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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중국·러시아발 역풍에 대처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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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한미 정상회담과 나토 정상회의를 거치면서 새 정부의 외교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강한 대북 자세, 동맹 강화, 미국 주도의 중국 러시아 견제 구도 참여, 한일 관계개선 등이 특징이다. 지난 정부와 크게 다르다.

한편 새로운 정책이 자유, 인권 등 가치에 대한 유례없는 중시 기조 속에서 추진된다는 것도 특이하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주요 국정개념으로 제시하고 이를 지키기 위한 연대와 책임을 설파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양 정상은 자유 논의에서 의기투합했다. 나토 정상회의에서도 유사한 언급이 이어졌다. 새 정부의 외교를 추동하는 이념적 기초이므로 예사롭게 볼 수 없다.

친미 선회로 중·러 반발하니
미국과 중·러 간 새 균형점 찾고
가치와 실제 행동 근접시켜
일관성과 신뢰를 확보해야

미국은 한국의 이런 접근에 기대를 한껏 높였다. 새 정부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호응했다. 한미 안보협력은 물론 한미일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반러 연대를 강화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데에도 박차를 가했다. 미국의 여러 동맹을 중러 대항 연대라는 명분 하에 한데 묶으려 했다. 한국 일본 등 미국의 아태 지역 동맹이 나토 회의에 초청된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 금번 나토 회의는 중국을 새로운 구조적 도전으로 규정했다. 한국은 여기에 참여했다.

이제 세계의 주요국 들은 미국과 중러로 나뉜 대립구도를 피해갈 수 없게 되었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이자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이다. 한국 경제는 미국 등 서방의 기술과 시장에 연동되어 있다. 이러한 한국에게 미국과의 공조는 명분과 실익 면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우리의 불가피한 선택은 불가피하게도 러시아, 중국, 북한의 강한 반작용을 불러온다. 이미 북한은 도발을 가속화하고 있고 한러 관계는 최저점이다. 정작 문제는 중국이 보일 대응이다. 중국은 지난 30년 간 한국을 자기 편으로 견인하는 데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여기므로, 새 정부의 명료한 대미 경사가 그간의 성과를 무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중국 발로 큰 역풍이 예상된다.

그렇다면 우리 앞의 과제는 미국과의 공조를 어느 선까지 밀고 갈 지, 이에 따른 중국, 러시아, 북한 발 역풍에 어떻게 대처할 지일 것이다. 대처 방안 중 하나는 사안 별로 적절한 정책을 선택하여 관계를 꾸려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중, 미러, 남북미 관계를 감안하여 한국이 설 좌표와 나갈 방향의 대강을 정해두고, 이를 기준점으로 구체 사안에 대응하는 방법이다.

지난 시기 역대 정부의 대처는 전자였다. 그러다 보니 상대의 주문에 따라 미중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인상을 주었다. 상대는 한국은 압력을 가하면 따라온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새 정부는 미중, 미러 관계가 최악이고 북핵 위협도 최고도인 상황에서 가장 강도 높은 친미 노선을 지향하고 있다. 종래와 같은 사안 별 접근을 할 경우, 그 역풍은 어느 때 보다 심각할 것이다.

그러니 차제에 후자의 접근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더 공조를 하되 중국 러시아와 그리 멀지 않은 좌표와 지향점을 정하여 일관된 행보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미국, 중국, 러시아는 한국에 대한 기대치를 조정할 것이다. 미국은 우리가 어느 선까지 공조에 응할지를 알게 될 것이다. 중러는 한국이 어느 선 이상으로 자신을 멀리하지는 않으리라는 예측을 할 것이다. 한국의 정책에 일관성, 일체성, 예측가능성, 지속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관계가 보다 안정될 것이다.

관련하여 정부의 적극적인 가치지향적 레토릭에 관해서도 생각해 볼 점이 있다. 물론 한국의 정치 경제 발전 경험이나 국제적 위상을 감안할 때, 한국은 지금보다 더 가치 지향적인 외교를 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로 가치를 추구할 지에 대해서는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우선 국내 정치적인 현실이 있다. 대체적으로 한국 내 여론은 그리 가치지향적이지 않다. 여론이 실리를 버리고 가치를 계속 지지할 지 불확실하다. 또 국제정치 현실 상, 한국과 같은 나라가 지나치게 가치외교를 내세울 경우, 정책이 실용성을 잃을 소지도 있다.

만일 가치 언급에 행동이 못 미치면 신뢰의 문제가 생긴다. 벌써 정부 일각에서 중국에 대해서는 가치를 타협하는 듯한 언술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한국의 가치외교에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 다른 사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지원 여부이다. 정부는 신중한 인상인데, 그 동안 우리의 가치 언급을 들어왔던 서방국 들은 의아해할 것이다.

그러므로 가치지향적인 레토릭과 행동 간의 갭을 줄여야 한다. 레토릭의 수위를 낮추든지 행동의 수위를 높이든지 대처가 필요해 보인다.

요컨대 우리가 미국과 공조하고 가치지향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매사 과유불급이다. 미중, 미러 사이에서 기준점을 찾아 새 균형을 잡는 리밸런싱을 하고, 가치 언급과 행동을 근접시켜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를 높이는 것이 좋다. 그래야 외교적 운신공간이 생긴다. 지금처럼 진영 대결이 치열한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