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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마약 학교’ 소년원·교도소…"이러면 안잡혀" 더 배워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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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 마약을 하다 붙잡히면 소년원이나 소년교도소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설에서 출소한 뒤 또 마약을 하다가 잡힌 애들이 같은 말을 해서 놀랍니다. ‘안에서 다른 마약사범한테 더 배워왔다’는 거예요. 서로 ‘이 마약 해봐라’ ‘저 마약 해봐라’ ‘여기서 마약을 구할 수 있다’ ‘저기서 사면 싸다’ ‘다음엔 안 잡히기 위해 경찰의 수사 기법도 공유한다’는 거죠.”

[10대 마약공화국⑥] ‘마약사범 사관학교’로 전락한 교정시설

마약류인 엑스터시(MDMA). 미국 마약단속국(DEA)

마약류인 엑스터시(MDMA). 미국 마약단속국(DEA)

5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A 경찰 수사관의 말이다. 지난해 검거된 10대 마약사범이 역대 최대치인 450명(암수율을 적용할 경우 실제 발생은 1만 명 이상 추정)에 이른 가운데 교정시설이 제 역할을 하기는커녕 재범율을 높인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소년법에 따르면 범죄를 저지른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 소년은 ‘촉법소년’으로서 형사처벌이 면제되는 대신 소년원 송치, 보호관찰, 사회봉사 등의 보호처분을 받는다. 14세 이상 19세 미만은 ‘범죄소년’으로서 보호처분을 우선하긴 하지만, 죄질이 나쁘면 형사처벌을 받아 소년교도소에 수감될 수 있다. 소년교도소에 수감 도중 23세가 되면 성인교도소로 이감된다.

교정시설 수감자들에게 재활 교육을 하는 임상현 한국다르크협회 마약중독치유 재활센터장은 “10대 마약사범이 소년원 등에 가면 마약 외 범죄로 들어와 있는 다른 10대들에게 마약을 퍼뜨릴 위험도 많다”라고 말했다. 임 센터장은 교정시설 대부분이 마약사범을 별도 관리하지 않는 데다가 재활 치료나 재범 예방 교육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승재현 한국법무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0대들은 또래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적절한 관리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에서 마약 범죄를 저지른 10대를 소년원이나 소년교도소에 보내면 마약사범 사관학교를 만드는 것과 다름이 없다”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5월 어느 날 20대 초반 B씨는 서울 종로구 한 편의점 부근에서 20대 초반 C씨에게 20만원을 주고 필로폰을 건네 받은 혐의로 최근 붙잡혔는데, 둘은 과거 소년원에서 알게 된 사이인 것으로 드러났다.

2018년 1월 춘천소년원. 연합뉴스

2018년 1월 춘천소년원. 연합뉴스

성인교도소 가면 더 심각…필로폰 투약사범→제조법 배워 나와

10대 마약사범이 나이가 들어 성인교도소로 이송되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현재 전국 교도소에선 마약 범죄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마약사범은 ‘파란 명찰’을 달게 하고 다른 범죄 사범과 분리 수용한다. 여기엔 대마초 사범이 필로폰 사범으로, 단순 투약 사범이 제조·판매 사범으로 진화하는 부작용이 따른다. 마치 기숙학교처럼 수십 년 마약을 해온 ‘프로’들과 함께 생활하며 전문적인 범죄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법무부 교정본부 관계자는 “투약 초범의 경우 처음 할 땐 마약을 구하기가 어려운데, 한 번 교도소에 다녀오면 공급책들과 신뢰 관계를 쌓은 덕분에 출소 후 이전보다 더욱 쉽게 마약을 구매할 수 있게 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30대 남성 D씨가 경북 구미시 원룸에서 필로폰 1㎏을 직접 제조한 혐의로 부산경찰청에 구속됐다. 당시 D씨는 “교도소에서 동료 재소자로부터 필로폰 제조법을 배웠다”라고 진술했다. 필로폰 1㎏은 시중 유통가격 기준으로 33억원가량 상당의 양이다. 3만 3000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다.

교정시설이 ‘교정’은커녕 마약사범이 더 큰 범죄를 저지르도록 부추긴 셈이다. 「대검찰청 2021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마약사범은 1만 6153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재범인원은 5916명에 달했다. 재범률로는 36.6%다.

올해 4월엔 50대 남성 E씨가 어릴 적부터 마약류를 투약하거나 판매한 죄로 열 차례 형사처벌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올해 초까지 다섯 회에 걸쳐 필로폰을 판매하고 투약한 혐의로 서울동부지법(1심)에서 징역 3년형 등을 선고받기도 했다.

법무부는 소년원과 관련해 “2013년부터 4인 이하 정원의 소규모 생활실로 개선해 비행성 전이 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며 “또 의료재활 교육과정, 약물 오남용 예방교육과 심리치료 등을 실시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소년교도소나 성인교도소와 관련해선 “인성교육과 마약류 사범 심리치료 프로그램, 치료 조건부 가석방 등을 운영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22년 4월 1일 마약 밀수입 조직 총책 A씨가 캄보디아에서 국내로 강제 송환됐다. 사진은 경찰이 압수한 필로폰 등. 뉴스1

2022년 4월 1일 마약 밀수입 조직 총책 A씨가 캄보디아에서 국내로 강제 송환됐다. 사진은 경찰이 압수한 필로폰 등. 뉴스1

“마약 유통 사범은 강력 처벌하되…투약자는 치료에 중점 둬야”

일각에선 재범 고리를 끊기 위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범진 마약퇴치운동본부 마약퇴치연구소장은 “마약 사범은 밀조·밀수, 판매, 투약 등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제조·밀수와 판매 사범에 대해선 나이와 국적 등을 불문하고 처벌을 매우 강화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다만 이 연구소장은 “투약자의 경우 범법자인 동시에 환자라는 인식을 갖고 유통사범과 분리해 재활치료를 우선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10대 투약자에 대해선 처벌보다는 치료와 재활, 사회 복귀 교육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제언이다.

지난해 국내 전체 마약사범 1만 8695명 가운데 검찰은 34.9%인 6520명을 재판에 넘겼고(약식기소 포함), 19.6%인 3668명에 대해선 기소유예, 584명(3.1%)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기소유예란, 혐의는 인정되나 여러 정황을 참작하여 기소하지 않는 처분이다.

마약류 사범에 대한 1심 재판 결과를 보면, 지난해 유죄를 선고한 4747명 가운데 44%인 2089명이 징역형 등의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벌금형도 4.3%인 205명에 달했다.

해외에서 마약 사범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하는 대표적 국가는 싱가포르다.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지난해 12월 7일 중앙마약국(CNB) 창설 50주년 기념식에서 “가혹한 법과 심각한 마약 범죄에 대한 사형제도, 강력한 법 집행이 마약 중독자 수를 적게 유지하는 데 중심축이 돼 왔다”라고 밝혔다.

싱가포르에선 헤로인 15g 이상, 코카인 30g 이상, 대마초 500g 이상을 밀거래 하다 적발되면 사형에 처하게 돼 있다. 리 총리에 따르면 현재 연간 싱가포르에서 약물 남용으로 매년 체포되는 사람 수는 1990년대 중반의 절반가량으로 감소했다고 한다.

2022년 5월 26일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 EPA

2022년 5월 26일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 EPA

대한민국에선 10대 마약사범 확산을 막기 위해 국회가 법령 강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넘을 관문이 많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 4월 27일 마약류관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미성년자에게 마약류인 대마를 제공하거나 흡연 또는 섭취하게 한 자에 대해 처벌 조항을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서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처하도록 상향하는 게 골자다. 또 상습적으로 죄를 범한 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조항도 제안됐다. 이 법안은 현재까지 보건복지위 소위에서 한 차례 논의됐다고 한다.

서 의원은 “현재 다른 마약류인 ‘마약’ ‘향정신성의약품’의 경우 처벌 조항이 높은 수준이지만, 대마는 상대적으로 낮다”라며 “또한 10대들의 약물 남용은 본드와 가스 등에서 시작하여 대마로 심화하는 경향이 있어 대마 관련 처벌 조항을 강화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마는 마약류 투약 사범들이 입문용으로 투약하는 관문 역할을 하는 것으로도 지목된다.

또한 최근 태국 등 해외 국가에서 대마를 합법화함에 따라 한국 관광객이 현지에서 대마에 노출될 가능성이 증가한 데다 대마 밀수가 증가할 우려가 큰 점도 법안 발의의 배경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른 범죄에 대한 처벌 조항과의 형평성 측면에서 지나치게 높다”라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아, 합의점을 찾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10대 마약공화국

단순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청소년이 해외직구로 마약을 밀수하고 메신저 채팅앱으로 판매하는 세상입니다. 한때 마약청정국에서 시나브로 10대들의 마약공화국으로 전락한 대한민국. 중앙일보가 대검찰청ㆍ국가수사본부ㆍ식품의약품안전처ㆍ마약퇴치운동본부 전문가와 단속은 물론 치료ㆍ재활ㆍ교육예방 전반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합니다. 세계 마약 퇴치의 날인 6월 26일부터 중앙일보 10대 마약공화국(www.joongang.co.kr/series/11575)을 만나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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