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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훑고 지나간 나라 블링컨도 찾는다…미·중 '동남아 격돌'

중앙일보

입력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상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만났다. [AP=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상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만났다. [AP=연합뉴스]

미국 국무부는 5일(현지시간)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오는 6~11일 인도네시아와 태국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7~8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한 뒤 태국을 방문해 쁘라윳 짠오차 총리, 돈 쁘라뭇위나이 부총리 겸 외교장관과 회담한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블링컨 장관보다 한 발 먼저 움직였다. 왕 부장은 5일 방콕에서 쁘라뭇위나이 부총리와 만나 중국과 태국의 관계는 “한 가족처럼 가깝다”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왕 부장은 11박 12일 일정으로 동남아시아 5개국을 순방 중이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일 왕 부장이 3~14일 미얀마,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를 방문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왕 외교부장의 이번 동남아 순방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인도ㆍ태평양 전략에 본격 시동을 건 뒤 이뤄졌다는 점에서 아시아를 둘러싼 미ㆍ중 간 대결이 표면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아세안(ASEANㆍ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 중 8개국 정상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미ㆍ아세안 특별 정상회의를 열었다. 이어 일본을 방문해 아시아 지역에서 증가하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에 맞서기 위한 경제협의체인 인도ㆍ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공식 출범했다.

이번에 왕 부장이 방문하는 5개국 가운데 미얀마를 제외한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4개국은 IPEF 초기 참여국이다. 왕 부장의 동남아 순방은 미국이 추진하는 IPEF 출범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으로 볼 수 있다고 외교전문지 더 디플로매트는 풀이했다.

왕 부장은 첫 방문지인 미얀마에서 라오스ㆍ캄보디아ㆍ베트남 외교장관과도 만나는 등 광폭 행보를 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문가를 인용해 왕 부장의 순방은 역내 국가들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한 포괄적이고 계산된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자오 대변인은 “동남아는 공통 이익과 공동의 발전을 모색하는 (중국의) 중요 파트너”라고 추켜세웠다.

올 하반기 미국과 중국이 격돌하게 될 최대 전장(戰場)은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구체적으로는 동남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11월 15~16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이어 11월 18~19일 태국 방콕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개최될 예정이다. 미국과 중국은 모두 G20와 APEC 회원국이어서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블링컨 장관과 왕 부장은 7일 G20 외교장관 회의 참석 중에 별도로 양자회담을 할 예정이라고 국무부가 발표했다. 두 장관의 만남은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기간에 만난 이후 8개월 만이다. 두 장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식량 안보, 남중국해 갈등, 대만 문제 등 다양한 의제를 논의할 예정이어서 상황에 따라서 대립이 격화할 가능성도 있다.

블링컨 장관과 왕 부장은 미국이 중국산 수입제품에 부과 중인 고율관세를 완화하는 방안을 최종 조율할 가능성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인플레이션이 치솟자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낮추거나 없애는 방법을 저울질해왔다. 다만, 민주당 지지층인 노조 등이 관세 폐기에 반대하고 있어 구체적 시점이나 인하 폭 등은 미정이다.

미ㆍ중은 최근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양제츠 중국공산당 정치국원,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류허 중국 경제부총리가 잇따라 만나거나 통화하면서 고위급 소통을 이어왔다.

대니얼 크리텐브링크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이날 전화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열린 소통 채널을 유지하고 외교를 강화하는 것은 양국간 경쟁이 오판이나 충돌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가드레일(guardrailㆍ안전장치)”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몇 주 안에 통화할 가능성이 있다.

G20 외교장관회의에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참석하지만 국무부는 블링컨 장관과의 만남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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