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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3분의 1 쓰레기통 버린다"…세계 '백신불평등'의 민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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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한 학생이 지난 5일(현지시간) 학교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인도의 한 학생이 지난 5일(현지시간) 학교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선진국들이 사들인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수천 만회분이 줄줄이 폐기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과 AP통신 등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전 세계 백신 폐기율은 30%에 달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 첫해인 2020년 이후 전역에 배포한 약 9060만 회분의 백신을 폐기했다. 이는 미국이 도입한 전체 백신량(7억6200만 회분)의 11.9%에 달하는 양이다. 이 중 13%인 1200만 회분은 최근 한두 달 사이에 버려졌다.

캐나다 보건부도 지난 5일 성명을 통해 아스트라제네카(AZ) 1360만 회분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2020년에 사들인 AZ 백신 2000만 회분 가운데 절반 이상이다. 캐나다 보건부는 AZ 외에 모더나 백신 120만 회분도 폐기할 예정이다. 앞서 독일 보건당국도 지난달 말 코로나 백신 390만 회분을 일괄 폐기했다.

WSJ은 "백신이 부족했던 코로나 팬데믹 초기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며 "백신 확보 경쟁에 나서던 각국 정부가 이제는 남아도는 백신을 폐기처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세계 인구 대다수는 접종을 완료한 상태고 일부만이 백신을 거부하면서 백신 수요가 시들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미국 모더나사 역시 신규 수요처를 찾지 못해 3000만 회분을 폐기했다. 앞서 스테판 반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말하기 슬프지만, 우리는 이제 쓰레기통에 백신을 버리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선진국들이 유효기간 만료를 이유로 코로나19 백신을 대량으로 폐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선진국들이 유효기간 만료를 이유로 코로나19 백신을 대량으로 폐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들은 백신을 폐기하는 주된 원인으로 백신의 유효기간 만료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냉동 보관된 백신의 유효기간은 6개월~1년 사이다. 해동 후 개봉된 백신은 이보다 짧은 약 12시간 이내에 사용해야 한다고 WSJ이 전했다.

선진국에서 백신이 무더기로 버려지고 있는 반면, 저소득 국가에서는 백신 접근성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영국의학저널(BMJ)에 게재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저소득 국가의 전체 인구 가운데 15%만이 백신 접종을 완료한 상태다. 선진국이 남는 백신을 외국에 공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개발도상국과 빈국 등은 백신을 유통·보관하는 냉장시설 인프라가 부족해 도입이 쉽지 않다. 또 국제 백신 공급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에 따르면 위험도가 낮은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저소득 국가에서도 백신 수요가 감소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캐나다 정부는 지난해 7월 남아도는 AZ 백신 1770만 회분을 외국에 기증하겠다고 나섰지만, 해외 공여국을 찾지 못해 결국 대부분을 폐기하게 됐다고 한다. 이와 관련, 브루스 에일워드 세계보건기구(WHO) 선임 자문위원은 최근 캐나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팬데믹 초기 백신을 사재기한 선진국들이 이제 와서 저소득국가에 기증하겠다고 한다"며 "이것도 유효기간이 거의 다 된 백신을 대량으로 떠넘기려고 하는 경우"라고 지적했다.

캐나다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애덤 휴스턴 의료정책 담당자는 "선진국들이 대유행 초기부터 백신 형평성을 고려했다면 폐기되는 백신은 훨씬 줄었을 것이고,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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