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경찰 실수로 50일 떠돈 사건…'코인' 피해자 극단선택 시도

중앙일보

입력 2022.07.06 05:00

50대 남성 A씨가 투자 관련 오픈 채팅방에 처음 접속한 건 지난해 12월.

A씨는 그곳에서 B씨와 대화를 나누며 한 코인 거래소를 알게 됐다. B씨는 해당 거래소에서 수익을 얻은 내역을 보여주며 “하루 만에 이만큼 벌었다”고 자랑했다. B씨는“폭풍시세가 온다”“흔하게 오는 기회가 아니다”며 자신이 이용하는 암호화폐 거래소에 A씨의 코인을 옮겨둘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코인을 예치해두는 것만으로 고정 수익금이 들어온다면서다.

“이번에는 진짜 돌려주겠다”…4개월간 12억 뜯어내

피의자들은 매일 자신의 투자 내역을 보여주며 '다시 오는 기회가 아니'라는 말로 투자에 동참할 것을 권유해왔다. [독자 제공]

피의자들은 매일 자신의 투자 내역을 보여주며 '다시 오는 기회가 아니'라는 말로 투자에 동참할 것을 권유해왔다. [독자 제공]

A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B씨가 알려준 해당 거래소에 접속해 암호화폐를 이체했다. A씨에 따르면 사이트 상에서 암호화폐는 정상 거래된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그로부터 약 3주에 걸쳐 총 7.7 BTC(당시 시세로 약 4억 3000만원)어치를 입금했다. B씨의 태도가 수상하다고 느껴진 건 올해 1월 A씨가 수익금을 인출하겠다고 한 이후부터다.

B씨가 거래 수수료와 이자 소득세 등 갖은 이유를 대며 A씨에게 14차례에 걸쳐 각각 수천만 원어치의 코인을 요구한 것이다. A씨는 투자금을 돌려받을 목적으로 B씨 요구에 따라 추가적으로 코인을 입금했다. 그렇게 올해 5월까지 4개월간 이체한 코인이 한화로 약 12억원어치였다. 그동안 신용등급은 1등급에서 9등급으로 떨어졌다. 신용등급이 낮아져서 고리대금업체에도 대출을 받아 투자금을 메웠다.

50일간 3번 이송된 사건…이송 고지 못 받아

 피해자 A씨와 피의자 측이 나눈 대화 내용. 피의자는 수수료, 소득세 등 갖은 이유를 대며 예치금을 출금하기 위해서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씨 가족 제공]

피해자 A씨와 피의자 측이 나눈 대화 내용. 피의자는 수수료, 소득세 등 갖은 이유를 대며 예치금을 출금하기 위해서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씨 가족 제공]

A씨는 마지막 희망을 수사기관에 걸었지만 도움의 손길은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거주지인 제주도에서 서울을 오가며 변호사부터 수소문한 A씨는 지난 5월6일 서울경찰청에 B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20여일이 지나도록 경찰로부터 별다른 연락도 받지 못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고소장은 서귀포경찰서로 이송돼 있었다. 고소장을 접수한 서울청이 제주경찰청으로 사건을 이송했고, 제주청은 서귀포서로 사건을 보낸 것이다. A씨는 낙담했다. A씨는 사건이 이송을 거듭하는 동안 경찰로부터 한 번도 제대로 된 고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피해자 A씨와 피의자 측이 나눈 대화 내용. 피의자는 갖은 이유를 대며 예치금을 출금하기 위해서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씨는 피의자에게 여러 차례 자신의 사정을 호소했으나 소용없었다. [A씨 가족 제공]

피해자 A씨와 피의자 측이 나눈 대화 내용. 피의자는 갖은 이유를 대며 예치금을 출금하기 위해서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씨는 피의자에게 여러 차례 자신의 사정을 호소했으나 소용없었다. [A씨 가족 제공]

궁지에 몰린 A씨는 5월말 자신의 차량에서 극단 선택을 시도했다.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지연성 뇌손상으로 일상생활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뒤늦게 서귀포서는 지난달 7일 사건을 다시 서울청으로 되돌려보냈다. A씨가 중환자실에 입원해있을 때였다. 서귀포서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원래 서울경찰청에서 계속했어야 하는 사건인데 규칙을 잘못 적용해 이송한 것으로 판단해 반송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고소장 접수 후 50여일 지난 지난달 24일에서야 정식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면서  서울청은 “이송하는 부서에서 실수가 있었던 걸로 보인다. 경찰 조직 내에서 발생한 일인 만큼 사과드린다”는 뜻을 A씨 측에 전했다고 한다. 서울청 관계자는 중앙일보에도 “현재 가상자산의 흐름을 추적하는 한편 A씨의 PC와 휴대폰을 제출받아 디지털 포렌식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조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외 피해자 다수, 철저한 수사 촉구

A씨가 사기를 당한 가상화폐 거래소. 현재는 접속이 차단되어 있다. [A씨 가족 제공]

A씨가 사기를 당한 가상화폐 거래소. 현재는 접속이 차단되어 있다. [A씨 가족 제공]

A씨 측에 따르면, 동일한 코인 거래소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또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일본 내 온라인 사이트에서도 확인된다고 한다. A씨 측은 “아직도 기망당한 게 어리석다며 피해자를 탓하는 이들이 많다”며 “이제라도 경찰의 철저한 수사로 엄벌이 이뤄졌으면 하는 게 남은 희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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