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3학년 때 수학 본격 시작…세계 수학난제 11개 풀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2.07.06 00:02

업데이트 2022.07.06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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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재미동포 수학자가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Fields Medal)을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받았다. 국제수학연맹(IMU)은 5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2022년 세계수학자대회(ICM)에서 허준이(39)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 등 4인을 필즈상 수상자로 선정, 시상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필즈상에는 허 교수 외에도 위고 뒤미닐-코팽(37·프랑스)  제네바대학 교수와 제임스 메이나드(35·영국)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교수, 마리나 비아조프스카(38·우크라이나) 스위스 에콜 폴리테크니크 페데랄 드 로잔의 수학연구소 석좌교수가 수상자로 선정됐다.

‘필즈상’ 수학계에서 세계 최고 권위  

5일(현지시간) 헬싱키에서 열린 2022년 세계수학자대회에 참석한 필즈상 수상자. 왼쪽부터 마리나 비아조프스카 스위스 에콜 폴리테크니크 페데랄 드 로잔의 수학연구소 석좌교수, 제임스 메이나드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교수,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뒤미닐-코팽 제네바대학 교수. [AP=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헬싱키에서 열린 2022년 세계수학자대회에 참석한 필즈상 수상자. 왼쪽부터 마리나 비아조프스카 스위스 에콜 폴리테크니크 페데랄 드 로잔의 수학연구소 석좌교수, 제임스 메이나드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교수,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뒤미닐-코팽 제네바대학 교수. [AP=연합뉴스]

필즈상은 수학자가 받을 수 있는 수학 분야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이다. 국제수학연맹이 4년에 한 번 개최하는 세계수학자대회에서 수학계에 중요한 공헌을 한 40세 미만의 수학자에게 주는 상이다. 허 교수는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한국에서 초등학교부터 중·고교와 대학을 거쳐 대학원까지 나온 사실상의 한국인이다.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와 이인영 서울대 노어노문과 명예교수의 아들로, 양친의 미국 유학 시절 캘리포니아 스탠퍼드에서 태어났다. 허 교수는 현재 프린스턴대 교수이지만 2015년부터 KIAS 수학부 연구교수를 겸임하면서 매년 여름방학 동안 서울에서 체류해 왔다. 2021년부터는 KIAS의 석학교수로 임명됐다.

허 교수는 이날 헬싱키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수학은 저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고, 좀 더 일반적으론 인간이라는 종(種)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또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일”이라며 “저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일에 의미 있는 상도 받으니 깊은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허 교수는 조합 대수기하학을 통해 조합론의 난제를 해결하고 대수기하학의 토대가 더욱 확장되도록 새 지평을 연 공로를 인정받았다. 주 연구 분야는 조합 대수기하학(combinatorial algebraic geometry)으로, 대수기하학(algebraic geometry)을 통해 조합론(combinatorics)의 문제를 해결하는 비교적 새로운 연구 대상이다. 허 교수는 조합 대수기하학 기반의 연구들을 통해 수학자들이 추측 형태로 제시한 11개 이상의 난제(conjecture)를 해결해 왔다. 〈표 참조〉 특히 대표적 난제로 알려진 리드 추측은 2012년 박사과정 초기에 풀어 수학계의 화제가 됐다. 리드 추측은 여러 개의 꼭짓점을 선분으로 연결하고, 연결된 점까지는 다른 색으로 칠하는 경우의 수를 사용된 색의 개수에 관한 함수로 표현할 때 함수는 다항식이 되는데, 그 다항식의 계수가 커지고 작아지는 경향을 추측하는 것을 말한다.

최재경 KIAS 원장은 “허 교수는 대수기하학에 대한 강력한 직관을 바탕으로 조합론 난제를 공략하는 등 서로 다른 두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고 말했다.

허 교수의 석사 지도교수인 김영훈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수학계에서 제시된 난제는 평생 하나만 풀어도 뛰어난 업적으로 평가받는다”며 “허 교수는 1학년 때 선택한 고급수학 과목에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말했다.

“몸 아파 야자 빼달라했지만 거부당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허 교수는 세계적 수학자이지만 한때 한국 제도권 교육의 낙오자였다. 고교 재학 시절 수학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지만 시(詩)를 즐겨쓰는 융합형 인재였다. 하지만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해 고교 1학년을 끝으로 자퇴했다. 검정고시로 고교과정을 마치고 대입 수능을 통해 서울대에 입학했다. 학부는 수학이 아닌 물리학과였지만 수학에 더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3학년 때엔 아예 물리학을 포기하고 수학을 복수전공하는 바람에 물리학 관련 과목 학점이 D·F가 되는 등 학점이 나빴다. 이 때문에 학부를 6년 동안 다녀야 했다. 대학원에서는 전공을 수학으로 바꿔 석사를 마쳤다.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대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에서도 석학 중 석학만 갈 수 있다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연구원과 스탠퍼드대 교수를 거쳐 지난해부터 프린스턴대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허 교수의 부친인 허 명예교수는 “제 아들이 특별히 머리가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집안 내력으로 수리과학적 적성은 있다고 생각했다”며 “제 아들인 것을 떠나 나 또한 한국 수학계의 일원으로서 한국인 중 필즈상 수상자가 나온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허 명예교수는 “아들이 고교 때 건강이 좋지 못해 야간 자율학습을 빼달라고 요청했는데 학교에선 예외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거부했다”며 “아들이 자퇴를 원해 의논 끝에 집에서 공부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허준이 교수는 그간 수많은 난제를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블라바트닉 젊은과학자상, 2019년 브레이크스루 뉴호라이즌상, 2021년 사이먼즈연구자상 및 삼성 호암상 등을 받았다.

40세 미만, 4년에 한 번 주는 ‘필즈상’
필즈 메달

필즈 메달

캐나다 수학자 존 찰스 필즈 토론토대 수학과 교수가 제안해 4년마다 열리는 세계수학자대회에서 수여되는 상. 수학계에서 어렵고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중요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 사람에게 준다. 만 40세 미만 학자만 선정한다. 금메달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아르키메데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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