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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인권이 무너진 미얀마에서 ‘가치외교’를 실현하려면

중앙일보

입력 2022.07.06 00:30

업데이트 2022.07.06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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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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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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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지난해 2월 1일 버마어로 ‘땃마도’로 불리는 군부의 쿠데타로 합법적인 민간정부가 무너졌다. 다음 달로 1년 반이 된다. 땃마도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지 국가 고문을 비롯한 민간 정부 인사들을 투옥하고, 항의하는 국민을 유혈 진압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인 가치에 정면 도전하고 있다.

이런 미얀마는 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에 대한 시험대가 될 수밖에 없다. 이웃인 아세안 지역이 반민주주의·반인권의 발화점이 되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서방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작년 2월 쿠데타, 민간정부 붕괴
쇄국정책 써 경제제재 안 먹혀
식량·보건 등 인도적 지원과 함께
시민사회와 협력, 가치외교 펴야

하지만 미국이 흔히 사용해온 제재와 압박으로 땃마도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땃마도가 1962~2011년 강력한 쇄국정책으로 미얀마에 외부 입김이 먹히지 않는 독특한 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민주정부를 무너뜨린 ‘땃마도’에 항의하는 미얀마 시민들이 지난해 2월 쿠데타 직후 수도 네피도에서 군경과 대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민주정부를 무너뜨린 ‘땃마도’에 항의하는 미얀마 시민들이 지난해 2월 쿠데타 직후 수도 네피도에서 군경과 대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얀마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낮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2019년 수출은 181억 달러, 수입은 186억 달러다. 액화천연가스(LNG)·천연가스·구리·콩 등이 주류인 수출은 접경한 중국(57억 달러)·태국(32억 달러)에 집중된다. 일본(14억 달러)·미국(8억 달러)·독일(6억 달러)의 비중도 작다. 석유·섬유·식용유·식품 위주의 수입은 중국(64억 달러)·싱가포르(34억 달러)·태국(22억 달러)이 대부분이다. 말레이시아(9억 달러)·인도네시아(9억 달러)가 그 뒤를 잇는다.

미얀마는 매력적인 불교유산과 자연으로 매년 3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지만, 이 역시 땃마도의 행동을 바꿀 지렛대가 되기는 역부족이다. 2019년 미얀마 호텔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외국 관광객은 중국(75만 명)·태국(27만 명)·일본(13만 명)·한국(11만 명)·미국(7만 명)·싱가포르(6만 명)의 순이다. 하지만 수입의 상당 부분이 민간에 가기 때문에 이를 제재해도 군부는 눈도 깜빡하지 않을 것이다.

근본적인 것은 경제에 대한 땃마도의 태도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집권 세력은 경제를 키워 국민 지지를 얻는 방법을 택한다. 미국이 경제제재를 정권을 압박해 행동을 바꾸는 수단으로 사용했던 배경이다. 하지만 땃마도는 금욕을 강조한 불교 사회주의를 내세워 ‘미얀마 사회주의의 길’을 걸었다. 국민이 가난하고 무지해야 저항을 하지 않는다고 여긴 때문인지 경제를 방치했다. 자원이 풍부한 미얀마가 국제통화기금(IMF) 2022년 국내총생산(GDP) 전망치가 명목 금액 기준 692억 달러로 세계 83위 수준이고, 1인당 GDP는 1285달러로 세계 185위의 최빈국이 된 배경에는 땃마도가 자리 잡고 있다.

땃마도는 거대 군대를 운영하고, 국영기업을 장악해 거기에서 부패·밀수·밀매 등을 통해 이익을 얻고 있다. 무기도 대부분 중국과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에서 들여온 것이어서 서방의 입김이 먹힐 여지가 없다.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에 따르면 인구 5400만 명의 미얀마는 아시아에서 중국(203만)·인도(146만)·북한(128만)·파키스탄(65만)·한국(60만) 다음으로 많은 40만6000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군사 장비의 경우 육군은 중국에, 공군은 러시아에 각각 의존하고 있다. 185대의 주력전차는 69-Ⅱ식 100대와 59-D식 25대 등 중국산이 3분의 2를 넘는다. 그밖에 냉전 시절 소련에서 획득한 T-72S 50대, T-55 10대가 있다.  431대 이상을 운용하는 장갑차도 250대의 85식과 55대의 90식, 30대 이상의 92식 등 중국산이 77%를 넘는다.

미얀마 공군이 보유한 63대의 전투기 중 31대가 중국산 F-7 계열이며, 32대는 소련/러시아산 미그-29 계열로 각각 절반씩 차지한다. 중국산 F-7 계열은 소련제 미그-21을 복제한 F-7의 수출 버전이다. 미얀마가 22대를 보유한 지상공격기는 모두 중국산 Q-5의 수출 버전인 A-5C다.

이런 상황에서는 단기적으로 땃마도의 행동을 고치는 방법보다 장기적으로  식량과 생필품 공급과 보건의료 분야 지원으로 미얀마 국민을 돕는 인도주의 외교가 급선무일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과 미얀마의 소통 공간을 넓혀가면서 농업·교육·문화 등 공공외교 분야에서 협력 범위를 차차 늘려가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가치와 이해의 충돌로 땃마도에 대한 응징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인도주의를 앞세운 접근으로 인권과 민주주의가 성장할 틈을 열어가는 게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달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국립외교원과 지성호(국민의힘)·박영순(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인권과 민주주의: 신정부의 대 동남아 외교의 과제’ 주제의 토론회는 한국적인 가치외교의 전략을 모색한 소중한 자리였다.

발제자로 나온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는 “가치외교는 한국외교의 새로운 장을 여는 주요 과제”라며 “정부 주도의 외교를 넘어 시민사회 간의 연계·활동 등 다채널 가치외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은홍 성공회대 교수는 “한-아세안 파트너십 채널을 이용해 시민사회와 함께 군사정권의 폭력 중단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다단계 로드맵을 구상해 평화·인권의 공공외교를 펼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동남아 국가와는 경제적 유대만큼 사람과 평화에 대한 관심이 절실하다”며 “지속적 네트워크 교류로 관계를 발전시킨 베트남 외교의 성장 과정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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