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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홍태화가 고발한다

尹 왜 나토에 가서 중국 자극하냐고? 그런 발상이 굴종이다

중앙일보

입력

홍태화 국제관계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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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정상회의에서 만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왼쪽은 윤 대통령의 나토 회의 참석을 비판한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 그래픽=차준홍 기자

나토 정상회의에서 만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왼쪽은 윤 대통령의 나토 회의 참석을 비판한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 그래픽=차준홍 기자

지난달 말 스페인에서 개최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윤석열 대통령이 초청을 받아 참석한 것을 두고 한국에서 비판적 보도와 논평이 이어진 모습을 멀리 미국에서 지켜봤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신냉전으로의 회귀가 우려된다"며 "나토 정상회의에 참가해서 얻을 국익이 무엇이냐"고 힐난했다. 한국과 거리가 있는 유럽 안보 문제를 다루는 회담에 꼭 가야 했느냐, 러시아를 넘어 중국까지 겨냥한 서방 모임에 끼는 건 자충수 아니냐는 말이 한국 학계 등에서 계속 나온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나토, 중국을 위협으로 판단 

이 회의가 채택한 공동성명에는 중국을 유럽의 이익·안전·가치를 위협하는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나토가 중국을 위협적 존재로 명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대응에도 힘겨워 하면서 왜 중국까지 상대하려 할까?

중국 영향력이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에까지 미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이 세계를 중국·미국·서유럽 세력권으로 나누는 천하 삼분의 관점에서 본다"고 말한 적이 있다. 중국은 '16+1 포맷'(중·동유럽 16개국과 중국 협력체인 CEEC)을 통해 중·동유럽을 서유럽으로부터 분리하려고 한다. 동맹관계 자체를 냉전의 유물로 규정하는 이론을 마련해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에도 적용하려 든다. 하지만 여러 유럽 국가는 중국 공산당이 '공짜 점심'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국이 경제력을 지렛대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안보 공백을 파고들고 있다는 걸 알아챈 거다. 유럽연합(EU)은 2019년에 이미 중국을 '체제 경쟁자'로 규정했다. 이는 중국의 영향력 팽창을 목도하고 있는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중·러는 하나로 연결된 위험   

중국과 러시아를 구분해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서방의 많은 전문가는 두 국가를 하나로 연결된 안보적 위협으로 간주한다. 매튜 포틴저 전 백악관 부 국가안보보좌관과 존스홉킨스대 핼 브랜드 교수는 중·러 관계를 각각 한국전쟁 당시 소련·중공 관계와 2차대전 때 독일·일본 동맹에 비유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전장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의 군사적 자원과 관심을 분산시켰다. 브랜드 교수는 "지금의 중국과 러시아 또한 공식적인 동맹 조약이 없더라도, 또 행동반경이 다르더라도 국제 자유주의 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자유주의 질서를 대체하는 국가 시스템 건설에 집중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미국과 서방의 헤게모니를 파괴하려 한다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궁극적 목표가 다르고 역사적·정서적으로 서로를 불신하더라도 현재의 국제질서를 약화할 때는 양국의 전략이 상당 부분 겹친다는 것을 우리 모두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과 유럽의 경제·안보 협력은 필수다. 영국·프랑스·독일 등은 지난 3년여 동안 중국 영향력 확대에 대응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수립하고 문서화했다. 한국에게 이번 나토 정상회의는 유럽 국가들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무엇인지, 그들이 한국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지 파악할 좋은 기회였다.

지난달 29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중앙포토]

지난달 29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중앙포토]

한국이 나토 회원국과 협력하는 것은 미국이 동시에 여러 지역에서 적극적인 '개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이기도 하다. 미국은 여전히 해외에서의 군사·정치적 관여를 최소화한다는 고립주의 신드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분쟁 지역 소모전에서 비롯된 피로감, 반복되는 경제 위기, 중국의 부상, 미국의 산적한 사회 문제는 미국의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자신감을 약화했다. 미국은 분쟁에 대한 직접 개입을 줄이고 있고, 동맹들의 안보 무임승차에 민감해졌다. 제조업 일자리를 해외 노동자들에게 빼앗겼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워싱턴 정가에서 '무역협정'은 금기어가 됐다.

미국 국내의 정치적 소용돌이가 외교적 방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진보 진영의 환경론을 필두로 셰일가스·오일 생산을 규제해왔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가 폭등하자 고민에 빠졌다. 석유 증산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 접근했으나 민주당의 인권 공세에 시달려온 빈 살만 왕세자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기 위해 대중국 관세의 부분적 철회를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미국 정부는 환경보호, 인권수호, 물가 안정, 중·러 봉쇄라는 네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다가 자가당착에 빠졌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미국 짐 덜어주기'는 외교 트렌드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과 같은 동맹국이 바이든 정부의 국제 문제 개입 부담을 덜어주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번 정상회의에서 나토는 신속대응군을 30만 명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자체 방위력에 대한 고민 없이 미국에만 의존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마주한 실책에 대한 반성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독일은 재무장에 나섰고, EU를 탈퇴한 영국은 안보 이슈만큼은 깊게 관여하려 한다. 일본은 이미 2000년대 초에 나토와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지난 5월에는 영국과 공동 훈련 원활화협정(RAA)을 맺기도 했다. 이런 변화는 미국의 짐 덜어주기와 외교 파트너 다변화로 요약할 수 있다. '글로벌 중추 국가'를 추구하는 한국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국제적 트렌드다.

지난 2월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앙포토]

지난 2월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앙포토]

윤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여를 비판하는 목소리에는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세심하고 정교한 대응 전략을 주문하는 것과 중국 심기를 거슬릴 수 있으니 저자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허버트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자극 때문에 공세적인 태도를 보이게 됐다는 식의 논리를 ‘전략적 나르시시즘’이라고 칭했다. 남중국해에서의 중국 횡포는 시진핑 주석 집권 전부터 진행됐다. 사회주의 매력이 증발한 21세기에 공산당이 중국인에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경제 발전과 강한 국제적 위상뿐이다. 마찬가지로 러시아는 '루스키미르'(러시아 문화·가치를 공유하는 세계)라는 범슬라브적 영역을 추구한다. 나토 팽창과 별개로 그들이 꿈꾸는 미래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정책에 수동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미국에 대한 과대평가에서 비롯된 일종의 나르시시즘이라는 것이 맥매스터 전 보좌관의 설명이다.

국내의 비판 여론은 중 공세만 부추길 우려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해 아시아 패권국이 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많은 중국인은 21세기가 다시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시대가 될 거라 믿는다. 한국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에 참여 여부가 그들의 한국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는 않는다.

한국이 러시아와 중국을 적대시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서방 국가들과의 협력은 중국과의 호혜적·수평적 관계를 맺기 위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 물론 중국의 반응을 살피고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과도한 마찰도 피해야 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나토 회의 참석조차 금기시하는 일각의 태도는 매우 우려스럽다는 점이다. 그런 국내 여론은 러시아와 중국이 한국에 가하는 부당한 외교적 공세를 정당화하는 구실로 이용될 수 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굴종을 자처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