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권에서 수사돼야 할 것 중 수사가 안 된 게 꽤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이 같은 한마디에 경찰이 발칵 뒤집혔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진 경찰 수사의 중립성을 의심하는 듯한 이런 발언이 현 정권에서의 재수사를 언급하는 맥락으로 읽혀서다. 경찰 내부는 “경찰 수사권까지 통제하겠다는 시도”라며 즉각 반발했다.
“전 정권 수사” 언급한 장관, 경찰 발칵
이 장관은 5일 공개된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 보복으로)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뻔한 잘못을 가만 놔두는 것도 정말 불공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 정권에서 ‘묻혔을’ 수사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행안부 장관이 직접 하고 나선 것이다.
이런 발언을 두고 당장 경찰에서는 “수사권 통제”라며 불쾌해하는 반응이 나왔다. “인사·감사를 넘어 수사까지 쥐려는 본색이 드러났다”(경위급 경찰)면서다. 한 일선서 경찰 관계자는 “예견된 수순이라 행안국 설치에 반대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어서 우리끼리는 ‘놀랍지도 않다’는 반응”이라는 것이다. 경찰대 출신 한 간부도 “사실상 수사 가이드라인을 준 것인데 국가에 충성하는 경찰이 아니라 정권에 충성하는 경찰을 만들려는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대통령도 아니고 국기문란”
국가 행정의 사무·치안 등을 담당하는 행안부의 수장이 경찰 수사를 언급한 건 부적절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일선서 경찰 간부는 “국무총리나 대통령도 아니고 행안부 장관이 경찰 수사를 언급하는 건 도리어 국가를 완전히 흔드는 ‘국기문란’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한 총경급 경찰도 “법무부 장관도 아니고 행안부 장관이 경찰 수사를 언급하는 일은 처음 본다. 현 정권에서나 볼 수 있는 의외의 일 아닌가”라고 짚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경찰청은 소속만 행안부인 외청이고 정부조직법·경찰법 등 법으로 맞춰져 있는 조직인데 이런 조직을 무시하고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완전한 ‘패싱’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행정부의 정무직 장관이 할 수 있는 권한 범위를 넘어섰다”고 덧붙였다.
이상민 “수사 이래라저래라 아냐” 한발 물러서
이 장관은 이날 오후 경찰청장 후보자 제청 관련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자 “수사는 경찰청에서 알아서 하는 거고 내가 수사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현 정부에서 재수사 등을 협의하거나 계획한 것은 없다”는 게 이 장관 설명이다.
이날 차기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윤희근 후보자는 “(이 장관이) 해경에서 있었던 사건(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 사건)을 예로 든 거로 안다. 아직 경찰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보고를 듣지 않아 사안을 파악해보겠다”라고만 반응했다. 이에 대해 경찰 사이에서는 “현 정권이 사실상 고른 인사다. 서서히 조직 장악이 시작되고 있다”(경감급 경찰)며 경찰 수사 독립성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