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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원유·곡물·금 다 떨어지는데…'R의 공포'에 '달러가 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달러가 왕(Dollar is King)'이라는 불변의 공식이 돌아왔다. 유럽을 시작으로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가시화하자 달러를 제외한 모든 자산이 추락하고 있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의 최대 골칫거리였던 원유와 곡물뿐만 아니라 안전자산인 금까지 모두 하락 중이다. 원화 가치도 약세를 이어갔다.

달러 가치 20년 만에 최고 수준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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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행진을 이어가는 달러의 몸값은 20년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5일(현지시간)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1973년=100)는 106.54선까지 뛰었다. 2002년 12월 2일 이후 최고 수준이다. 유럽을 시작으로 경기 침체가 가시화하자 안전자산인 달러로 자금이 쏠리는 모습이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달러 강세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잡기 위한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슈퍼 긴축'으로 시작했고, 이제는 경기침체 불안에 의해 달러 강세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달러값이 치솟으며 원화가치는 자유낙하하고 있다. 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개장 2분 만에 달러당 1311원까지 하락하며 달러당 1310원대를 뚫었다. 세계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7월 13일(장중 달러당 1315원) 이후 약 13년 만에 가장 낮다. 이날 원화가치는 달러당 1306.3원으로 마감했다.

문제는 경기 침체의 그림자가 짙어질수록 원화 약세는 피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백석현 신한은행 S&T센터 연구원 “글로벌 경기 침체 둔화는 수출 악화로 이어지고 이는 원화 가치하락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상반기 한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역대 최대치인 103억 달러를 기록했다.

유가 급락, 'I'는 'R'의 공포에 자리 내줘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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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의 왕좌가 더 공고해지는 건 그동안 시장을 흔들었던 ‘I(인플레이션)’의 공포가 ‘R(리세션)’의 공포에 밀려난 탓이다.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둔화에 대한 우려로 국제 유가도 급락했다.

5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상업거래소에서 WTI(서부텍사스산원유) 8월 인도분은 전 거래일보다 8.2% 급락한 배럴당 99.5달러에 거래됐다. WTI가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떨어진 건 지난 5월 11일 이후 처음이다. 이날 브렌트유 9월 인도분은 9.5% 급락한 하락한 배럴당 102.77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4월 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도 이처럼 유가가 크게 내려간 건 향후 경기 침체 내지 둔화로 에너지 수요가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서다. CNBC는 “경기 침체가 석유 제품 수요를 줄일 것이라는 공포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JP모건은 러시아 원유 공급이 줄어들 경우 브렌트유가 배럴당 380달러까지 치솟을 수가 있다는 경고를 내놨다. 하지만 씨티그룹은 5일 “경기침체 시나리오 때 브렌트유 가격은 연말당 배럴당 65달러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며 분위기는 급변했다.

비슷한 흐름은 원자재 가격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경기 선행지표로 불리며 ‘닥터 코퍼’라는 별명이 붙은 구리 가격은 5일(현지시간) t당 7660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1분기만 해도 t당 9997달러로 최고가를 찍었는데 불과 몇 달 사이 8000달러 아래로 내려온 것이다.

최대 곡창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수급 불안을 겪었던 곡물 가격마저 급락하고 있다. 옥수수 선물(9월물)은 5일(현지시간) 전 거래일보다 21% 떨어지며 부셸당 592.25센트에 거래됐다.

최진영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전쟁으로 인한 공급 부족 등으로 모든 원자재 가격이 상승 압력을 받았지만, (경기) 침체로 인해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를 더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하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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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마저 달러에 밀리며 연중 최저치를 찍었다. 5일 금 선물(8월물)은 트라이온스(31.1g) 당 1763.9 달러에 거래됐다. 지난 3월만 해도 금은 트라이온스당 2000달러를 웃돌았다.

심수빈 키움증권 연구원은 “금은 안전자산으로 통하지만 달러가 강세일 때는 수요가 줄어든다”며 “여기에 최근 인플레이션 헤지(위험회피) 수요가 컸는데 침체로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리라 예상되자 가격이 꺾였다”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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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너 마저" 흔들리는 유로존, 미국도 불안 

시장에 짙어지는 경기 침체 공포는 유로존에 먼저 상륙한 분위기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나랏빚이 많은 나라가 기준금리가 오르면 휘청일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이 31년 만에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한 것은 시장에 더 큰 충격을 줬다. 독일이 적자를 낸 건 동독과 서독 통일 이듬해인 1991년 이후 처음이다. 독일 연방통계청은 5월 무역수지가 약 10억유로(약 1조35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독일마저 흔들린다는 데 유로존의 상황의 심각성이 더 부각됐다"며 "미국도 주택판매 설비투자 등에서 노란불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에서도 경기 침체 우려를 반영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5일(현지시간) 미국 장단기 국채 금리 역전현상이 다시 발생해서다. 이날 미국 국채 2년물 금리는 2.792%로 10년물 2.789%를 앞질렀다. 장단기금리 역전은 지난 3월과 6월에 이어 올해 들어서 세 번째다.

일반적으로 장기 채권은 단기 채권보다 금리가 높다. 그런데 이것이 역전됐다는 것은 그만큼 향후 경기를 나쁘게 보는 투자자자 많다는 뜻이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그동안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2년물 금리가 뛰며 장단기 금리가 역전됐지만 이번에는 장기 채권 금리가 떨어지면서 발생했다"며 "만약 장단기 금리 역전이 3개월 이상 지속한다면 매우 위험한 신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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