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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재정전략회의 첫 주재한 尹 "재정만능주의는 환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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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7일 “예산만 투입하면 저절로 경제가 성장하고 민생이 나아질 것이라는 그런 재정 만능주의 환상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충북대에서 열린 ‘2022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당면한 민생 현안과 재정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부터 솔선해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가의 재정 현안을 논의하는 정부 최고위급 연례 회의체다.

 취임 후 처음으로 이 회의를 주재한 윤 대통령이 밝힌 핵심 메시지는 ‘확장 재정’ 기조를 탈피해 ‘건전 재정’으로 재정운영 기조를 전면 전환하자는 내용이었다. 윤 대통령은 “위기 때마다 우리나라 재정은 경제의 방파제 역할을 해왔는데, 그 탄탄했던 재정이 국가신인도의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지적받을 상황이 됐다”면서 “지난 5년간 재정 상황이 크게 악화했다. 이러한 재정여건 속에서 고물가·고금리·저성장의 복합 위기를 맞았다”고 진단했다. 이어 “2017년 600조원이었던 국가채무가 400조원이 증가해서 올해 말 1000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한 뒤 “증가 규모와 속도 모두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중앙일보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의 과도한 재정 확장 정책으로 인해 국가 재정 건전성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게 윤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충북 청주 충북대학교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충북 청주 충북대학교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문제는 어디서 어떻게 재정 지출을 줄이느냐인데, 윤 대통령은 먼저 공공부문 개혁에 초점을 뒀다. “공공부문의 자산을 전수조사해 기관의 기능과 연관성이 낮은 자산부터 적정 수준으로 매각·처분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공무원의 정원과 보수도 엄격한 기준으로 운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재정이 민간과 시장의 영역을 침범하고 성장을 제약하지 않았는지, 이른바 구축 효과가 작동하지 않았는지도 면밀하게 살펴볼 때”라고 덧붙였다. 구축 효과란 경기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리면 이자율이 상승해 기업의 투자와 민간의 소비가 위축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어 윤 대통령은 “성역없는 고강도 지출구조 조정으로 국민의 혈세가 허투루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재량 지출뿐 아니라 의무·경직성 지출도 구조조정 수술대에 올려놓겠다는 게 윤 대통령의 구상이다.

 지출 구조조정으로 마련된 재원은 사회적 약자 지원 등에 쓰인다. 윤 대통령은 “절약한 재원은 꼭 필요한 데 써야 한다”며 “사회적 약자, 취약계층이 어려운 경제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도록 공공부문을 긴축해 조성된 자금으로 이분들을 더 두텁게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초격차 전략기술의 육성, 미래산업 핵심인재 양성과 같이 국가의 미래 먹거리와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사업에는 과감하게 돈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절약한 재원으로, 병사봉급 인상 등 국정과제도 차질없이 이행하겠다고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충북 청주 충북대학교에서 열린 오찬 간담회에서 청년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한 후 학생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충북 청주 충북대학교에서 열린 오찬 간담회에서 청년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한 후 학생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이날 윤 대통령은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재정 준칙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며 “복잡한 재정준칙은 지키기 어렵다. 단순하되 합리적인 준칙을 만들어서 엄격하게 이행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 개선 카드도 꺼내 들었다. 학령인구(6~21세) 감소 등 상황을 고려해 현재 유·초등·중등에 한정된 교육교부금 사용처를 고등교육까지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초·중등 학생 수가 감소하는 교육환경의 변화를 반영하고, 지방대학을 포함한 대학교육에도 충분히 돈을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초·중등 교육과 고등교육 사이의 재정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은 미래 핵심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대통령실과 정부 각 부처가 국회와 초당적으로 협력할 것을 당부했다.

 충북대에서 첫 회의를 연 이유에 대해선 “지역 균형발전과 인재 양성이 새 정부의 핵심 어젠다”라며“앞으로 우리의 재정이 청년과 미래 세대를 위해 쓰여야 한다는 새 정부의 의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된 연례회의인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지방국립대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도 했다. 여기서 “기업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윤 대통령은 “대학 교육시스템을 개선해 나가겠다. 학생들이 책에서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회의 말미에 윤 대통령은 “재정을 보면 국가의 미래가 보인다. 재정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가 결정된다”면서 “비상한 각오로 임해 달라”고 부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충북 청주 충북대학교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022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충북 청주 충북대학교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022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날 회의에는 한덕수 국무총리, 추경호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관계부처 장·차관,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등 26명이, 국민의힘에서는 권성동 원내대표와 성일종 정책위의장,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가 참석했다. 민간·학계 인사로는 책 『초격차』의 저자로 잘 알려진 권오현 삼성전자 상근고문과 K팝 열풍을 이끈 이수만 SM 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를 비롯해 곽노정 SK 하이닉스 대표이사, 하정우 네이버 AI(인공지능) 랩 연구소장 등 9명이 참여했다.

 ‘바로 서는 나라 재정!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열린 이 날 회의에서는 새 정부 재정의 정책과제, 성장 동력 재가동, 인재양성·문화융성 지원, 성장·복지 선순환의 4개 세션에 걸쳐 토론도 진행됐다. 여기에도 함께 한 윤 대통령은 “과거 대공황 시기엔 정부가 적자 재정을 편성하는 과감한 재정 투자를 통해 경제 위기 극복을 모색했으나, 현재의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상황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건전 재정 기조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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