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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믿었다가 32억 빼앗겨…모텔엔 수상한 장비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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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이나 가방에 중계기를 설치하고 여러 지역을 계속 이동하는 방법으로 운영되는 ‘이동형 중계소’. [사진 부산경찰청]

차량이나 가방에 중계기를 설치하고 여러 지역을 계속 이동하는 방법으로 운영되는 ‘이동형 중계소’. [사진 부산경찰청]

해외에서 걸려온 전화번호를 ‘010’으로 바꿔주는 장비를 둔 ‘변작 중계소’를 운영하며 전화금융사기 범행을 벌인 보이스피싱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7일 부산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전기통신사업법위반 등 혐의로 A씨 등 50명을 검거해 37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또한 중계기 설치 의심장소 38곳을 압수수색해 휴대전화 1821대, 불법 개통 유심 4102대를 압수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원룸이나 차량 등에 변작 중계소를 운영하며 검찰, 금융기관, 자녀를 사칭하는 수법으로 피해자 73명으로부터 32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해외에 거점을 뒀고, 관련된 조직만 15개인 것으로 파악했다.

이들은 사무실 운영 등 총책, 콜센터 상담원, 대포통장 모집책, 현금 수거책, 송금책, 변작 중계소 관리책 등으로 역할을 나눴다.

특히 변작 중계소의 경우 타인 명의 유심과 휴대전화기를 구비한 채 모텔이나 원룸에 고정형으로 장비를 설치하거나 차량에도 이동형 장비를 두고 해외에서 발신된 전화번호를 국내 번호인 ‘010’으로 바꾸는 수법을 썼다.

이들은 피해자들이 통상 ‘070’ 번호로 걸려 오는 전화는 받지 않지만, ‘010’ 번호는 모르는 번호라고 하더라도 혹시나 아는 사람일 수 있어 잘 받는다는 점을 노렸다.

모텔, 원룸 등 쉽게 알 수 없는 장소에 중계기를 설치한 후, 관리자 없이 운영되는 형식의 ‘고정형 중계소’ [사진 부산경찰청]

모텔, 원룸 등 쉽게 알 수 없는 장소에 중계기를 설치한 후, 관리자 없이 운영되는 형식의 ‘고정형 중계소’ [사진 부산경찰청]

한 50대 남성은 휴대전화 액정이 깨져 보험을 신청해야 한다는 본인 자녀를 사칭한 연락에 속아 신분증 사진과 계좌번호 등을 넘겨준 뒤 5억7000만원의 피해를 봤다.

또 다른 30대 피해자는 서울지검을 사칭한 이들 전화에 속아 9000만원을 잃기도 했다.

최근 들어 신종 수법으로 등장한 변작 중계소 운영 방식은 다양하다.

경찰에 따르면 관련 범죄 조직은 인터넷 모니터링 부업, 재택 알바, 서버 관리인 모집, 스마트폰 관리업무, 공유기 설치·관리, 전파품질 관리 등 고액 아르바이트를 빙자해 범행 가담자를 물색한다.

또 원룸, 고시원, 건물 옥상, 야산 등에 변작 중계기를 설치하도록 하거나 차량 등에 싣고 다니면 고액을 주겠다고 제안하며 범행에 가담시킨다.

경찰 관계자는 “변작 중계소 운영책들을 전화금융사기 범죄에 없어서는 안 될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변작 중계소 관련 범행 가담자가 특별 자수 기간에 자수하면 형의 감경이나 면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 등 금융기관은 ‘010’으로 시작하는 개인 휴대전화로 상담하지 않고 국가기관은 절대로 현금을 가져다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꼭 기억해주시기 바란다”며 “중계기 등 의심 물건이 발견될 시 적극적인 신고를 당부드린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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