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리볼빙 6조 역대 최고, 금융시장 ‘카나리아’ 경고음

중앙선데이

입력 2022.07.09 00:01

업데이트 2022.07.0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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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6호 06면

금융 부실 위험 진단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8일 저축은행과 여신전문금융사 등 대출리스크가 집중된 금융권을 대상으로 점검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 원장과 저축은행 CEO 간담회 모습. [뉴스1]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8일 저축은행과 여신전문금융사 등 대출리스크가 집중된 금융권을 대상으로 점검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 원장과 저축은행 CEO 간담회 모습. [뉴스1]

19세기 광부들은 탄광에 들어갈 때 카나리아를 데리고 들어갔다. 카나리아는 일산화탄소에 유독 민감한 새다. 광산에 산소가 부족해지면 픽픽 쓰러졌다. 아름다운 카나리아의 노래가 멈추면 광부들은 탄광의 위험을 감지하고 즉시 탈출을 시도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경기불황 속 물가상승)’이 현실화하면서, 금융시장의 위험을 알리는 카나리아 노래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신용카드 리볼빙(결제액 이월 약정) 이용액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것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경기침체와 고물가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고금리 리볼빙의 증가는 한계 상황에 이른 차주가 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다중채무자가 많은 카드 이용자의 특성상 금융권 연쇄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유예됐던 대출 원금 상환 유예 및 만기 연장 조치가 오는 9월 종료되면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취약차주들의 부실 위험이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 금융시장의 긴장감이 차츰 높아지고 있다.

금융당국도 대응 속도를 높이고 있다. “무리한 영업을 자제하고 유동성 관리에 나서라.” 지난 5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카드사·캐피탈사 등 여신전문금융회사(이하 여전사) 대표를 한 자리에 소집한 자리에서 이같이 경고했다. 8일 저축은행 최고경영자와의 간담회에선 “상환능력 범위 내 대출 관행이 조기 정착되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리볼빙, 불법 사채 쓰기 전 마지막 단계

한국은행이 지난달 내놓은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여전사의 취약층 대출 규모는 74조8000억원, 저축은행의 대출 규모는 46조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여전사와 저축은행 전체 대출의 각각 64.6%와 78.9%를 차지할 정도로 상당한 수준이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중금리가 오르면 상대적으로 취약 차주의 어려움이 커지고, 이로 인해 빚을 못 갚는 대출자(한계 차주)도 늘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과거 금리인상기(2016년 4분기~2019년 1분기)에 취약 차주의 연체율은 1.9%p 증가했다. 지금은 금리 인상 속도가 당시를 훨씬 능가한다. 이들 비은행권은 부동산 대출 비중도 전체 기업대출의 50%에 육박할 정도여서, 부동산 경기 하락 리스크에도 취약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특히 여전사는 유동성·신용리스크가 중첩돼 자산 부실화의 우려가 큰 상황이다. 다만 현재 카드업계의 건전성 지표는 양호한 수준이다. 지난 3월 말 기준 카드사의 연체율은 1.1%에 불과하다. 비카드사의 0.94%와 견줘 차이가 크지 않다. IMF 외환위기, 카드대란을 겪은 금융권의 위험관리 역량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건전성 지표의 외형과 달리 그간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부실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된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취약차주들의 상환 여력 저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대표적인 것이 결제성 리볼빙 잔액 증가다. 고금리인 결제성 리볼빙이 늘어나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7개 카드사(신한·국민·삼성·현대·롯데·우리·하나카드)의 결제성 리볼빙 이월 잔액은 지난 5월 말 기준 6조4000억원으로, 해당 집계를 시작한 2012년 이후 역대 최대치로 치솟았다. 2년 새 1조원이 늘어난 규모다. 카드 대금 상환 능력이 떨어지며, 부채의 질이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연체와 부실을 유발하는 고금리와 유예 문제가 리볼빙의 고유 속성이라면, 최근의 리볼빙 규모 증가는 개인 신용의 하락을 넘어 우리 경제를 주름지게 할 수 있는 이례적 신호로 읽힐 수 있다”고 말했다.

장기카드대출(카드론) 연체자에게 상환해야 할 대출금을 다시 빌려주는 ‘카드 대환론’ 잔액도 급증세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7개 전업카드사의 5월 말 기준 카드 대환론 잔액은 9632억원으로, 지난해 말 8837억원보다 9% 증가했다.

카드 이용자들은 다중채무자가 많아서 금융권 연쇄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서민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여전사의 다중채무자 비중은 46.5%다. 은행(25.2%)이나 상호금융(29%)의 다중채무자 비중을 압도한다. 민복기 한국가계재무연구소 소장(한국금융연수원 외래교수)은 “리볼빙 등 상환 여력을 넘어서는 무리한 카드 소비가 증가한다는 것은 이미 상당한 위험 징후라고 볼 수 있다”며 “다중채무를 가진 카드 이용자들이 경기 악화로 손을 들게 되면, 신용리스크가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카드 리볼빙이 ‘탄광 속 카나리아’로 주목받는 이유는 제도 금융권 ‘악성 부채’의 끝판이어서다. 법정 최고 금리인 20%에 육박하는 높은 이자와 신용도 하락에도 불구하고 당장 대금을 갚기 어려운 이들이 사용하는 비상 수단이다. 민 소장은 “리볼빙은 불법 사채로 가기 전 마지막 단계로 선택하는 상품으로, 취약차주들을 위한 출구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때가 됐다”고 말했다.

카드정보포털 카드고릴라는 ‘카드스쿨’(2020)에서 카드 리볼빙 이용을 ‘러시안룰렛’에 비유했다. 1개의 총알을 실린더에 넣고 돌아가며 자기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듯, 총알을 빼내지 않고 회전을 거듭하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행위와 같다는 것이다.

리볼빙은 카드대금을 약정된 결제일에 전액 납부하기 어려울 때, 일부만 먼저 결제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갚을 수 있도록 한 서비스다. 일정 기간에 나눠 갚는 할부와 달리, 리볼빙은 별도의 상환기일이 정해져 있지 않다. 매월 약정 비율의 금액을 내면, 남은 금액은 반복해서 이월된다. 금융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리볼빙의 가장 무서운 독(毒)은 ‘줄지 않는 빚’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심각한 채무라고 인식하지 못한 채 더 많은 사용이 이뤄지게 돼 빚의 수렁에 빠진다는 데 위험성이 있다. 더구나 그 빚은 법정 최고금리인 연 20%에 육박하는 고금리로 꼬박꼬박 불어난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7개 전업 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의 리볼빙 평균 금리는 최고 연 18.52%(롯데카드)에 달했다. 다른 카드사의 평균 금리도 연 14.83~17.76%로, 카드론 평균 금리인 연 12.10~14.94%보다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고신용자도 고금리를 비껴가지 못했다. 최고 17%를 넘어섰다. 신용평점 900점 초과(KCB 기준)에 적용되는 카드사별 리볼빙 금리가 최소 11.9%에서 최고 17.06%에 이르렀다. 송승용 희망재무설계 대표는 “리볼빙은 불법 사채를 쓰는 것 못지않게 위험하다”며 “지인의 도움을 받거나 주식 등 자산을 처분해서라도 당장 불씨를 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리볼빙 이용 잔액이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강화에 따른 풍선효과를 주목한다. 이달부터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2억원에서 1억원으로 강화되면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취약차주들이 DSR에 포함되지 않는 상품으로 우회하고 있다. 카드론은 올해부터 DSR에 포함됐지만, 리볼빙은 예외가 적용된다. 리볼빙의 이례적 증가의 배경으로 관측된다. 서지용 교수는 “건전성 강화를 위해 내놓은 DSR 정책이 가계 부채의 질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고물가를 동반한 경기 침체의 공포가 몰려오면서 ‘민스키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민스키의 ‘금융불안정성 가설’에 따르면, 신용에 의해 부풀려진 자산가치가 하락하는 과정에서 갑작스러운 신용 회수가 이뤄지고 그에 따라 자산 시장이 붕괴할 수 있다. 민스키 시점은 금융시장에서 과도한 부채를 진 채무자들이 상환을 위해 건전한 자산마저도 내다 팔지 않을 수 없게 몰리는 때를 이른다.

‘민스키 시점’ 다가오고 있다는 관측도

금융권 안팎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소상공인 만기연장·이자 상환유예 등의 조치가 종료되는 9월을 주시한다. 개인채무자들에 대한 원금 상환 유예 조치는 2020년 4월 실시된 이후 오는 9월까지 네 차례 연장됐다. 10월부터 지원책이 중단될 경우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다중 채무자와 고액 대출자를 중심으로 대출 부실화가 속출할 수 있어서다. 카드업계는 이르면 연말부터 자금 경색 위험이 가시화될 것으로 내다본다.

여전사들은 위기 때마다 유동성 리스크에 출렁거렸다. 수신 기능이 없어 여전채 발행 등 시장성 차입을 통해 대부분의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금리 상승에 특히 민감하다. 실제 2020년 코로나19 발생 당시 여신전문금융채권(여전채) 스프레드가 확대되면서 여전채 신규 발행이 사실상 중단돼, 일부 중소형 여전사는 수개월간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최근 여전채 금리는 4%를 돌파하며 카드사의 유동성 관리에 비상등이 켜졌다. 여전채 순발행 규모는 1분기 4조4000억원에서, 5월 1조5000억원, 6월에는 3000억원으로 뚝 떨어진 상태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소상공인 상환유예가 종료되면, 대출 부실화로 연말 이후 자금 상황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자본충당금을 확충하는 등 대비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법조계에서는 코로나 사태로 미뤄왔던 ‘빚 폭탄’이 터지면서 올해 하반기 줄도산을 경고한다. 최근 대법원 회생·파산 위원회는 “수도권 이외 지역에 회생법원을 추가 설치하라”고 권고했다. 대법원 회생·파산위원회 위원인 김남근 변호사는 “코로나 이후 유예돼있던 부채 조정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며 “경제적 위기에 놓인 기업과 개인을 위해 전국적으로 신속하고 전문적인 도산절차 처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인적·물적 인프라 구축을 추진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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