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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오케스트라의 귀환… 몬트리올 심포니 내한공연

중앙일보

입력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라파엘 파야레가 지휘하는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 섬세한 피아노와 색채감 풍부한 관현악이 어우러졌다.[사진 인아츠프로덕션]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라파엘 파야레가 지휘하는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 섬세한 피아노와 색채감 풍부한 관현악이 어우러졌다.[사진 인아츠프로덕션]

 북미의 대표 오케스트라인 몬트리올 심포니가 14년 만에 내한했다. 1934년 창단한 이 오케스트라는 ‘프랑스보다 더 프랑스적인’ 화사한 색채감이 특징이다. 작년 음악감독 라파엘 파야레가 지휘봉을 잡은 이후 첫 해외 투어다. 지난 5일 밤 8시. 롯데콘서트홀 무대는 이미 단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공연 전부터 나와 집중하는 모습에서 첫 해외 투어에 대한 의욕이 느껴졌다. 악장과 지휘자 파야레가 등장하고 라벨 ‘라 발스’ 연주를 시작했다. 저음역이 육중하지만 투명했다. 두 대의 하프가 영롱했고 현악의 향기가 솔숲 향처럼 퍼졌다. 총주로 객석을 압도한 뒤에 목관이 청초하면서도 요염하게 고개를 들었다. 부드러운 동작으로 쉴 새 없는 파야레의 지휘봉에서 엉킴 없는 정교한 피날레가 나왔다.

프랑스 색채감 지닌 북미 대표 오케스트라 14년만의 내한 #팬데믹 후 최초의 해외 오케스트라 대규모 사이즈 공연

파야레는 2008년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2015년 서울시향 객원 지휘를 위해 내한한 이후 이번이 세 번째 한국 방문이다. 1980년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난 파야레는 ‘엘 시스테마의 아버지’ 호세 아브레우에게 지휘를 배웠고 말코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공연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난 행운으로 음악이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엘 시스테마’의 수혜를 입을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헌신, 열심, 노력, 훈련과 열정을 가지고 추구하는 엘 시스테마의 정신은 음악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현재 미국 샌디에고 심포니의 음악감독도 맡고 있는 파야레는 몬트리올 심포니를 2018년 처음 객원지휘했다. 2019년 재초청 받았고 2021년에는 음악감독이 됐다. 몬트리올 심포니 CEO인 코로 마들렌느는 “전세계를 다니면서 예술감독을 물색했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교감이 중요했다. 두 번 연주하면서 모두가 큰 기쁨을 느꼈다”며 파야레의 선임은 어렵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중인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기민한 대응과 스태미너가 돋보였다. [사진 인아츠프로덕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중인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기민한 대응과 스태미너가 돋보였다. [사진 인아츠프로덕션]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6월에 몬트리올에서 리허설할 때 오케스트라 측의 환대가 인상 깊었다고 했다. 2017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인 그는 임윤찬의 경연을 지켜보며 “우승하리란 확신이 들었다. 훌륭한 연주자”라고 덕담했다. 몬트리올 심포니를 “즉흥적인 특성, 에너지, 디테일과 뉘앙스가 특별한 오케스트라”라고 설명한 선우예권은 이날 공연에서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3번 협연에서 변덕스런 악구들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연주를 선보였다. 충실하고 성실한 이미지의 역주였다. 마지막 3악장에서도 지칠 줄 모르는 스태미너는 과거 뮌헨필과의 연주보다 진일보 했다고 평가할 만했다.

버르토크의 ‘이상한 중국관리’모음곡에서 파야레는 한결 더 역동적이었다. 일사불란한 움직임 속에서 떠오르는 자유로운 색채감은 과거 샤를 뒤투아 지휘 시절에서도 보였던 전통이었다. 신들린 춤 같은 파야레의 지휘는 야성미 넘치는 버르토크와 잘 어우러졌다.

드뷔시 ‘바다’는 이날 연주의 백미였다. 1악장부터 음의 뉘앙스가 일품이었다. 색채감과 움직임이 시시각각으로 미묘했다. 플루트와 하프를 비롯한 악기들의 부유하는 듯한 존재감이 돋보였다. 2악장에서 황홀한 목관과 고급스런 금관이 교차했고 3악장에서는 현악의 일사불란한 활약 속에서 언뜻 평면이지만 수 많은 갈래로 갈라진 음악의 결을 느낄 수 있었다.

앙코르도 프랑스 작품 베를리오즈 ‘로마의 사육제 서곡’이었다. 투어 시작을 축하하듯 축제 같은 마무리로 관객의 마음을 들썩이게 했다.

몬트리올 심포니 음악감독 라파엘 파야레(왼쪽)와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오른쪽) [사진 인아츠프로덕션]

몬트리올 심포니 음악감독 라파엘 파야레(왼쪽)와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오른쪽) [사진 인아츠프로덕션]

2008년 내한 당시 음악감독 켄트 나가노는 몬트리올 심포니를 “강한 개성과 성격을 갖춘 오케스트라다. 재기발랄함과 유연성, 기교, 따스함과 투명함, 깊이 있는 음색의 팔레트를 선보이며 퀘벡, 그리고 퀘벡과 밀접한 유럽의 특성을 반영한다”고 했다. 그의 말이 실감났다. 몬트리올 심포니는 사운드의 전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선우예권에 이어 6일부터 3일간 협연하는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43)은 언젠가부터 ‘얼음공주’라 불렸다. 표정 변화 없이 치밀한 연주를 하기 때문일까. 실제로는 정밀하지만 결코 차갑지 않은 연주를 들려줬다. 그녀는 자신의 별명을 알고 있으며 출산도 했기에 이젠 ‘얼음여왕’으로 불러 달라며 웃었다.

이번에 연주하는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1번은 최근 DG에서 발매된 ‘파리’ 음반에 라디오프랑스필하모닉(미코 프랑크 지휘)과의 연주로 수록됐다. 힐러리 한에게 익숙한 작품이다. "10대 시절 커티스 음악원에서 1907년생 야샤 브로드스키 선생님의 가르침이 생생하다"고 했다. 이 작품은 파리에서 초연됐고 전형적인 프랑스 느낌이다. 힐러리 한은 “빠른 변화와 다이내믹이 특징이지만 디테일만 신경 써서는 안 되고 흐름을 느끼면서 연주하는 게 해석의 관건”이라며 “열정적이고 자연스러운 몬트리올 심포니와 한 번 뿐인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

힐러리 한이 협연하는 몬트리올 심포니는 7일 대구 콘서트하우스, 8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공연 일정을 소화하고 본국으로 돌아간다.

류태형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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