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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기존 근로자 육아휴직 늘려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중앙일보

입력

최병국 국제식물검역인증원 원장·전 농림축산식품부 국장

최병국 국제식물검역인증원 원장·전 농림축산식품부 국장

청년 일자리, 출생률 제고를 위한 제안  

1. 육아 전쟁

주변에 젊은 부부, 특히 맞벌이 부부들의 육아 실상을 들어보면 말 그대로 전쟁이다. 이들은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시기에 직장에서도 신참으로 눈치 보고 일이 많은 여건에서 살아간다. 양가 부모의 상당한 도움이 없는 경우 아이를 키울 엄두를 못 낸다. 그래서 결혼하면 어떻게 하나는 낳고 키워도 둘째는 많이 포기한다. 둘째를 포기하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이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볼 때가 되었다. 아이 키우느라 가장 바쁜 시기에 직장에서 가장 힘들게 일해야 하나? 두 일은 시간상으로 분리될 수 없을까? 육아에 한참 손이 많이 갈 때는 직장을 쉬고, 그 기간만큼 나중에 일하면 안 될까?

아이가 커서 고3 수험생이 되면 주로 여성 직장인들이 또 한 번의 고비를 맞는다.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좌불안석이고 몸도 힘들다. 이 시기에 1년 무급으로라도 쉬고, 60세 이후에 그 기간만큼 일하게 해주면 안 될까?

2. 1990년대생들의 취업 전쟁

1990년대생들은 육아 전쟁보다 훨씬 더 처절한 취업 전쟁을 하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자신들의 삶이 송두리째 달라지는 싸움이다. 육아에 허덕대는 젊은 부부들을 보면 안쓰럽지만, 취업전선에 서 있는 이들을 보면 마음이 무겁고 어두워진다. 25~29세 실업률은 10%에 가깝고, 체감실업률은 20%를 넘는다. 정말 답은 없을까?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인력수급의 미스매치도 거론된다. 정부에서 반도체 인력 교육을 서두르는 이유다. 취준생들의 눈높이도 자주 불려 나온다. 다 부분적으로 맞는 이야기이고 개선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원인은 현재 심각한 20대 후반 높은 실업률의 제일 큰 원인은 아니다.

연도별 출생자 수 그래프를 들여다보면 191~97년 출생자 수가 이전보다 심각하게 위로 돌출되어 단층을 이루고 있다. 1984~90년생에 비해 연평균 10%, 6만 명 수준, 7년간 40만 명 이상이 더 태어났다. 신규 취업 시장에 이전보다 40만 명이 더 모여서 경쟁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일자리 수가 어떤 외부적 요인으로 갑자기 폭발하지 않고서야 청년 실업률을 의미 있는 수준으로 낮출 수 없다. 특별한 대책이 없으면 이들 중 상당수는 괜찮은 자리를 얻지 못하고 나이 들어가는 불행한 세대가 될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 보여준 청년들의 정치적 분출, 공정의 요구는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일 듯하다.

노동시장 유연화, 미스매치 문제, 눈높이 문제는 사실 지금 20대 후반 젊은이들에게는 별 의미 없는 이야기다. 이게 많이 해결되는 시점에 이들은 이미 절망하고 노동시장에서 떠나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1990년대 출생자 수가 단층을 이루고, 이로 인해 신규 취업 시장의 수급이 심각하게 악화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혹시 기존 취업자를 잠시 시장에서 밀어내고, 그 자리에 단층을 이룬 몇십만 명의 1990년대생을 인위적으로 노동시장에 채울 방법은 없을까?

10년쯤 후가 되면 인력 부족의 시대가 시작된다. 그러나 좋은 경력은 없고, 나이만 들어버린 1990년대생들은 밀려날 것이다. 우리는 많은 90년대생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90년대생 폭증해 일자리 불균형
휴직한 만큼 정년 늘리는 방법도

3.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 1970년대생    

우려스러운 일은 일본에서 앞서 일어났다. 일본은 답을 찾지 못했고, 많은 청년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이렇게 좌절한 1970년대생들을 일본에서는 잃어버린 세대라 부른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團塊) 세대의 자식 세대로 1970년대 전반에 태어난 단카이 주니어 세대에서 또 한 번의출생자 수 폭발이 일어났다. 이들이 취업 시장에 나올 즈음인 1990년대에 일본 경제는 거품이 붕괴하여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가 시작되었다.

일본에서 1980년대 일부 청년들에 한정된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라는 은둔형 외톨이가 1990년대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취업하지 못한 일본의 단카이 주니어 세대, 잃어버린 세대가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의 집에 틀어박혀 살면서 생겨난 사회병리적 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한 세대에 깊고 넓게 새겨진 상흔은 오래 간다. 부모 집에서 부모 연금으로 살아가던 히키코모리들이 4, 50대가 되었는데 80세 안팎의 부모는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게 되면서 여러 음습한 뉴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을까?

4. 인수위의 정년 연장 논의

지난 5월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미래세대 공존을 고려한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10년 후가 되면 인력 부족 문제가 눈에 훤히 보이는데, 바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언론은 비판적 입장이고, 댓글로 나타나는 여론은 훨씬 더 부정적이다. 청년 일자리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이유에서다. 신중하게 추진하고, 논의를 시작한다고 하는데도 그렇다. 특히 댓글 여론에선 청년 일자리 문제를 이유로 논의 자체에도 적대적인 의견이 많다. 길게 보면 10년 후의 인력 부족 문제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론은 1990년대생 문제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든 먼저 해결하고 가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5. 정년 연장 조건부 무급휴직제도로 청년 일자리 창출

맞벌이 부모는 자녀에 손이 많이 갈 때 노동시장을 떠나 자녀를 돌보게 하고, 그 자리에 1990년대생 청년들을 고용하자. 휴직자는 무급으로 하되, 휴직 기간 만큼 정년 이후에 더 일할 수 있게 하자. 매년 일정 수의 이런 휴직자가 반복되면 그 자릿수 만큼 정규직 청년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최소 10만 개, 최대 30만 개를 만들어내면 청년 일자리 문제는 해결된다. 육아 휴직으로 부족하면 자기계발 휴직제도 활용할 수 있다.

휴직 기간에 급여·호봉·연금납입을 동결하면 재원 소요는 없고, 휴직자는 정년 이후에 더 일하게 되어 생애 총 기대소득은 동일하다. 휴직자에게 무이자 대출 정도는 제공할 수도 있겠다. 휴직 기간은 예를 들면 5년 범위에서 기존 휴직제도에 더하여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휴직자들이 60세 정년 이후에 일하게 되면 미래의 인력 부족 문제도 일부 해결할 수 있다. 일자리와 육아 문제 해결을 위한 세대 간 협력의 성격이 있으니 공공부문에서 먼저 실시하고. 대기업 등 민간 일부로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90년대생들이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가 되지 않도록 하자면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어 보인다. 이들을 각개전투에 맡겨두면 결과는 너무 뻔하다. 시간이 많지 않다. 90년대생들이 정상적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시기도 몇 년 안에 끝난다.

최병국 국제식물검역인증원 원장·전 농림축산식품부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