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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함 옆에 美항모 링컨함 섰다…진주만 메운 26개국 함정 [르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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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거대한 군함 두 척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 앞바다를 향해 나란히 섰다. 한국과 미국의 해군력을 각각 상징하는 대형수송함인 마라도함(1만4500t)과 핵 추진 항공모함인 에이브러햄 링컨함(11만5700t)이다.

5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진주만에 해군 대형수송함인 마라도함(오른쪽)과 미 해군 핵 추진 항공모함인 에이브러햄 링컨함이 나란히 정박해 있다. 사진 김상진 기자

5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진주만에 해군 대형수송함인 마라도함(오른쪽)과 미 해군 핵 추진 항공모함인 에이브러햄 링컨함이 나란히 정박해 있다. 사진 김상진 기자

5일(현지시간) 미국의 인도ㆍ태평양 전략의 핵심 기지인 하와이 호놀롤루 진주만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지구 상 최대 규모의 격년제 해상 연합훈련인 환태평양훈련(RIMPACㆍ림팩)이 한창이었다. 26개국에서 모여든 함정 38척과 잠수함 4척 등이 정중동의 작전을 펼쳤다.

정박한 상태에서 장비들을 최종 점검하고 모의훈련에 나서는 등 저마다 분주했다. 림팩은 물론 지난해 전력화 이후 원양 훈련에 처음 참가하는 마라도함의 갑판에는 ‘MV-22’라는 흰색 글씨가 적혀 있었다.

마라도함 갑판 위에 'MV-22'라는 흰 글씨가 쓰여 있다. 해상 훈련에서 미 해병대의 다목적 수직이착륙기인 MV-22 오스프리가 뜨고 내릴 위치를 표시한 것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것은 에이브러햄 링컨함의 함교다. 사진 김상진 기자

마라도함 갑판 위에 'MV-22'라는 흰 글씨가 쓰여 있다. 해상 훈련에서 미 해병대의 다목적 수직이착륙기인 MV-22 오스프리가 뜨고 내릴 위치를 표시한 것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것은 에이브러햄 링컨함의 함교다. 사진 김상진 기자

이번 훈련에서 미 해병대의 다목적 수직이착륙기인 MV-22 오스프리 2대가 뜨고 내릴 위치를 뜻했다. 오스프리는 최대 30명의 무장 병력을 태우고 상륙작전 등에 투입되는 기종으로 항속거리가 1800㎞에 이른다.

마라도함 뒤로는 미 해군의 강습상륙함이자 원정강습단의 지휘함인 에식스함(4만500t)이 보였다. 마라도함과 에식스함은 림팩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는 다국적 연합 원정강습훈련을 이끄는 함정들이다.

미·중 대립 속 새 훈련 도입

이날 오후 2시쯤 에식스함 사관실에선 첫 원정강습단 회의가 열렸다. 한국 해군으로선 처음으로 원정강습단장을 맡게 된 안상민 소장(림팩전단장, 현 해군사관학교장)과 웨인 베이즈 미 해군 3원정강습단장 등 이번 훈련에 참가하는 8개국의 지휘관 등 50여명이 열띤 토의를 벌였다.

5일(현지시간) 오후 원정강습훈련 지휘함인 미 해군 에식스함 사관실에서 훈련에 참가하는 8개국 50여명의 관계자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에 마스크를 쓴 사람이 이번 림팩에서 원정강습단장을 맡은 안상민 소장이다. 사진 김상진 기자

5일(현지시간) 오후 원정강습훈련 지휘함인 미 해군 에식스함 사관실에서 훈련에 참가하는 8개국 50여명의 관계자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에 마스크를 쓴 사람이 이번 림팩에서 원정강습단장을 맡은 안상민 소장이다. 사진 김상진 기자

상륙기동훈련과 해상전투 등 본격적인 해상 훈련에 앞서 각자의 역할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특히 이번 림팩에선 원정전방기지작전(Expeditionary Advanced Base Operations·EABO) 개념이 처음 도입됐다.

미군은 미ㆍ중 대립이 격화하는 가운데 대만 유사 사태 등에 대비해 이 같은 작전을 최근에야 구상했다. 적에게 빼앗긴 섬을 탈환하기에 앞서 일종의 교두보를 확보하는 게 작전의 핵심이다. 대규모 연합훈련에서 같은 명칭의 작전을 시험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관계자들은 이 같은 훈련의 성격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원정강습훈련을 총지휘하는 안 소장은 “훈련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림팩은 환태평양, 즉 태평양 연안국의 해상교통로를 확보하고 보호하는데 주안을 두고 있다”며 “특정 국가나 특정 대상을 염두에 두고 하는 훈련은 아니다”고 말했다.

세종대왕함 함미의 태극기 뒤로 여러 국가에서 보낸 함정들이 진주만에 가득 정박해 있다. 사진 김상진 기자

세종대왕함 함미의 태극기 뒤로 여러 국가에서 보낸 함정들이 진주만에 가득 정박해 있다. 사진 김상진 기자

그러나 1971년부터 반세기가 넘는 림팩 역사에서 이번 훈련에 역대 최대 규모의 전력이 참가한 것을 우연으로만 볼 수는 없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계속되고 있고, 중국은 최근 항모 3척 시대를 열며 해군력을 급격히 끌어올리고 있다.

또 북한은 올해 들어 19차례나 미사일(방사포 포함)을 쏘고 7차 핵실험까지 강행할 태세다. 이처럼 인도ㆍ태평양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림팩도 몸집을 크게 불리고 있는 셈이다.

새 정부, 역대 가장 많이 파견

이번 림팩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 미국 다음으로 많이 참가한 한국 측 전력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 열리는 이번 훈련에 해군은 기함인 마라도함을 비롯해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7600t), KDX-Ⅱ급인 문무대왕함(4400t), 214급 잠수함인 신돌석함(1800t), P-3C 해상초계기, 링스 해상작전헬기(2대), KAAV 상륙돌격장갑차(9대) 등 역대 최대 규모로 보냈다.

이 밖에도 20여명의 특수전전단(UDT/SEAL), 1개 중대 규모의 해병대 병력(120여명), 기동건설대(10여명) 등이 참가해 병력 규모로도 가장 많다.

마라도함 함내 격납고에 대기 중인 상륙돌격장갑차(KAAV). 사진 김상진 기자

마라도함 함내 격납고에 대기 중인 상륙돌격장갑차(KAAV). 사진 김상진 기자

사실상 헬기 탑재 상륙함에 해당하는 마라도함, 상륙작전의 핵심 장비인 KAAV의 첫 파견은 다른 참가국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미군 관계자는 “한국군 전력에 놀랐다”며 “이번에 참가한 모든 장비가 한국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두 번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해병대와 연합훈련을 해본 적이 있는데, 상륙작전 능력이 뛰어나다”며 “이번 림팩에서도 큰 활약이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매일 요격 모의훈련 실시"  

이날 세종대왕함과 문무대왕함은 한 몸처럼 붙은 채 진주만에 정박해 있었다. 두 함정은 이달 중순쯤 SM-2 함대공요격미사일 실사격 훈련에 나설 계획이다.

이날도 요격 훈련을 지휘할 세종대왕함에선 전투지휘소를 중심으로 장병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해군 관계자는 “실사격에 대비해 매일 모의훈련을 하고 있다”며 “림팩 때마다 서로 다른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해 훈련하는 만큼 실전 능력을 크게 향상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세종대왕함 함교 아래 갑판에 설치된 수직발사대(VLS). SM-2 요격미사일 등을 탑재하고 있다. 사진 김상진 기자

세종대왕함 함교 아래 갑판에 설치된 수직발사대(VLS). SM-2 요격미사일 등을 탑재하고 있다. 사진 김상진 기자

세종대왕함의 함수와 함미 갑판에는 SM-2와 어뢰인 홍상어 등을 쏠 수 있는 수직발사대(VLS)가 총 128개나 있다. 단, 미국과 일본의 이지스함에 장착한 SM-3 요격미사일(블록Ⅰ형의 경우 사거리 700㎞)과 달리 SM-2는 사거리가 167㎞로 짧다. 적기나 저고도 미사일 방어는 가능하지만, 눈앞의 위기인 북한의 각종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분명하다.

2024년부터 실전 배치할 차기 이지스 구축함(광개토대왕Ⅲ Batch-Ⅱ)에는 SM-6(사거리 240~460㎞)를 탑재할 예정이지만, 이 역시 SM-3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군 안팎에선 “다층 방어를 위해 이지스 요격 능력을 더 빨리 고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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