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정리하고 채권 샀다” 개인들 상반기만 5조 순매수

중앙선데이

입력 2022.07.09 00:01

업데이트 2022.07.0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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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6호 14면

증시 침체기 채권 투자 열풍 

경기도 성남시에 거주 중인 직장인 김형준(40)씨는 최근 증권사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통해 한국항공우주산업 채권을 매수했다. 연일 폭락하는 주식 시장에 마음 졸이던 김씨는 주식 대신 투자할 곳을 찾다 채권에 투자해 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증권사 MTS에서 주식을 거래할 때와 마찬가지로 어렵지 않게 채권에 투자할 수 있다는 점도 투자를 자극했다. 김씨는 “한국항공우주는 정부 소유인 한국수출입은행을 최대주주로 두고 있는 회사”라며 “사실상 망할 일이 없는 회사인데 연 수익률이 4.258%나 되고, 내년엔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으니 지금 상황에선 주식보다 낫다”고 말했다.

서울시 송파구에 거주 중인 자영업자 장모(58)씨도 최근 채권 투자를 위해 주식계좌와 펀드 일부를 정리했다. 주변 자산가들 사이에서 절세 목적의 국고채 투자 사례가 들려오자 그 역시도 일부 자금을 채권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장씨가 눈여겨보고 있는 채권은 2020년 발행한 5년 만기 국채다. 장씨는 “2020년 발행한 이 채권은 지난해부터 금리 인상이 이어지면서 발행 당시보다 싼 가격에 거래된다”며 “돈 좀 있다고 하는 자산가들 사이에선 이미 소문난 투자 대상”이라고 귀띔했다.

경기 침체 땐 기준금리 다시 인하 전망

채권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늘면서 올해 상반기 개인 투자자들의 국내 채권 순매수 금액은 5조398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 순매수 금액(2조7013억원)의 두 배 규모이고, 지난해 연간 순매수 금액(4조5675억원)을 반년 만에 넘어선 것이다. 국내 투자자들은 미국 채권 투자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투자자의 미국 채권 순매수 규모는 13억4900만 달러(약 1조8000억원)로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가량 늘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국내외 할 것 없이 채권 투자가 급증하자 증권가에선 ‘앞으로 2년은 채권의 시대가 될 것’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삼성증권의 한 프라이빗뱅커(PB)는 “금융투자에 관심이 많은 고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다 보니 하루 받는 문의의 절반 이상이 ‘특정 채권을 구해줄 수 있느냐’였다”며 “회사 전체로는 올해 상반기에만 국공채와 회사채(신종자본증권포함) 3조원가량이 팔려나갔다”며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채권은 정부나 공공기관, 기업 등에 자금을 맡기고 이자를 받는 일종의 ‘빚 문서’로, 이를 규격화해 또 다른 투자자와 사고팔 수도 있게 만든 것이다. 투자자 입장에선 일정 기간 이자를 받고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예금통장을 사고파는 셈이다. 채권 가격이 오르면 이자 수익 외에 시세차익까지 얻을 수 있다. 투자 방법도 어렵지 않다. 채권 투자는 증권사와 은행을 통해 가능한데, 은행은 채권맞춤형신탁(MMT)에 가입하는 식이라 최소 1000만원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증권사에서는 1000원부터 거래가 가능한 소액거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주식처럼 간단하게 채권을 사고 팔수 있다. 삼성증권을 예로 들면 증권사 계좌를 개설하고 MTS를 설치한 뒤 금융상품 메뉴의 채권을 선택하면 거래를 바로 시작할 수 있다. 투자를 원하는 채권을 눌러 매수 금액이나 수량을 입력하면 거래가 진행된다.

채권은 누가 발행하느냐에 따라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와 지방채, 금융기관에서 발행하는 금융채와 기업에서 발행하는 회사채 등으로 나뉜다. 같은 회사에서 발행한 채권이더라도 만기나 금리, 발행 시기 등 조건이 달라지면 수익률에 차이가 난다. 주식으로 치면 다른 종목이란 얘기다. 이 가운데 투자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채권은 공기업이나 은행에서 발행한 채권이다. 부도 가능성은 낮지만 최근 수익률이 올라오면서 주목받고 있다. 박주한 삼성증권 채권상품팀장은 “올 들어 기준금리가 인상됐지만 인상폭이 온전히 반영된 예금 상품이 많지 않다 보니 채권을 찾는 개인 투자자들이 늘었다”며 “한국전력 등 공기업이나 은행권 신종자본증권은 연 수익률이 4%대 후반에 이르는 것도 있어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세금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채권 투자 메리트로 꼽힌다. 장씨처럼 절세에 관심이 많은 자산가들 사이에선 없어서 못산다는 2020년 발행 국고채가 대표적인 상품이다. 이 채권의 연이율은 1.285%에 불과하지만, 2년 새 가격이 떨어져 수익률이 최근 연 4.16%까지 치솟기도 했다. 주식으로 치면 급락주인데, 채권은 만기가 있어 투자자들에게 인기다. 예컨대 1년 뒤 원금 1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는 ‘빚 문서’를 시중에서 9700원에 샀다면, 이자 수익을 제외하고도 원금을 돌려받을 때 3%가량의 수익이 추가되는 것이다.

더구나 채권 만기시 돌려받는 원금엔 세금이 붙지 않아 동일한 금리의 은행예금에 가입하는 것보다 세후 수익률이 높다. 박 팀장은 “채권은 워낙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안정적으로 은행보다 높은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나 절세를 원하는 투자자, 그리고 경기침체 대비까지 투자자별 상황에 맞춰 다양한 투자 대상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최근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진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개인 투자자들이 채권 매수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외국인과 기관은 개인 투자자들과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 외국인과 기관의 채권의 순매수 규모가 지난해에 비해 각각 27조원씩 총 54조원 줄었다. 매매차익이 수익의 원천인 주식 시장이라면 ‘개미털기’를 걱정할 법 하지만 전문가들은 채권시장에선 기우(杞憂)라고 입을 모은다. 기관이나 외국인의 투자 목적이 개인 투자자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만기까지 보유하는 게 일반적인 개인 투자자와 달리, 외국인과 기관은 수시로 채권을 사고팔아야 하기 때문에 올해 상반기 순매수 규모가 줄었을 뿐이란 얘기다.

채권 가격은 금리의 영향을 받는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내려가는 식이다. 예컨대 연이율 2%대 이자를 주는 예금 상품에 가입했는데, 한 달 뒤 금리가 올라 동일한 상품의 연이율이 2.25%가 됐다면 기존 예금 통장은 가격을 깎아줘야 팔리는 것이다. 최근에는 금리가 올라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채권 상장지수펀드(ETF) 가운데 올 들어 수익률 상위를 차지한 것은 모두 채권 가격이 하락할 때 수익을 내는 ‘인버스 ETF’ 상품이다. 장항진 한국채권투자자문 전무는 “금리가 오를 땐 채권에 투자하기 안 좋은 시기인 것은 맞다”면서도 “다만 어디까지나 만기 전 매매가 빈번한 기관 투자자들 얘기고, 개인 투자자들 입장에선 만기까지 보유하려는 목적이 크다 보니 주식 시장이 워낙 안 좋을 때 연 4%대 만기 수익률을 거두겠다는 목적으로 단기 채권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어려울 땐 우량등급 회사채 선별해야

연초 이후 국고채 금리 추이

연초 이후 국고채 금리 추이

개인과 기관·외국인으로 갈린 채권 투자 행보는 조만간 변곡점을 맞을 전망이다. 최근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는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 때문이다. 지금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에 주요국이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리고 있지만, 경기 침체 위협이 부상하면서 금리가 다시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푸어스(S&P)의 루이 커쉬 아태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6일 열린 세미나에서 “지금은 미국 기준 금리가 3.5%에 이를 것이라 긴장하고 있지만 2000년대에는 금리가 이보다 훨씬 높았다”며 “일부 경제학자들은 기준금리가 다시 낮은 수준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고 있고 내부적으로도 3~4년 뒤에는 기준금리가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국은행의 금리인상 사이클이 후반부에 접어들었다는 시각이 부상하고 있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7월은 물론 8월 금통위에서도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8월 수정경제전망에선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통화당국이 금리를 낮추면 시중 금리 하락으로 이어져 채권 가격은 상승하게 된다. 따라서 지금 사 놓으면 매매차익까지 노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차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채권 가격이 가장 낮을 때 매수를 집중시켜야 하는데, 채권 가격은 시중 금리가 고점을 찍을 때를 바닥을 치곤 한다. 김영익 서강대 교수도 “최근 2년 정도는 시중 금리가 오르니 채권 투자하면 손해였지만 시대가 변하고 채권 투자에 유리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며 “다만 경제 전반에 어려운 시기인 만큼 국채가 아니라면 우량등급 회사채를 선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관이나 고액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이미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6월을 기점으로 만기가 긴 국고채와 국민주택채권을 찾는 수요가 늘었다는 것이다. 신동준 KB증권 WM솔루션본부장은 “경기가 침체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투자에 나선 것”이라며 “오는 13일 예정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올리더라도 시중의 장기금리는 더 높아지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반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투자자들에게도 만기 보유 목적의 투자뿐만 아니라 매매 차익을 얻을 기회가 다양해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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