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최선희의 문화예술톡

아트 바젤과 바이엘러의 꿈

중앙일보

입력 2022.07.06 00:18

업데이트 2022.07.06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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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선희 초이앤초이 갤러리 대표

최선희 초이앤초이 갤러리 대표

지난 6월 16일부터 19일까지 열린 아트 바젤은 세계 최고의 아트 페어로서의 명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주었다. 페어가 열리는 메세 플라자를 분주하게 오가는 화상들과 컬렉터들 그리고 예술 애호가들로 인해 스위스의 소도시 바젤은 세계의 중심에 있었고, 훌륭한 예술 작품을 찾아 나선 이들의 설렘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이렇게 많은 발견과 색다른 감상과 경험을 제공하는 미술 행사로 베니스 비엔날레 다음으로 아트 바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아트 바젤의 VIP 오프닝보다 하루 앞서 개막하는 디자인 페어인 디자인 마이애미와 아트 바젤에 참가하는 갤러리 중에 선정된 갤러리들이 대표 작가의 대규모 조각이나 설치 작품을 선보이는 ‘아트 언리미티드’에서 이미 예술가의 상상이나 생각들이 나아갈 수 있는 ‘확장’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전쟁이나 난민,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들, 미래의 세대가 직면하게 될 문제나 운명 등의 이슈들에 대해 예술가들이 원대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언어에 먼저 귀를 기울여보게 된다.

아트 바젤 탄생 주역 바이엘러
예술가에 대한 존경, 미래 비전
건축의 경험 중시한 미술관 건립
스위스 화상 에른스트 바이엘러가 세운 바이엘러 마술관 전경. [사진 마크 니더만]

스위스 화상 에른스트 바이엘러가 세운 바이엘러 마술관 전경. [사진 마크 니더만]

루이즈 부르주아의 ‘거미’ 작품이나 모딜리아니의 그림 등 몇백억원 혹은 몇천억원을 호가하는 작품이나 이제 막 아트 바젤에 진입한, 상대적으로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고루 만날 수 있었던 아트 바젤 페어에서는 역시 ‘자본’의 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최고라는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아트 바젤의 이면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부스비와 블루칩 작가들을 소개하는 메이저 갤러리들, 이들 작품들을 소장하는 부호들, 블루칩에 투자하는 투자 회사등을 뒤에 업은 거대한 규모의 자본의 힘이 존재하고 있다.

한편 오랜 세월 최고의 부스를 준비해오는 참가 갤러리들의 정성과 이들이 소개하는 작가들에 대한 존경과 직업에 대한 열정과 자랑스러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아트 바젤이기도 하다.

이렇게 아트 바젤을 세계적인 아트 페어로 만들고, 바젤을 세계 미술계 지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의 하나로 만든 사람은 스위스의 화상이자 컬렉터였던 에른스트 바이엘러(Ernst Beyeler·1921~2010)다. 불과 스무 네살에 바젤에서 고서적을 파는 서점을 인수하면서 화상의 길로 접어든 바이엘러는 피카소와 클레·칸딘스키·자코메티 등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판매하면서 화상으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화상으로서 타고난 재능을 지녔던 그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예술가들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심과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 예술이 미래에 주는 정신적인 가치를 내다볼 줄 아는 비전이었다.

화상으로 성공하면서 그는 평생 삶의 동반자였던 아내 힐다와 함께 주요 작가들의 작품들을 함께 사 모았는데, 후에 이들이 소장했던 걸작들을 모아 바이엘러 미술관을 오픈하게 된다. 바젤을 문화적 중심지로 만든 첫 번째 선물 외에 미술관을 열고 자신의 소장품을 보다 많은 이들과 공유하는 두 번째 선물을 남기고 그는 2010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바이엘러 미술관에 들어서면 시골 동네의 고즈넉함 속에 입구에서 보일 듯 말듯 지어진 건물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바이엘러가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인 렌조 피아노에게 어떠한 의뢰를 했을지 상상하곤 한다. “리헨의 자연과 최대한 하모니를 이룰 수 있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예술품에서 받는 감동을 경험하게 해주는 미술관을 지어주게나.” 렌조 피아노는 바이엘러의 소망대로 ‘건축’이 아닌, 건축이 주는 ‘경험’이 중요한 미술관을 지었다. 자연광을 최대한 받아들이는 층고의 구조로 된 넓은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을 감상하고 전면이 유리로 된 복도에서 시골의 자연을 고스란히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기나긴 복도에 놓인 소파에 앉아 유리 밖의 풍경을 감상할 때면 자연의 미, 사계절의 신비야말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걸작임을 느끼게 된다.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인간이 범하는 실수와 삶의 에러들과 어리석음들로 인해 완전하지 않은 삶이기에 완전함에 다가가고자 하는 욕망이 예술을 창작하도록 하는 게 아닐까. 리헨의 풍경을 보면서 바이엘러의 비전이 이루어낸 것들이 진정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

최선희 초이앤초이 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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