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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기존 근로자 휴직 늘려 신규 취업 넓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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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병국 국제식물검역인증원 원장·전 농림축산식품부 국장

최병국 국제식물검역인증원 원장·전 농림축산식품부 국장

30∼40대 부부, 특히 맞벌이 부부들은 매일같이 육아 전쟁을 치른다. 아이들을 돌보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시기에 직장에서도 제일 힘든 시절을 보낸다. 부모의 도움이 없는 경우 아이를 키울 엄두를 못 낸다. 결혼하면 하나는 낳고 키우더라도 둘째 낳기는 대부분 포기한다.

그런데 아이 키우느라 가장 바쁜 꼭 그 시기에 직장에서 힘들게 일해야 하나. 두 가지 일을 시간으로 분리할 수 없을까. 육아에 손이 많이 갈 때는 직장을 쉬고, 그 기간만큼 나중에 일하면 안 될까. 아이가 커서 고3 수험생이 되면 또 한 번 전쟁이 시작된다.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좌불안석이고 몸도 마음도 힘들다. 이 시기에 1년 무급으로라도 쉬고, 60세 이후에 1년 정년을 늘려주면 안 될까.

90년대생 폭증해 일자리 불균형
휴직한 만큼 정년 늘리는 방법도

1990년대생들은 육아 전쟁보다 더 처절한 취업 전쟁을 치르고 있다. 25∼29세 실업률은 10%에 가깝고, 체감실업률은 20%를 넘는다. 노동시장 경직성이 원인인데, 취업 준비생들의 눈높이도 거론된다. 부분적으로 맞지만, 주요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이전까지 급감하던 출생자 수가 1991∼97년에 갑자기 폭증했다. 1984∼90년생보다 연평균 10%, 7년간 40만 명 넘게 더 태어났다. 신규 취업 시장에 이전보다 40만 명이 더 몰려서 경쟁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갑작스러운 수급 불균형을 단기간에 풀 수 있는 경제정책은 없다. 온갖 해법을 제시하는 전문가들은 솔직해져야 한다.

그런데 기존 취업자를 잠시 시장에서 밀어내고, 그 자리에 90년대생 몇십만 명을 인위적으로 채울 방법은 없을까. 이런 식으로라도 비상한 대책이 없다면 90년대생들은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저임금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불행한 세대가 될 것이다.

우려스러운 일은 일본에서 먼저 일어났고, 일본은 답을 찾지 못했다. 1970년대 전반에 태어난 단카이(團塊) 주니어 세대, 즉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의 자녀 세대다. 이들은 한국의 90년대생처럼 출생자가 비정상적으로 폭증했다. 이들이 취업 시장에 나온 1990년대에 경제 거품이 붕괴했고, 단카이 주니어 세대는 일자리를 제대로 구하지 못했다.

이 불행한 1970년대생들을 일본에서는 ‘잃어버린 세대’라 부른다. 일을 구하지 못한 일본의 단카이 주니어 세대는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 집에 틀어박혀 산다.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라는 은둔형 외톨이가 됐다.

한국은 다른 길을 찾을 수 없을까. 60세 정년이라는 법적 장치를 일부 조정하면 해결책이 나온다. 취업한 부모는 자녀에 손이 많이 갈 때 노동시장을 떠나 자녀를 돌보게 하고, 그 자리에 90년대생 청년들을 고용하자. 휴직자는 무급으로 하되, 휴직 기간 만큼 정년을 늘려주자.

매년 일정 수의 이런 휴직자가 반복되면 그 자릿수만큼 정규직 청년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최소 10만 개, 최대 30만 개를 만들어내면 청년 일자리 문제는 해결된다. 육아 휴직으로 충분한 자리가 안 나오면 자기계발 휴직제도도 활용할 수 있다.

휴직 기간에 급여·호봉·연금납입을 동결하면 재원 소요는 없고, 휴직자는 정년 이후에 더 일하게 돼 생애 총 기대소득은 동일하다. 휴직자에게 무이자 대출 정도는 제공할 수도 있겠다. 이 휴직자들이 60세 정년 이후에 일하면 미래의 인력 부족에도 대비할 수 있다. 일자리와 육아 문제 해결을 위한 세대 간 협력이다. 공공부문에서 먼저 실시하고, 대기업 등으로 확산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90년대생들이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다른 방법은 없어 보인다. 이들을 각개전투에 맡겨두면 결과는 뻔하다. 90년대생들이 정상적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시간은 몇 년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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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국 국제식물검역인증원 원장·전 농림축산식품부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