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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츠랩]부채비율 1600%인 곳에 내 예금 맡겨도 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우리 앤짱이들은 이제 재무제표 좀 볼 줄 아시지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더라도 늘 읽어보려는 버릇을 들이는 게 더 중요해요. 아이들이 말을 배울 때도 그렇게 하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흔히 투자하는 제조업체 재무제표를 보다가 은행이나 보험사, 증권회사와 같은 금융회사 재무제표를 보면 '이건 뭐지?'란 질문이 자연스럽게 올라옵니다. 꼭 재무제표계의 돌연변이를 보는 듯한 이상한 느낌! 금융사 재무제표 읽는 법은 앤짱이 ana****@icloud.com님께서 의뢰해 주셨습니다.

저 여의도 금융회사 마천루는 누구 돈으로 지었을까. 셔터스톡

저 여의도 금융회사 마천루는 누구 돈으로 지었을까. 셔터스톡

먼저 재무상태표부터 보면요, 어마어마한 부채비율에 동공이 커지죠. 일반 기업의 부채비율 산식(부채총계÷자본총계×100)으로 계산한 작년 말 우리은행의 부채비율은 무려 1586.7%. 삼성생명도 761.5%에 달하죠. 아니 저런 곳에 소중한 내 예금과 보험금을 맡기고 있었다니!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은행·보험·증권사는 모두 고객 돈을 받아서 대출이나 유가증권에 투자해서 수익을 내는 게 원래 하는 일이니까요. 자기 돈으로 영업하는 게 아니라, 돈을 맡기려는 사람과 그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연결해 주는 일로 돈을 버는 것이고, 많이 끌어올수록 많이 굴려서 수익을 늘릴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은행은 인류 최초의 플랫폼 회사라고도 하고요.

자자~! 대출 고객은 자산, 예금 고객은 부채~ 번호표 뽑으세요~ 셔터스톡

자자~! 대출 고객은 자산, 예금 고객은 부채~ 번호표 뽑으세요~ 셔터스톡

자금 원천이 대부분 고객 돈이란 건 여의도나 홍콩에 있는 번쩍번쩍한 금융회사 빌딩들은 사실 고객 돈으로 지었다는 얘기도 됩니다. 내가 맡긴 돈으로 저런 건물을? 좀 열 받긴 하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현금을 어디 둘 데도 없잖아요. 현금 봉투로 월급 받는 시대도 아니고, 금고에 현금을 쌓아둘 것도 아니고요. 어차피 돈은 금융회사로 들어오게 돼 있고, 이들은 싸게 조달해서 비싸게 굴릴 수 있는 구조만 잘 짜면 부채비율이 어마어마해도 좀처럼 망하지 않죠. 2% 금리로 조달한 예금(부채)과 4%로 빌려준 대출(자산)이 아귀만 잘 맞으면 회사 굴러가는 덴 문제 없단 얘기.

또 하나 신기한 건 자산 항목도 유동자산과 비유동자산으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부채도 유동부채와 비유동부채로 분류하지 않죠. 제조업체는 1년 안에 현금화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자산을 나눠놓고, 부채도 1년 안에 갚아야 하는지를 기준으로 나눠놨는데 금융회사는 그런 게 없죠.

왜냐하면 제조업체는 만기 때 갚을 돈이 없으면 부도가 나니까, 빠르게 갚아야 할 빚은 얼마나 되고 빨리 현금화할 자산은 얼마나 있는지를 따져보는 게 중요한데요. 금융회사는 빵빵하게 자기자본만 잘 갖춰서 감독당국이 요구하는 자기자본비율만 건전하면 언제든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1년 단위로 끊어서 부채와 자산의 현금화 정도를 보여줄 필요가 없는거죠.

고객 보험료로 지은 보험사 빌딩이라니. 셔터스톡

고객 보험료로 지은 보험사 빌딩이라니. 셔터스톡

재무상태표는 이쯤에서 정리하고, 손익계산서를 열어보면 더 가관입니다. 기업 이윤의 원천, 태초에 말씀이 있듯이 손익계산서 맨 위에 있어야 할 '매출액'이 금융회사 손익계산서엔 없습니다. 매출액에서 생산에 기여한 매출원가와 판매와 관리에 기여한 판매관리비를 빼서 영업이익이 나와야 하는데, 금융회사는 바로 영업이익부터 나옵니다.

왜냐하면 금융회사는 일반 회사처럼 생산과 판매 시점이 구분이 안 되기 때문이죠. 일반 회사는 원재료를 사서 기계에 넣고 생산직 노동자가 제품을 만들어 창고에 재고자산으로 넣기까지의 생산 공정과 이렇게 만든 제품을 영업하고 마케팅해서 판매하는 공정이 구분되잖아요. 일하는 사람만 딱 봐도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구분이 되죠.

하지만 금융회사는 돈이나 증서 그 자체가 상품이고 은행원이면 은행원, 증권맨이면 증권맨이지 생산직 은행원, 판매관리직 증권맨 같은 건 없잖아요. 차라리 수익과 비용을 그 돈을 버는 원천에 따라 이자냐, 수수료냐, 보험료냐, 투자 이익이냐로 따지는 게 재무제표 이용자 입장에서도 유용한 정보가 되지요.

전 생산직일까요? 관리직일까요? 애매하죠?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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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체라면 주식·채권 등 유가증권에 투자해서 돈을 벌면 영업외수익이 되지만, 금융회사는 투자를 해서 이익을 얻는 게 본업이니까 이런 이익은 영업이익으로 분류합니다. 제빵사가 빵이 아니라 주식으로 돈 벌면 과외일, 돈 굴리는 사람이 돈 굴려서 벌면 이건 영업이익.

현금흐름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빵사가 누군가한테 돈을 빌려서 현금이 유입되면 이건 재무활동 현금흐름으로 들어온 돈이 됩니다. 하지만 금융업자라면 예금처럼 고객에게서 빌려 온 돈은 영업활동 현금흐름에 기록됩니다. 마찬가지로 어딘가로 대출 영업을 해서 채무자에게로 빠져나간 돈 역시 영업활동으로 기록되죠. 이상하게 대출 영업을 잘 했는데도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계속 유출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얘기!

그럼 금융회사는 제조업체처럼 부채비율이나 유동비율을 측정하지 않으니까, 건전성은 전혀 신경 안 써도 되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죠. 자동차 제조업체를 상대로 전 국민이 불매운동을 한다고 해서 갑자기 회사가 망하는 모습 본 적 있나요? 하지만 금융회사는 고객이 맡긴 돈을 모두 찾겠다고 나서면 순식간에 망할 수 있습니다. 뱅크런(대규모 인출 사태)이 발생하죠.  그래서 예금보험공사처럼 5000만원 이하 예금은 보전해주는 국가기관도 존재하고요.

은행은 뱅크런이 발생하면 휘청!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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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회사는 그래서 고객이 돈을 얼마나 믿고 맡길 수 있느냐가 생명이죠. 이 신뢰를 살피는 지표가 굴리는 자산의 손실을 대비해 자기 자본은 얼마나 갖고 있느냐를 측정하는 지표입니다. 원리는 비슷한 데 은행은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BIS비율, 8% 이상이 적정), 보험사는 지급여력비율(RBC비율, 100% 이상이 적정), 증권사는 영업용순자본비율(NCR비율, 150% 이상이 적정)을 쓰죠. 이 비율에 미달하는 금융회사는 금융당국이 영업을 제한하거나 정지시킬 수도 있습니다.

남의 돈으로 돈 버는 만큼 '이래라저래라' 규제도 많이 받는 곳이 금융회사죠. 다만, 요즘 규제가 건전성을 감독하기보단 정부가 해야 할 복지 정책을 강요하는 건 문제. 결국 금융회사들의 최대 채권자인 고객이 받아야 할 편익을 정치집단이 표를 얻는 데 이용하는 것이니까요. by.앤츠랩

※이 기사는 7월 6일 발행한 앤츠랩 뉴스레터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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