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없는 러軍, 유럽최대 원전에 '알박기'…포대·지뢰로 '방패' 전략

중앙일보

입력 2022.07.06 17:30

업데이트 2022.07.06 17:39

지난 3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중부 자포리자 원전 주변을 폭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군이 이 원전을 군사기지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AFP=연합]

지난 3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중부 자포리자 원전 주변을 폭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군이 이 원전을 군사기지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AFP=연합]

우크라이나 남부를 점령한 러시아군이 유럽 최대 원자력 발전소인 자포리자 원전을 군사기지로 탈바꿈시키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3월 점령 이후 원전은 군사요새가 됐다. 원전의 상징인 줄무늬 굴뚝 아래엔 다연장 로켓포와 탱크·장갑차를 줄줄이 배치됐다. 또 발전소 주변을 빙 둘러 참호를 팠으며, 주변엔 경비용 군견을 배치했다. 또 원전에 냉각수를 공급하는 저수지 수변을 따라 대인지뢰를 매설했다.

WSJ은 러시아군이 원전을 군사기지로 삼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전했다. 한 유럽 당국자는 "러시아군은 원전을 장악하고 이곳에서 공격을 감행해도 우크라이나군이 반격하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우크라이나군은 원전에서 약 5㎞ 떨어진 지점에 있지만, 이를 바라만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을 지낸 안드리 자고로드니우크는 WSJ에 "러시아의 전략 중 하나인 것 같다. 중요한 인프라 시설을 점유한 뒤 그것을 방패로 삼으려는 것"이라며 "우리는 원전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변 지역을 포위하고, 그들에게 나가라고 요청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우크라이나 국영 에너지기업인 에네르고아톰은 최근 러시아군이 이 원전의 냉각수를 빼겠다고 위협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이 냉각수 안에 숨겨뒀을 것으로 의심되는" 무기를 되찾겠다는 게 이유다. 핵연료봉을 냉각하는 데 쓰이는 여과수가 부족할 할 경우 원전은 심각한 위협에 빠질 수 있다.

현지 근로자들은 러시아군이 원전을 기지화하면서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건 같은 게 재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근로자의 부인은 "러시아군이 자기들의 행동으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의 점령이 길어지며, 1만1000명에 달하는 원전 근로자의 스트레스도 커지고 있다. 자포리자 원전의 특성상 이곳에 근무하는 인원은 서유럽 원전보다 몇배 더 많다. 이들이 장기간 전쟁 스트레스로 인해 근무 중 실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또 원전을 장악한 500여 명의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직원·노동자를 납치해 돈을 뜯는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직원과 주민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의용군에 지원하거나 조력한 것으로 의심되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납치가 지난 몇주 동안 더 늘었다. 특히 남성 외에 여성을 더 많이 데려갔다고 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자포리자 원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지난주 IAEA는 자포리자 원전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와 각종 기록장치의 데이터가 3일 동안 입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는 러시아군 점령 이후 두 번째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가능성이 희박하긴 하지만 농축 우라늄과 플루토늄이 무기급으로 쓰일 목적으로 빠져나갔는지를 확인하고 싶다며, "이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현장을 방문하지 않은 상황에서 러시아 포대와 지뢰 등 군사시설이 원자로에 가하는 위협을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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