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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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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위문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위문희 사회2팀 기자

위문희 사회2팀 기자

‘열대야(熱帶夜)’는 일본에서 처음 쓴 말이다. 정확히는 일본 NHK 기상캐스터였던 쿠라시마 아츠시(倉嶋厚)가 만들었다. 쿠라시마는 원래 일본 기상청 예보관 출신이다. 1924년 나가노에서 태어나 1949년부터 예보관으로 활약했다. NHK에서 날씨 뉴스를 전달하게 된 건 1984년 60세 나이로 기상청을 정년 퇴직한 이후부터다. 독학으로 러시아어를 공부했던 그는 예보관 시절 폴란드 출장 때 ‘열대야’라는 러시아어 단어를 처음 접하고 이를 일본에 소개했다. 그가 1966년 저술한 『일본의 기후(日本の気候)』라는 책에도 열대야란 표현이 등장한다. 러시아에선 최저기온이 섭씨 20도 이상인 밤을 가리켰지만 쿠라시마는 25도로 기준을 높였다.

한국에서도 2008년까진 하루 중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인 날을 열대야로 분류했다. 2009년부턴 밤(당일 오후 6시~다음날 오전 9시) 최저기온을 열대야가 발생한 기준으로 삼는다.

지난 6일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 등 13개 관측지점에서 사상 처음 ‘6월 열대야’가 나타났다. 서울의 경우 가장 빨랐던 열대야 발생일은 1978년 7월 2일(25도)이었다. 올해엔 6월 26일(25.5도)과 27일(25.8도) 이틀에 걸쳐 열대야가 발생했다. 지구 온난화로 열대야는 늘어나는 추세다.

1973년 기상청 관측 이래 연도별 열대야 일수를 계산해보니 2위(2018년, 16.6일)부터 8위(2012년, 9.1일)까지가 2010년대였다. 이상 고온은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일본 동부지역도 지난달 25일 한때 40.2도를 기록했다. 일본에서 관측 사상 6월 기온으로 가장 높았다.

쿠라시마에 따르면 기상이라고 하는 것은 ‘순환’이 본질이다. 변화의 연속이지만 오르면 내려가고, 내려가면 오른다. 인생과도 같다. 그는 2002년 아내를 잃은 뒤 얻게된 우울증을 극복하기까지의 과정을 수필로 출간했다. 책 제목이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やまない雨はない)』다. 일본 아사히TV에서 2010년 드라마로도 방영됐다.

올여름은 평년보다 더울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이달부터 전기요금은 킬로와트시(㎾h)당 5원 인상됐다. 덥고 습해서든 전기료 걱정 때문이든 잠을 설칠 수밖에 없는 날들이다. 그래도 가시지 않는 무더위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