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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대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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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종훈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종훈 경제정책팀 기자

정종훈 경제정책팀 기자

오늘은 ‘작은 더위’를 뜻하는 11번째 절기, 소서(小暑)다. 본격적인 무더위의 시작을 알린다. ‘큰 더위’를 말하는 대서(大暑)는 오는 23일인데, 올여름은 소서보다 대서가 먼저 왔나 싶을 만큼 이미 너무나 뜨겁다.

지난달부터 때 이른 더위가 나타나면서 전국 곳곳에서 역대 첫 ‘6월의 열대야’가 속출했다. 27일 새벽 최저기온 25.4도를 찍은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이틀 뒤 강원 강릉은 30.1도라는 ‘역대급’ 열대야를 겪었다. 한여름 낮이나 다름없는 밤 기온이 이어지니 에어컨도 밤낮없이 돌아갔다. 지난달 전력 수요는 6월 기준 최고치를 찍었다. 이달에도 습기 가득한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전국 지도는 보랏빛 폭염 특보로 덧칠됐다. 올해 열사병 등 온열질환을 겪은 환자는 491명(4일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배가 넘는다.

요즘은 만나면 첫마디가 “올해는 왜 이리 덥냐”는 푸념 섞인 인사다. 조상님들은 ‘이열치열’ 하라고 했지만, 이런 더위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에어컨 실외기가 온종일 더운 바람을 뿜어내니 더 더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폭염이 이어진 4일 한 시민이 건물 외벽에 달린 에어컨 실외기 앞에서 햇볕을 가리며 지나가고 있다. [뉴스1]

폭염이 이어진 4일 한 시민이 건물 외벽에 달린 에어컨 실외기 앞에서 햇볕을 가리며 지나가고 있다. [뉴스1]

우리뿐 아니다. 전 세계가 ‘철없는’ 대서의 등장에 힘들어한다. 일본은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가 이어지자 논에 있던 민물가재가 빨갛게 익은 채 둥둥 떠올랐다고 한다. 스페인·프랑스 등은 5~6월부터 수십 년 만의 최고 기온을 경신했다.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빙하조차 열기를 이기지 못해 붕괴했다.

경고 징후들은 있었다. 지난 3~5월 봄철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높은 평균 기온(13.2도)을 기록했다. 국내 연 평균 기온 그래프를 보면 우상향 추세가 뚜렷하다. 연례행사처럼 찾아온 가뭄과 산불 등도 ‘이상기후’라는 이름의 경고장이었다. 기상청 보도자료에도 ‘기후변화’라는 이유가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후변화 종합대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듯하다. 우리 사회, 그리고 내가 이상기후에 어떻게 대응하고 일상을 어떤 식으로 바꿔야 할지 제대로 알기 어렵다. 범부처 차원의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이 3차(2021~2025년)까지 수립됐다지만, 200쪽 넘는 보고서 내용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원전·재생에너지 방향 등을 두고 정치적 논란만 가열되고, ‘기후=어려운 문제’라는 인식만 굳어진다.

이러다간 물가 인플레이션보다 더한 기온 인플레이션이 찾아올 것이다. 소서를 건너뛴 대서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원전 비중 증가, 탄소 배출 감축치 설정만큼 중요한 ‘생활 밀착형 기후 대응 마련’에 정부가 땀을 흘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