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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홍성남 신부의 속풀이처방

아파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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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아파트 열풍이 식을 줄을 모른다. 재산 증식용으로 활용될 뿐만 아니라,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가 사회적 지위와 신분을 규정짓는 희한한 사회적 현상까지 생겼다. 죽은 카를 마르크스가 보았다면 혀를 내두를 만한 현상이다. 국내선 비행기를 탔을 때 창밖을 내려다보면 전국이 아파트 물결이다. 그런데 이렇게 전국을 아파트로 채워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아파트에는 사실 많은 문제점이 있다. 첫 번째 문제, 전통적이고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것들을 사라지게 한다. 유럽에서 오랫동안 살다 온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한국에 처음 오면 유럽에 비해 깔끔하고 편한 구조에 탄성을 금치 못하는데, 시간이 가면서 느려터지고 지저분한 유럽이 그리워진다고. 지저분하지만 볼 것 많은 유럽의 거리, 그 골목길을 여유롭게 산책하던 날들이 떠올라 갈수록 갈증이 난다는 것이다.

역사를 뭉갠 아파트 문화
옛 골목에 대한 갈증 커져
아파트 크기로 신분 나눠
이보다 더한 코미디 있나

아파트에 밀려 사라지는 골목길. 지난 5월 서울 창경궁 골목에서 열린 퍼레이드. [뉴스1]

아파트에 밀려 사라지는 골목길. 지난 5월 서울 창경궁 골목에서 열린 퍼레이드. [뉴스1]

우리나라 아파트들은 이름만 다를 뿐 전국이 다 엇비슷하다. 길쭉한 상자 같은 모양이 줄줄이 서 있는 것을 보면 문화적 가치는 고사하고 기괴한 느낌까지 든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모습을 보면서 한국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은 한국에는 웬 교도소가 저리도 많은가 하고 경악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유럽의 옛집은 오래된 집 위에 새집을 얹어서 짓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모습이 궁상맞아 보이지 않고 오히려 고풍스러워 보인다. 반면 우리나라 아파트는 기존의 집들을 깡그리 철거하고 그 위에 새로 짓는다. 돈독 오른 난개발이 문화와 역사를 뭉개버리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 사람들을 곡예단 원숭이처럼 만든다. 요즘 층간소음으로 인하여 이웃 간에 갈등이 심한데, 이런 소음은 건설사들이 싸구려 자재를 사용해서 생긴 부작용이다. 저가 공사를 하다 보니 방음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주민들이 속이 좁다며 탓하고 이웃 간의 정을 운운하면서 물타기를 하려고 한다. 심지어 부동산 업자는 가격 부풀리기에 혈안이고, 주민들 역시 그 게임에 끼어들어서 일희일비한다. 마치 원숭이 게임(monkey play)을 보는 듯하다. 이렇게 사람들을 원숭이로 만들어서 사익을 챙기는 자들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세 번째 문제는 소통단절이다. 달동네 골목길은 담도 낮고 심지어 문이 열려 있는 집들도 있다. 그래서 이웃 간 잔정도 많고, 궂은일이 있으면 서로 도우며 산다. 골목길 안 구멍가게는 동네 노인들의 휴식처다. 말 그대로 소통문화가 보편화되어 있는 곳이 골목길이다. 관광 온 외국인들도 한국의 이런 골목길 문화에 심취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파트는 주민들 간에 대화가 없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아무도 아는 척하지 않고, 심지어 이사를 와서 인사를 가도 피곤하다고 오지 말라고 한단다. 웬만한 아파트에는 검문소 같은 관리소가 있고, 이는 고급아파트로 갈수록 심해진다. 그래서 소통은커녕 격리에 격리가 더해진 느낌을 받는다. 아파트에서는 사람 간의 정,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네 번째 문제는 계층의식이다. 아파트로 신분을 가리는 현상은 서민층으로 내려갈수록 오히려 더 심해진다. 심지어 싸구려 아파트와의 사이에 분리벽을 만들기도 한단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차별하는 웃지 못할 코미디 같은 일들이 아파트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파트가 사람의 신분과 품위를 결정짓는다고 믿는 파충류적인 망상론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어서 걱정이다.

다섯 번째 문제는 건강이다. 한의학에서는 사람이 땅에서 멀어질수록 병에 잘 걸린다고 말한다. 신학생 시절 시골에서 잠깐 농사를 지을 기회가 있었다. 잡초를 뽑아서 흙 위에 놓았는데 다음날 가보니 잡초가 살아 있었고, 농사짓는 분에게 핀잔을 들었다. 흙은 뽑아낸 잡초도 다시 살리는 힘이 있어서 콘크리트 같은 것 위에 올려놓아야 죽는단다.

이처럼 흙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진 것이기에 몸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맨발로 흙을 밟을 것을 권하기도 하고, 일부러 황토로 지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고층 아파트들은 이런 건강 상식에 역행하고 있다. 아무리 가구가 고급이고 전망이 좋아도 땅에서 멀어진 집들은 사람에게 좋을 리가 없다. 아파트가 위생적이라고 항변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나, 아파트 문화가 생기면서 아이들이 아토피라는 피부병에 시달리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이렇게 단점투성이인 데다 싸구려로 지은 아파트를 수억 원대에 팔아넘기려는 자들은 오래전 대동강 물을 팔았던 봉이 김선달을 능가하는 사기꾼들이다. 이런 사기꾼들의 농간에 전 국민이 원숭이가 되고 있다.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