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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 2만6000원...세계 最古 골프 코스를 가다 [성호준의 골프 로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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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셀버러 올드 코스. 성호준 기자

머셀버러 올드 코스. 성호준 기자

“너무 뒤지면 사람 뼈가 나올 텐데”

디 오픈 챔피언십 6번 개최한 코스 #한때 성지 세인트앤드루스와 라이벌 #기네스북에 가장 오랜 클럽으로 등재

러프에서 공을 찾을 때 누군가 내 등을 툭 치며 농담을 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인근의 머셀버러 올드 코스는 1874년부터 1889년까지 디 오픈 챔피언십을 6회 개최했다. 골프의 성지로 불리는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와 라이벌이었다.

이 코스에서 라운드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 퍼블릭 코스다.

가격은? 17파운드(약 2만6500원), 한국의 스크린골프 라운드 가격이다.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과 디 오픈 취재차 스코틀랜드를 방문한 6일 이 역사적인 코스에 들렀다.

홍합 마을이라는 뜻의 머셀버러 올드 코스는 기네스북에 가장 오래된 코스로 등재되어 있다. 1672년 3월 2일 존 파울리스라는 법률가가 머셀버러 링크스에서 골프를 했다는 공식 기록을 기준으로 해서다.

머셀버러 올드 코스 담벼락에는 이 코스의 역사를 기록했다. 성호준 기자

머셀버러 올드 코스 담벼락에는 이 코스의 역사를 기록했다. 성호준 기자

실제로 머셀버러의 골프 역사는 이보다 오래됐다. 1567년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이 이 곳에서 골프를 친 것으로 알려졌다. 메리 여왕에게는 재앙이 된 라운드였다.

남편이 살해된 후 며칠 만에 골프를 즐겨 여론이 나빠졌다. 사람들은 여왕이 남편 살인을 모의했다고 의심했다. 여왕은 왕궁에서 쫓겨났고 잉글랜드로 도망갔다가 사촌인 엘리자베스 여왕에 참수됐다.

메리 여왕의 아들인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을 겸하게 되어 런던으로 가던 중 골프를 친 곳도 이곳이라고 한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 코스와 관련된 무시무시한 일은 또 있다. 머셀버러 올드 코스 2번 홀의 이름은 무덤이다. 1547년 핑키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에 학살당한 스코틀랜드군 전사자들을 묻었다.

전쟁 준비 대신 골프에 빠진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그런 것으로 전해진다. 청교도 혁명의 주역인 올리버 크롬웰은 스코틀랜드 왕당파를 제압하려고 이 골프 코스에 주둔했다.

머셀버러 클럽하우스에 부조된 이 고장 출신 프로골퍼들. 성호준 기자

머셀버러 클럽하우스에 부조된 이 고장 출신 프로골퍼들. 성호준 기자

골프 규칙이 처음 생긴 곳이 머셀버러다. 스코틀랜드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로 구성된 ‘명예로운 에든버러 골퍼의 모임’이 머셀버러를 홈코스로 썼다. 1744년 그들이 만든 규정은 골프 규칙의 근간이 됐다.

108mm 골프의 홀 직경도 머셀버러에서 나왔다. 4.25인치(108mm)는 머셀버러에서 홀컵으로 쓰던 파이프의 직경이었다.

가장 큰 영광은 디 오픈 챔피언십이다. 1870년대와 1880년대 세인트앤드루스와 프레스트윅, 머셀버러 3개 코스에서 교대로 디 오픈을 치렀다.

세 코스는 각각 홀 수가 다르다. 세인트앤드루스는 18홀, 프레스트윅은 12홀, 머셀버러는 9홀이다. 초창기 디 오픈은 36홀로 치렀기 때문에 세인트앤드루스에서는 2라운드, 프레스트윅은 3라운드, 머셀버러는 4라운드로 열렸다.

1889년 명예로운 에든버러 골퍼의 모임은 경마장에 둘러싸인 이 코스가 너무 비좁다고 생각했다. 외곽에 땅을 사 새로운 프라이빗 골프장을 만들었다.

디 오픈을 여는 명코스 뮤어필드다. 명예로운 골퍼들은 새로운 우승컵 클라레 저그를 주최 측에 기증하고 대회 개최권을 머셀버러에서 빼앗아 뮤어필드로 가져갔다고 전해진다. 이후 머셀버러 올드 코스는 쇠락의 길을 걷는다.

그래도 역사는 남는다. 머셀버러 올드 코스 클럽하우스엔 이 마을에서 배출한 디 오픈 챔피언 다섯 명의 얼굴 부조가 있다. 주인공 다섯 중 세 명이 파크(Park) 씨다. 디 오픈 초대 대회 우승자인 윌리 파크(4회 우승)와 그의 동생 멍고, 아들 윌리 파크 주니어(2차례 우승)다.

코스는 경마장 안에 있다. 좋게 말하면 스포츠 콤플렉스인데 이제는 경마장 울타리에 갇힌 코스가 됐다. 파 34에 화이트 티 기준 2921야드인 9홀 코스다. 파 5홀은 하나이고 파 3는 3개, 파 4홀이 5개다.

오래된 짧은 코스지만 만만치는 않다. 바람이 워낙 강해 모자를 쓰고 있기 어려울 정도였다.

맞바람에도, 뒷바람에도 작은 그린에 볼을 세우기가 쉽지는 않다. 페어웨이가 매우 딱딱해 정확한 임팩트를 해야 한다. 200야드가 넘는 파 3홀이 2개가 있다. 벙커에 들어가면 옆으로 빼야 할 때가 많다.

1번 홀은 240야드의 파 3다. 페어웨이가 딱딱해 드라이버나 우드로 치면 그린까지 갈 것 같지만, 앞 조 골퍼들의 안전을 위해 1온을 시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머셀버러 4번홀. 핸디캡 1번인 431야드의 파 4홀이다. 성호준 기자

머셀버러 4번홀. 핸디캡 1번인 431야드의 파 4홀이다. 성호준 기자

4번 홀이 가장 어렵다. 3번 홀 그린과 떨어져 있어 일단 티잉구역을 찾기가 어렵다. 431야드로 전장도 길고 그린은 골프장 구석에 숨어 있다.

이 홀 이름은 포맨 여사의 선술집(Mrs Forman’s)이다. 세인트 앤드루스의 명 골퍼 톰 모리스가 머셀버러의 대표선수 윌리 파크와 매치를 하다 경기를 포기하고 술을 마신 곳이다.

머셀버러의 홈팬들이 일방적으로 윌리 파크를 응원하고 모리스의 몸을 밀고 공을 발로 찼다고 한다. 술집 건물은 4번 홀 그린 뒤에 남아 있지만 영업은 하지 않는다.

머셀버러에서는 히커리 오픈 챔피언십도 종종 열린다. 히커리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골프 클럽의 샤프트로 쓰이던 나무다. 참가자들은 19세기 골프 복장을 하고 오래된 골프채로 대회를 치른다.

머셀버러=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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