집행위원회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줄이기 위해(핏 포 55) 내연기관차 판매금지 안을 표결에 부쳤다. 이제 EU 회원국의 동의만 얻으면 전기차를 제외한 기존 휘발유·경유 차량은 2035년부터 신규 판매가 금지된다. 비록 찬성표가 더 많았지만 반발 목소리가 과거에 비해 커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독일자동차협회(VDA)는 “대체 저탄소 연료에 불이익을 주고, 충전 인프라 구축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너무 이른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전기차의 아성이었던 유럽의 일부 국가는 최근 들어 전기차 구매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전기차 보조금’을 없애거나 줄이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영국이다. 영국은 최근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폐기했다. 독일은 내년부터 전기차 보조금 지급을 단계적으로 축소한다고 밝혔다. 최대 6000유로의 보조금을 지급해온 것과 달리, 내년부터 4000유로, 2024년엔 3000유로로 줄여나가 2026년에는 보조금 지급을 아예 종료한다. 지난해 신차 판매 중 전기차가 65%를 차지한 노르웨이는 최근 전기차에 대한 세제 혜택을 줄일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전기차, 내연기관차보다 40% 비싸

현대 코나 일렉트릭

현대 코나 일렉트릭

이서현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근 전기차 가격이 오르고 있기 때문에 가격적으로 메리트를 계속 준다고 과연 시장 확보가 될 것이냐는 논란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최근 배터리 원자재 가격이 오르거나, 전기차 화재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면서 전기차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다시 나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사태가 난데없이 전기차를 덮쳤다. 온실가스 저감을 위해 한국을 비롯해 주요국이 보조금 지급이나 세제 혜택을 통해 전기차 보급에 적극 나서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위기와 전쟁으로 배터리 가격이 치솟으면서 전기차의 경제성이나 친환경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내연기관차 판매금지 등과 같은 조치가 성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재완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전기차 가격 인하 지연, 전기차의 친환경성과 경제성에 대한 재평가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전기차 산업이 본격적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전기차 생산원가의 40%를 차지하는 배터리 원자재 가격이 최근 고공행진을 하면서 전기차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의 원자재 중 하나인 리튬 가격은 이달 초 kg당 455.5위안으로 전년(80위안) 대비 5배 넘게 올랐다. 니켈도 t당 2만1650달러로 전년 대비 20% 상승했다. 이로 인해 전기차 가격 상승 압력도 커지고 있다. 미국 컨설팅회사 앨릭스 파트너스 보고서에 따르면 5월 기준 전기차 1대당 평균 원자재 비용은 8255달러로, 2020년 3월 3381달러 대비 144% 뛰었다. 지난 2년 동안 전기차 관련 비용은 2000달러에서 4500달러로 두 배 증가했다.

허머 EV

허머 EV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요 전기차 제조업체는 판매가격을 인상하고 있다. 미국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는 올해만 세 차례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최근 1년간 인상폭도 2000만원 이상이다. 이 회사의 모델3 스탠다드레인지 가격은 지난해 3만8190달러에서 4만6990달러로 23% 상승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지난 1분기 실적발표에서 “부품 공급 업체들이 지난해와 올해 부품에 대해 20~30%의 비용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기차 제조업체 루시드는 에어 그랜드 투어링 모델 가격을 10.8%가량(13만9000→15만4000달러) 인상했다. GM 역시 지난달 전기 픽업트럭인 허머EV 가격을 6250달러 올려 종전보다 8.5%가량 인상했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배터리 가격 상승은 전기차로의 빠른 전환을 늦추는 요소 중 하나”라고 말했다. 배터리 가격이 계속 뛴다면 전기차 보급화에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는 얘기다.

테슬라 모델X. [사진 테슬라코리아]

테슬라 모델X. [사진 테슬라코리아]

유럽에서 전기차 회의론이 일고 있는 건 이 같은 가격 인상과 무관치 않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 대비 40%가량 비싼 편이다. 지난해 씨티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구성부품 원가의 총합을 따져봤을 때 전기차(2만900달러)는 내연기관차(1만4169달러) 대비 47% 비쌌다. 그럼에도 유럽을 비롯해 세계 주요 나라는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내연기관차보다 상대적으로 탄소배출이 덜한 전기차 확대에 나섰고, 보조금을 지원하는 식으로 내연기관차와의 가격 차이를 줄여 왔다. 한국만 해도 2011년부터 지급을 시작해 당시 승용차 기준 국비 1500만원부터 지급해왔다. 올해는 보급대수 확대에 초점을 맞춰 1대당 보조금을 800만원에서 700만원으로 내렸고, 전체 예산 규모는 늘렸다.

각국 정부가 정부 재정을 통해 전기차 확산에 나선 이면에는 기술 개발 등으로 수년 내에 전기차 가격이 내연기관차와 비슷해지거나 더 저렴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지난해 블룸버그 NEF 보고서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 가격이 kWh당 100달러(팩 기준) 미만일 경우 경우 2024년께에는 보조금 없이 내연기관차와 경쟁이 가능한 수준(cost parity)에 도달할 것으로 봤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기존의 완성차 업체들도 이에 맞춰 전기차로의 전환 계획을 세웠다. 현대차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 전기차로 가져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의 BMW는 미니 모델의 경우 2023년부터는 전기차만 생산할 계획이고, 메르세데츠-벤츠도 ‘전기차 퍼스트’에서 ‘전기차 온리(only)’로 전략을 바꿨다. 2030년엔 라인업 100%를 전기차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국내 현대·기아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사태로 배터리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전기차 보급 로드맵이 재평가 대상이 된 것이다. 특히 유럽은 전력 생산과 난방을 위한 액화천연가스(LNG) 3분의 1을 러시아에서 수입하는데, 지난해 러시아가 LNG 수출량을 대폭 줄이기 시작하면서 유럽 전역에서 공급난이 벌어지고 있다. EU 통계기구 유로스탯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EU의 에너지 소비자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25% 올랐다. 전기 요금이 급격히 올라 공장이 중단되기도 했다.

세계에서 둘째로 큰 아연 제련업체인 프랑스 니르스타는 kWh당 50유로 수준이던 전기료가 지난해 12월 400유로로 뛰자 추가 생산할수록 손해 볼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 지난 1월 3주간 공장 가동을 멈췄다. 전기 요금이 급등한 상황에서 값비싼 전기차 확대를 서두를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민경덕 서울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겠다는 국가는 대부분 전기 생산이 풍부한 나라”라며 “전기가 풍족하지 않은 나라는 전기차 확대 시기를 늦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런 와중에 전기차의 친환경성 논란까지 재점화하고 있다. 자동차의 전생애(생산부터 운행, 폐기·재활용까지)주기인 LCA(Life Cycle Assessment) 기준으로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을 검토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민 교수는 “LCA 관점에서 보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내연기관 전기차)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비슷하다”며 “탈(脫)탄소를 주장하면서 전기차 확대에만 중점을 두는 건 합리적이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공장 출시 단계에서만 보면 휘발유차가 전기차보다 탄소배출량이 더 적다. 지난해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테슬라 모델3와 휘발유차인 도요타 라브4의 출시 단계 탄소배출량은 각각 12.2t, 7.4t으로 전기차가 되레 65% 더 많았다. 그런데도 전 세계가 전기차 보급에 열을 올리는 것에 대해 민 교수는 “LCA가 아닌 운행과정상(tailpipe)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으로만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유럽에서의 전기차 논란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전기차 가격이 당장 내연기관차 수준으로 확 떨어지기 어려운 상황인 데다 유럽의 에너지 요금 대란이 향후 1~2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독일은 러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LNG 수송관인 노르트 스트림2의 최종 승인을 불허하기도 했다.

에너지 부족 국가, 전기차 보급 늦춰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배터리 가격은 가격 동등성(cost parity) 문제를 넘어 출렁이기 시작했다”며 “공급망 위기 등 이번 사태로 배터리 전기차는 가격 변동성에 더 취약하다는 게 확인됐다”고 말했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충이 쉽지 않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그렇다고 전기차로의 전환이라는 대전제가 흔들릴 것으로 보는 이는 많지 않다. 전문가들은 각국 정부의 정책도 당장 전기차 보급에만 열을 올릴 게 아니라 기술적인 문제, 인프라 확충 문제 등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필수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는 시대의 흐름이고 탄소 저감 문제는 생태계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며 “정부는 좀 더 종합적으로 친환경차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거나, 부품 업종을 변환시키든지 해서 자동차 애프터 마켓의 일자리에 대한 문제도 능동적으로 대처해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경덕 교수도 “전기차가 최근 급격히 늘었기 때문에 인프라 구축에 예산을 더 투입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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