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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해 키워드 30] <BRICS> 브릭스 통한 제3세계 외교, 중국의 돌파구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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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EU(유럽연합) 정상회의가 열렸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EU 후보국 가입과 대러 추가 제재가 논의됐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러시아가 속한 브릭스(BRICS) 정상회의가 개최됐다. 전날 5개 회원국 회의에 이어 이날엔 총 18개국 정상이 참가한 브릭스 플러스 회의가 열렸다. 27일 러시아는 이란과 아르헨티나가 브릭스 가입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브릭스 회의 실무를 맡은 리커신(李克新) 중국 외교부 국제경제사 사장은 “인도네시아와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아르헨티나 등이 브릭스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밝혔다.

BRICS [사진 셔터스톡]

BRICS [사진 셔터스톡]

브릭스가 집단 이익 확대를 위해 몸집을 불리는 모양새다. 아무래도 중국이 브릭스에서 가장 큰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다.

널리 알려진 대로 브릭스는 브라질(B), 러시아(R), 인도(I), 중국(C), 남아프리카 공화국(S) 5개국의 집합체다. 원래 세계 경제에서 떠오르는 신흥 시장(emerging market) 4개국(남아공 제외)을 미디어가 BRIC 또는 BRICs라고 불렀는데 2006년 러시아가 제안해 아예 자기들끼리 조직을 결성했다. 2009년 러시아에서 첫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후 남아공이 아프리카를 대표해 회원국에 초청됐고 2010년 BRICS로 명칭이 바뀌었다.

브라질 [사진 셔터스톡]

러시아 [사진 셔터스톡]
인도 [사진 셔터스톡]
중국 [사진 셔터스톡]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진 셔터스톡]

남아공을 제외하면 브릭스 회원국들은 영토와 인구 모두 세계 10위 안에 드는 대국들이다. 이들 외에는 미국만이 이 조건을 충족한다. 명목 GDP 순위(2022년 4월 기준)에서도 중국 2위, 인도 6위, 브라질 10위, 러시아 11위, 남아공 35위다. 세계 인구의 42%, 세계 경제생산의 24%를 브릭스 5개국이 차지하고 있다.

개별 국가들의 특성을 따져보면 브릭스는 매우 이질적인 국가들의 집합체다. 정치체제가 각기 다르고 종교마저 다르다. 브라질은 가톨릭, 러시아는 정교회, 인도는 다수의 힌두교와 소수의 이슬람, 중국은 대다수 무교 외 소수의 기독교·불교·도교·유교, 남아공은 개신교다. 외교·안보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는 두 나라에 대한 서방의 압박에 공동으로 맞서고 있는 반면, 인도는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연합 쿼드(QUAD) 회원국이고 인도와 남아공은 지난달 열린 서방 수뇌국 회의인 G7 정상회의에 초청받았다.

중국 입장에서 보자면 브릭스는 마오쩌둥(毛澤東) 시대부터 견지해 오던 비동맹외교의 맥을 이어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냉전 시기 미국 중심의 소위 제1세계와 소련 중심의 제2세계는 이념을 앞세운 동맹 블록을 결성했다. 중국과 인도 등 제3세계로 불린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의 개발도상국들은 어느 쪽 동맹에도 가입하지 않을 것임을 공동으로 천명했다. 이런 비동맹외교 전통은 지금의 중국 지도부에까지 대체로 유지돼왔다. 미국이 유럽의 나토,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군사동맹에 기반해 세력을 확대해온 데 반해 중국은 이렇다 할 안보 동맹국이 거의 없다시피 한 이유 중 하나다. 대신 거대해진 경제력을 앞세워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에서 우호 세력을 확보하며 미국과 대등 또는 우월한 수준으로 영향력을 키워 왔다.

이처럼 중국은 양자 동맹을 기피하는 대신 제3세계 외교와 다자외교를 통해 활로를 모색해 왔다.

비서방 강대국 모임인 브릭스는 각 분야에서 서방과의 경쟁이 확대되고 있는 중국에 중요한 돌파구가 될 다자외교 무대다. 일례로 인도는 수십 년 동안 여러 차례 중국과 국경 분쟁을 거칠 정도로 안보상 적대국에 가깝다. 앞서 말했듯 인도는 대(對)중국 압박을 위해 결성된 쿼드의 일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도는 전통적으로 중국 견제와 경제적 목적을 위해 러시아와 친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보인 인도의 태도는 흥미로웠다.

2022년 5월 28일, G7 정상회담을 앞둔 독일

2022년 5월 28일, G7 정상회담을 앞둔 독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달 브릭스 정상회의와 G7 정상회의에 거의 동시에 참석했다. 회의 결과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인도가 반러시아 전선에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미국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원래 러시아 석유를 거의 수입하지 않던 인도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하루 76만 배럴을 수입하고 있다. 이라크를 제치고 러시아가 인도의 최대 석유 수입국이 됐다. 인도는 오랫동안 러시아제 무기의 주요 구매국이기도 하다. 하르뎁 싱 푸리 인도 석유장관은 브릭스 회의 기간에 “우리는 인도의 국익이 무엇인지 매우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인도와 양자 외교를 통해 러시아-인도 수준의 관계로 끌어올리기는 매우 힘들다. 하지만 브릭스라는 다자외교 장에서는 러시아를 통한 ‘스리쿠션 외교’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사진 셔터스톡]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사진 셔터스톡]

현존하는 국제 회의체 중 국력 순대로, 가장 많은 국가가 가입된 조직은 G20일 것이다. 중국이 미국과 더불어 ‘G2’로 불리게 된 후부터 G20은 미국 중심의 기존 선진국과 후발 강국들 간 이해충돌의 장이 돼 왔다. 어느 쪽이 20개국 중 우호 세력을 많이 확보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앞서 언급된 브릭스 가입 희망국 중 튀르키예,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아르헨티나는 G20 회원국이다. 모두가 G20 회원인 기존 브릭스 회원국을 합치면 9개국이 된다. 브릭스가 G20 내 최대 세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과 인접한 한국, 중남미의 멕시코, 전통적으로 중국과 친밀했던 이탈리아, 호주 같은 나라들과 사안별로 연합한다면 소기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 브릭스를 통한 중국의 제3세계 외교가 신냉전 구도가 형성되는 국제 정세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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