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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 Review] 사무실과 헤어질 결심, 3D 홀로그램·아바타가 돕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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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원격·재택근무가 급격히 늘며 텅 비었던 사무실은 2022년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에도 여전히 비어 있다. “사무실로 돌아오라”는 회사도 있고, “재택근무와 사무실 출근을 병행하라”는 회사도 있다. 문제는 직원들이 더는 회사 요구에 고분고분하지 않는다는 것.

지난달 니콜라스 블룸 미 스탠포드대 교수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주5일 모두 사무실로 출근하라’는 회사에서 이 방침을 준수하는 직원은 10명 중에서 5명에 불과했다. “사무실로 나오든가, 아니면 퇴사하라”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선언 이후, 테슬라 인재들을 영입하려는 빅테크들도 늘었다. 애플에선 사내 반대 성명에 ‘주3일 의무 출근제’마저도 보류됐다.

“원하는 날만 사무실에 출근하라”

‘어디서 일할지’ 못지않게 ‘어떻게 일할지’를 놓고 노사가 대립각을 세우기도 한다. 지난 4일부터 ‘메타버스 근무제’를 시작한 카카오는 지난 5월 발표 당시 직원 반발을 크게 샀다. ‘원격근무 시 실시간으로 음성 채널에 연결돼 있어야 하고, 주 1회 대면 회의도 필수’라는 조건이 자율성을 떨어뜨리고 감시받는 듯한 불쾌감을 준다는 이유다. 결국 사용자 측은 ‘필수 조건’을 ‘권장 사항’으로 바꾸고, 격주 ‘놀금’(주4일 근무)이라는 당근으로 직원들을 달래야 했다.

팩플레터 250호 내부 그래픽

팩플레터 250호 내부 그래픽

잘나가는 회사들에서 원격 근무는 특히 ‘뉴노멀’이 됐다. 원격 근무는 인재유출 방지는 물론 인재유입 효과까지 있다는 게 이를 도입한 회사들의 계산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내 모빌리티 스타트업 임원은 “준비 중인 서비스 특성상 일주일에 2번 이상 사무실 출근을 해야 하는데, 개발자를 구하기 힘들다 보니 ‘원하는 날만 사무실에 출근하라’고 조건을 바꿨다”고 말했다.

잡플래닛 설문조사(4월)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직장인들이 회사 선택 시 따지는 요소 1위가 재택근무 여부(35.9%), 2위가 워라밸(33.3%)이었다. 구인·구직 플랫폼 원티드에선 이용자가 #원격근무 #재택근무 해시태그를 클릭하면, 근무 형태가 자유로운 회사만 모아 보여준다. 원격근무나 재택근무 등이 취·이직 시 주요 조건이 된 셈이다.

김지예 잡플래닛 이사는 이에 대해 “2000년대에는 성과주의와 경쟁, 2010년대에는 창의와 협력이 키워드였는데, 팬데믹이 닥친 2020년대에는 자율성과 개인의 성장이란 키워드가 중요해졌다”고 설명한다. 업무에 투입하는 절대 시간을 줄이자는 트렌드가 확산하는 영향도 크다. SK텔레콤 등 IT 기업들이 도입하고 있는 주4일제도 노동 시간 자체를 줄이는 움직임이다.

원격 근무가 잘 굴러가려면 ‘언제, 어디서든 균일한 업무 환경’을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말 “원격 업무 환경을 구축하려면 ICT 인프라 및 디지털 기술에 대한 (기업) 투자가 더 필요하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어떤 디바이스에서 접속하든, 업무에 필요한 소통 툴을 한 플랫폼에서 클라우드 기반으로 사용하는 ‘서비스형 통합 커뮤니케이션’(UCaaS·Unified Communications as a Service)은 원격 근무에 필수다. UCaaS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화상회의나 채팅, 문서 전달 기능을 각각 따로 써야 했던 1세대 통합커뮤니케이션(UC)이나 그룹웨어보다 협업이 훨씬 수월해졌다. 줌(Zoom), 시스코 웹엑스(Webex) 등이 대표적인 UCaaS다. 시장조사기관 모도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2027년까지 UCaaS 시장은 연평균 25.65%씩 커질 전망이다.

‘몰입 노동을 통한 성과 달성’의 가치는 원격 근무 시대에 더 중요해졌다. 원격 근무로 소통에 들이는 시간이 늘면, 업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기 때문. 마이크로소프트(MS)가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년간 MS의 협업 툴 팀즈 사용자의 주간 회의 시간은 평균 252% 증가했고, 시간 외 근무(28%)와 주말 근무(14%)도 늘었다.

그렇다고 꼭 필요한 협업까지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연결·소통과 효율성을 모두 충족하기 위해서는 수십~수백개의 협업 툴 중 옥석을 가려내야 한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은 글로벌 협업 툴 시장 규모가 지난해 약 472억 달러(약 61조원)에서 2026년 858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로 해결

협업 툴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슬랙’(실시간 채팅 기반)이나 팀즈와는 다른 길도 있다. ‘노션’ 같은 문서 기반 협업 툴이 최근 부상하고 있다. 업무 중에 대화에 참여해 반응해야 할 필요가 없으니 몰입에 좋고, 업무 진행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국내 스타트업 ‘콜라비’도 원페이지 협업 툴을 제공한다.

채팅이나 업무 관리 등 각각 파편화돼 있던 기능을 하나로 모은 협업 ‘허브’(hub)도 등장했다. 구글이나 MS 오피스와 같은 기본 앱과도 연동해, 하나의 툴만 켜면 그 안에서 다른 툴도 쓸 수 있는 구조다. 스윗(Swit)은 채팅 기능에 MS 오피스 같은 업무 기능을 추가해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스윗 하나로 해결하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증강현실(AR) 기반의 ‘버추얼 협업’도 상당히 가까이 다가왔다. 시스코는 웹엑스에 ‘3D 홀로그램’을 결합했다. AR 헤드셋을 쓰고 접속한 사용자들이 같은 홀로그램을 보면서 업무를 진행하는 방식. MS가 올 하반기 출시할 ‘메시 포 팀즈’(Mesh for Teams)에서도 2차원, 3차원 아바타로 영상 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

이승환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메타버스연구팀장은 “모니터에 바둑판식 평면 화면으로 보는 줌(ZOOM) 방식은 공존감이 떨어지고 순차적으로 말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메시 포 팀즈와 같은 공간 연결 플랫폼이 나오면 다른 기업들도 경쟁을 위해 비슷한 기능을 추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디지털 연결 진화의 초입에 서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독일, 원격근무도 산재 적용…포르투갈, 근무시간 외 연락 금지

국내에서는 원격 근무가 법제화되어 있지 않다. 근로기준법에서는 근무 장소를 ‘사업장’으로 전제하고 있어서다. 고용노동부가 ‘재택 근무 종합 매뉴얼’(2020년)을 발표했지만, 이마저도 원격 근무 전반이 아닌 재택 근무 위주다.

팩플레터 250호 내부 그래픽

팩플레터 250호 내부 그래픽

2000년대부터 원격근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유럽은 제도적 준비도 앞섰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10월 낸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유럽 국가들은 원격 근무에 관한 법을 새로 만들거나, 기존 법을 개정했다. 유럽의 각국 법에 명시된 특징을 살펴봤다.

프랑스는 노동법전에 “원격 근무자는 기업 구내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와 동일한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원격 근무 중 발생하는 업무상 재해도 산재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근거를 만든 것이다.

독일도 “자녀를 돌보는 것과 관련해 사업장 근로와 동등하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2020년 ‘원격 근로에 관한 긴급 입법’을 제정한 스페인은 “원격 근무자 수가 30%를 초과하는 경우 서면 합의를 해야 한다”고 법에 규정했다. 이 합의서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사항도 상세히 정해놓은 게 특징이다. 원격 근무로 발생하는 지출 항목 리스트와 사용자 측이 부담할 금액, 지급될 장비 목록 등이 포함된다.

원격 근무가 보편화 할수록 근무 시간 외에는 업무 연락을 받지 않을 권리가 중요해진다. 프랑스는 “사용자는 원격 근무자와 협의해 연락할 수 있는 시간대를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포르투갈도 일부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 근무 시간이 아닌 직원에게 전화, 문자, e메일로 연락하는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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