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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필즈상 수상 허준이와 천재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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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가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열린 국제수학연맹(IMU) 필즈상 시상식에서 필즈상을 수상한 뒤 메달과 함께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가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열린 국제수학연맹(IMU) 필즈상 시상식에서 필즈상을 수상한 뒤 메달과 함께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1. 한국계 미국인 허준이(39) 프린스턴대 교수가 5일 필즈상(Fields Medal)을 받았습니다.

필즈상은 국제수학연맹(IMU)이 4년마다 40세 이하 수학자에게 주는 최고상인데, 노벨상에 수학분야가 없는 탓에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립니다. 한국계로 기초과학 분야 최고상은 처음입니다. 허준이의 경우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습니다.

2. 첫째, 천재는 타고난다는 점입니다. 머리와 환경을..

허준이의 아버지는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 어머니는 이인영 서울대 노어노문과 명예교수입니다. 부모가 유학중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 상문고 1학년 자퇴했습니다. 어머님은 ‘야간자율학습이 많아 건강에 좋지않다’며 받아들여주었습니다. 저녁엔 같이 산책하고 주말엔 영화 보고..여유가 있었기에 심리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었고..그 덕에 수학처럼 추상적인 학문에 관심을 둘 수 있었다고 합니다.

3. 둘째, 한국의 교육환경이 천재를 바보 만들뻔 했습니다. 담금질이 빠질 수 없습니다.

허준이는 수학을 좋아해 중3 당시 과학고 진학과 경시대회 출전을 희망했는데, 선생님이 ‘너무 늦었다’고 하는 바람에 스스로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인이 되겠다며 자퇴합니다.
1년간 PC방을 들락거리다가 검정고시로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입학했습니다. 여기서도 방황을 거듭하다가 3학년 때 우울증에 걸려 전과목 낙제했습니다.

4. 셋째, 좋은 스승이 천재를 깨어나게 합니다. 운명적입니다.

1970년 필즈상 수상자인 일본인 히로나카 헤이스케(91)하버드 명예교수가 스승입니다. 낙제사태로 학부를 6년이나 다니는 바람에 서울대 초빙교수로 온 히로나카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허준이는 ‘인생의 전환점’이라 말합니다. 그가 당시 느낀‘수학하는 기쁨’을 ‘악보만 읽던 사람이 음악을 처음 들은 것’에 비유했습니다.
허준이는 대학원에 진학해 히로나카의 지도를 받습니다. 이어 히로나카의 추천으로 미국에 유학합니다. 유학 첫해 수학계의 50년 묵은 난제(리드추측)을 풀어내 세계적 스타가 됩니다. 미국적이라 징집에서 자유로웠습니다. 이후 승승장구..과학전문지가 ‘18살에 테니스 배워 20살에 윔블던 제패’라 비유했습니다.

5. 넷째, 한 분야에서 통달하면 세상을 보는 통찰력이 생기나 봅니다. 인터뷰마다 명언입니다.

‘먼 길을 돌아 적성을 찾았는데, 돌아보니 그 길이 가장 제게 알맞는 길이었다. 목표를 정해두고 생각대로 풀리지 않더라도 조급하거나 집착하지 않길 바란다.’

‘정말 이걸 사랑한다는 강렬한 끌림을 느끼는 사람이 그 분야를 특화해 계발하는 과정에서 천재가 된다.’

6. 다섯째, 대가를 이루면 인간적으로 소박하고 담담해지나 봅니다.

가장 솔직한 수상소감은 ‘부모님이 좋아하실 거 같다’입니다. 부담감은 ‘(수상 때문에) 조용한 삶과 연구작업이 흔들릴까’라는 우려랍니다.
평소 소망은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할 것. 그리고 수학을 향한 호기심을 끝까지 유지할 것’이랍니다.
그 소망 꼭 이뤄지길..
〈칼럼니스트〉
2022.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