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윔블던은 '악동 키리오스쇼'...8강 돌풍에 빨간 조던 모자·운동화 마이웨이

중앙일보

입력

빨간 조던 모자를 쓴 키리오스. 윔블던엔 흰색 복장을 입어야 하는 규정이 있다. [AFP=연합뉴스]

빨간 조던 모자를 쓴 키리오스. 윔블던엔 흰색 복장을 입어야 하는 규정이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프로농구(NBA)를 떠올리는 헐렁한 민소매 유니폼과 챙을 뒤로 돌려 삐딱하게 쓴 모자 그리고 왼쪽 귀걸이와 목걸이. 큼지막한 가방엔 퇴근길에 착용할 빨간색 조던 운동화와 모자가 들었다. 힙한 패션의 주인공은 콘서트에 나서는 래퍼가 아니다. 올해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화제를 몰고 다니는 '코트의 악동' 닉 키리오스(40위·호주)의 경기 복장이다.

기행이 잦지만, 실력도 뛰어난 키리오스. 윔블던 8강에 올랐다. [신화통신=연합뉴스]

기행이 잦지만, 실력도 뛰어난 키리오스. 윔블던 8강에 올랐다. [신화통신=연합뉴스]

키리오스는 5일(한국시간) 끝난 2022 윔블던 남자 단식 16강에서 브렌던 나카시마(56위·미국)를 3시간 11분간의 혈투 끝에 3-2(4-6, 6-4, 7-6〈7-2〉, 3-6, 6-2)로 이겼다. 키리오스가 윔블던 8강에 오른 것은 19세에 와일드카드 자격으로 출전한 2014년 대회 이후 처음이다. 미국 뉴욕 타임스는 "올해 윔블던은 '키리오스쇼'다. 한 차례 더 앙코르 공연이 이어진다"고 전했다. 뉴욕 타임스 평가대로 올 윔블던은 우승 후보 노박 조코비치(3위·세르비아)나 라파엘 나달(4위·스페인)보다 키리오스가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여자 친구와 동행한 그는 코트 밖에서 과감한 애정 표현으로 관심을 끌고, 경기에선 화려한 경기력과 기행으로 주목받았다. 불량스럽다는 지적도 있지만, 쇼맨십으로 받아들여 환호하는 팬도 많다. 뉴욕 타임스는 그를 "카리스마 넘치는 나쁜 녀석"이라고 표현했다.

다혈질인 키리오스는 불같은 성격이 코트에서 드러난다. [AP=연합뉴스]

다혈질인 키리오스는 불같은 성격이 코트에서 드러난다. [AP=연합뉴스]

다혈질인 키리오스는 코트에서 불같은 성격을 주체하지 못한다. 상대 선수는 물론 심판, 관중 등과 수시로 언쟁을 벌이는 등 충돌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만 두 차례 벌금 징계를 받았다. 지난 2일 단식 3회전 2세트 후 상대 스테파노스치치파스(4위·그리스)가 공을 관중석 쪽으로 치자, 키리오스가 페널티를 줘야 한다고 주심에게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비속어를 사용해 윔블던조직위원회로부터 벌금 4000달러(약 520만원) 징계를 받았다. 치치파스는 경기 후 "키리오스는 사악한 성향"이라고 비판했다. 폴 주브(영국)와 1회전이 끝난 뒤엔 경기 내내 언쟁을 벌이던 팬이 앉은 관중석을 향해 침을 뱉어 벌금 1만 달러(약 1300만원) 징계를 받았다. 네 경기를 치르는 동안 누적된 벌금 총액만 약 1820만원이다.

올 윔블던에서만 벌써 두 차례 벌금 징계를 받았다. [AP=연합뉴스]

올 윔블던에서만 벌써 두 차례 벌금 징계를 받았다. [AP=연합뉴스]

영국 익스프레스는 4일 "키리오스의 통산 벌금 액수가 70만 파운드(약 11억원)에 가까워졌다"고 보도했다. 키리오스가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에서 번 통산 상금은 990만 달러(약 129억원)다. AFP는 4일 키리오스의 '기행 베스트 5'를 선정해 발표하기도 했다. 대부분 분을 참지 못해 라켓 여러 개를 연달아 내리쳐 부러뜨리거나 경기장을 무단이탈한 사례다. 키리오스는 이날도 파격 행동을 했다. 경기가 끝나자 가방에서 미리 준비한 빨간색 조던 운동화와 모자를 꺼내 착용했다. 윔블던은 선수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흰색 복장을 갖춰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물론 선수가 코트에 입장할 때 적용되기 때문에 규칙을 어긴 것은 아니다. 그는 빨간색 신발과 모자 차림으로 바꾼 것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고 답했다.

어깨 부상을 딛고 경기를 이긴 키리오스. [EPA=연합뉴스]

어깨 부상을 딛고 경기를 이긴 키리오스. [EPA=연합뉴스]

그는 단순 트러블메이커(문제아)에 그치진 않는다. 키리오스는 세계적인 선수들이 인정하는 실력을 갖췄다. 키 1m93㎝의 장신인 그는 높은 타점에서 꽂히는 시속 200㎞ 이상의 파워 서브가 주무기다. 서브 에이스를 쉽게 따낸다. 자존심 강한 조코비치가 "(서브) 에너지가 최고"라고 극찬을 정도다. 덕분에 20대 초반 세계 13위까지 올랐다. 단순히 힘만 앞세운 건 아니다. 그는 베테랑 선수 못지않게 네트 플레이가 섬세하다. 이날은 부상 투혼도 발휘했다. 그는 어깨 부상 속에 경기 중 응급 치료를 받고 뛰어 박수를 받았다. 키리오스는 "오늘은 모두에게 다른 소동 없이 내가 정말 테니스를 잘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키리오스는 고공 파워 서브가 주무기다. [AP=연합뉴스]

키리오스는 고공 파워 서브가 주무기다. [AP=연합뉴스]

8년 전 윔블던 8강 돌풍을 일으켰을 당시 16강에서 나달을 꺾었다. 키리오스는 이번 대회에서도 나달과 맞붙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크리스티안 가린(43위·칠레)과 준결승 진출을 다툰다. 여기서 이기면 나달-프리츠 경기 승자와 맞대결한다. 키리오스는 이날 8강 진출 확정 후 인터뷰에서 "8년 전 나달과 경기를 앞둔 나를 에이전트가 새벽 4시에 술집에서 끌어냈던 기억이 떠오르는데, 그날 이후로 정말 먼 길을 돌아왔다"면서 "오늘은 꼭 와인 한 잔을 마셔야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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