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재 K리그 심판 투잡 뛰나요?" 축구팬 놀래킨 그의 정체

중앙일보

입력 2022.07.05 10:17

업데이트 2022.07.05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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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축구대표팀 김민재(왼쪽)를 똑닮은 K리그 심판 정동식(오른쪽). 큰 덩치에 웃는 모습까지 닮았다. 김현동 기자, [연합뉴스]

축구대표팀 김민재(왼쪽)를 똑닮은 K리그 심판 정동식(오른쪽). 큰 덩치에 웃는 모습까지 닮았다. 김현동 기자, [연합뉴스]

‘김민재가 투잡 뛰는 건가요? 새벽에 터키(튀르키예) 프로축구에서 뛰더니, 왜 저녁에 K리그 심판을 보고 있죠?’

한 네티즌이 축구 커뮤니티에 남긴 글이다. 튀르키예 프로축구 페네르바체 중앙수비 김민재(26)와 똑닮아 화제인 K리그 심판 정동식(42)을 재치 있게 표현한 거다.

최근 경기도 하남시 송종국 축구교실에서 정동식 심판을 만났다. 실제로 보니 큰 덩치부터 웃는 모습까지 김민재를 쏙 빼닮았다. 정동식 심판은 “김민재 선수가 절 닮은거다. 1996년생인 김민재 선수보다 1980년생인 제가 16살 더 많다”고 말할 만큼 유쾌했다. 그는 K리그에서 주심으로만 166경기를 본 10년차 베테랑 심판이다. 한국축구대표팀 주전 중앙수비수 김민재는 수비의 핵이다.

축구대표팀 김민재를 똑닮은 K리그 심판 정동식이 레드카드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현동 기자

축구대표팀 김민재를 똑닮은 K리그 심판 정동식이 레드카드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현동 기자

-김민재를 닮았다는 얘기를 처음 들은 건 언제인가.
“그 전에도 간혹 들었지만, 작년 9월경 헤어 스타일을 바꾼 뒤 닮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김민재 선수와 비슷한 머리스타일은 전혀 의도한 게 아니다. 사실 전 닮았다는 생각이 안 든다(웃음).”

-김민재는 키 1m90㎝, 체중 87㎏다. 정동식 심판의 체격은.
“1m83㎝에 85㎏다.”

-‘김민재가 심판으로 투잡 뛰는 건가’, ‘짭동식(짝퉁 정동식)’ 등 팬들이 재미있는 댓글을 단다.
“많이 챙겨본다. 재미있고, 유쾌하고 즐겁다. 조용한 삶을 살아왔는데, 요즘 삶에 활력소다.”

-김민재로 착각하는 팬들이 많나.
“지난달 한국-브라질, 한국-이집트 평가전이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 갔다. 경기장 앞에서 ‘와~ 김민재다’, ‘김민재 맞네?’라며 팬들이 몰려왔다. ‘저 아닙니다’고 했더니 ‘거짓말 마세요’란 답이 돌아왔다. 경기 후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데 한 분이 쓰윽 다가오더니 ‘김민재 선수, 발목 괜찮으세요?’라고 묻더라(김민재는 발목 부상 탓에 대표팀에 소집되지 않았는데 이 관중은 정 심판을 김민재로 착각한 것이다). 사실 관중석에서 바라보는 축구는 어떤지, 팬들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느껴보고 싶어 경기장에 간 거다. 서포터스 붉은악마석에서 혼자 봤는데, 팬문화가 대단했다. 진짜 축구를 사랑하고 열정적이시더라. ‘소중한 팬들을 위해 명확하게 오심 없이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선수들도 한 번 관중석에서 경기를 본다면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거다.”

축구장에서 팬들에게 사인해주는 정동식 심판. [사진 정동식 인스타그램]

축구장에서 팬들에게 사인해주는 정동식 심판. [사진 정동식 인스타그램]

-김민재가 2017, 2018년에 K리그 전북에서 뛰었다. 김민재가 뛴 경기에서 심판을 본 적이 있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난 2017, 18년에 2부 리그 심판을 봤다. 당시 김민재 선수도 신입 선수였다. 내가 김민재 선수가 뛴 경기에서 대기심을 봤을 가능성은 있다.”

-그라운드에서 선수들 반응은 어떤가.
“김민재와 친한 김천 상무의 수비수 정승현 선수가 절 볼 때마다 ‘진짜 닮았어요. 똑같이 생겼어요’라고 한다. ‘민재한테 연락하라 그래’라고 했더니 정승현 선수가 ‘민재가 더 유명한데 선생님이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되묻더라(웃음). 제주에서 수원FC 연습경기 주심을 본 적이 있는데 이승우 선수가 절 보면 자꾸 웃는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다음에 만나면 물어보려고 한다.”

축구대표팀 중앙수비 김민재. [연합뉴스]

축구대표팀 중앙수비 김민재. [연합뉴스]

-축구 선수 출신인데. 설마 김민재처럼 수비수였나.
“그렇다. 중앙수비, 스위퍼, 풀백 등 수비를 봤다. 신정초-중대부중-중대부고-선문대를 나왔다. 김민재 같은 대선수와 비교하면 욕 먹는다. 다만 저도 몸싸움과 태클을 하고 몸으로 부수는 스타일이긴 했다. 고교 시절 차두리를 상대했는데 워낙 빨라서 못 막았다. 엄청 몸이 좋고, 힘이 좋고, 멘탈이 강했다. 한 번은 제가 헤딩 하다가 이천수의 발에 관자놀이를 맞아 실려나간 적이 있다. 다시 들어가서 쫓아갔는데 너무 빨라서 잡질 못했다.”

-군 복무는 어디서 했나.
“2003년 졸업하고 육군 학사장교로 임관해 3년4개월간 복무했다. 육군 26사단에서 소대장, 73사단에서 수색중대장을 했다. 2005년쯤 육군, 해병대, 특전사 등 전군이 참가한 육군참모총장배 축구대회에서 우승했다. 최우수선수상인 국방부장관상도 받았다. 전 수비만 했고, 병사였던 안양 치타스 공격수 출신 정광민 선수가 혼자 다했다. 부대장님이 내게 장기 복무를 권유하기도 했다.”

-심판은 언제 시작했나.
“축구를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작해 대학교 1학년까지 했다. 스물 한 살이던 2000년에 실력이 안돼 그만뒀다. ‘내가 선수로서 K리그나 국가대표에 갈 수 있을까’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전공은 사회체육학과였고 축구를 해왔으니 심판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2001년에 대한축구협회 심판자격증 3급, 2002년에 2급, 2003년에 1급을 땄다.”

대학교 때까지 수비수로 뛰었던 정동식 심판. 김현동 기자

대학교 때까지 수비수로 뛰었던 정동식 심판. 김현동 기자

-K리그 심판은 언제부터 했나.
“2013년에 2부리그 안양 경기에서 심판 데뷔전을 했다. 그 전까지는 2003년부터 10년간 아마추어와 내셔널리그에서 활동했다. 고등부, 대학 U리그에서 하루 종일 심판을 보고 수당 8~10만원 정도 받았다. 세보니 K리그 주심은 166경기 정도 봤다. 프로 심판까지 가는 길이 힘들다. 그래서 군대 가기 전에는 투잡, 스리잡, 포잡, 파이브잡, 식스잡, 세븐잡까지 했다.”

-세븐잡까지 했나.
“전 1999년 집을 나와 신도림역 2번 출구에서 2000원 가지고 출발했다. 오갈 데 없는 신세였다. 22살 땐 잠을 2~3시간 밖에 안 잤다. 신문 배달, 우유 배달을 했고, 신도림역 앞에 복지관에서 노숙자 상담원을 했다. IMF 외환위기로 노숙자가 늘었는데, 그들을 설득해 쉼터에 데려가 일자리를 소개해주고 관리하는 역할이었다. 당시 월급은 50만원이었다. 어린 나이에 해보지 못할 인생 경험을 했다. 아마추어 심판 시절 신용카드 영업, 스포츠용품 판매 영업도 했다. 주말에는 막노동을 뛰었다. 세신사 보조 역할도 했는데 옆에서 물을 뿌렸다. 대리운전도 했다.”

경기가 없는날에는 화물운전을 하는 정동식 심판. [사진 정동식]

경기가 없는날에는 화물운전을 하는 정동식 심판. [사진 정동식]

-요즘 경기가 없는 날에는 화물 운송 기사를 한다고.
“1년7개월째 하고 있다. 심판 배정이 없는 날에는 강남과 을지로 등 수도권 지역에서 화물 용달 퀵서비스를 한다. 박스 10~20개, 쇼파 등을 옮긴다. 3만원 벌면 수수료 23%를 낸다. 그래도 내가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일이다. 컨디션 관리 차원에서 경기 전날에는 하지 않는다. 요즘 일주일에 1경기 주심을 보고, 그 다음주 대기심이나 VAR 심판을 본다. 한 달에 4경기 정도를 맡는다. K리그1 심판도 수당으로 받는다. 경기당 주심은 200만원, 부심은 110만원, 대기심은 50만원이다. K리그 심판은 1, 2부를 합해 50명 정도다. 시즌은 3월부터 11월까지 9개월이며, 연간 4000~5000만원을 받는 심판은 4~5명 밖에 안된다. K리그2로 강등이 된다면 연봉이 2000~3000만원으로 확 줄어든다. 11살, 9살, 6살 아들이 셋이다. 자식들한테 가난을 대물림 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

-화물 운송을 하다가 알아본 팬도 있었나.
“한 여성 분이 ‘김민재 닮은 심판 분 아니에요? 마스크 한 번만 벗어보면 안돼요?’라고 하셨다. 축구 팬이었고 사인을 요청하셨다. 정동식만 쓰면 밋밋해서 고민하다가 ‘식’의 받침 ‘ㄱ’ 뒤에 김민재를 연결 시켜 사인했다. 반응이 좋아서 계속 그렇게 하고 있다.”

정동식 심판의 사인. ‘식’의 받침 ‘ㄱ’ 뒤에 김민재를 연결 시켰다. [사진 축구 커뮤니티]

정동식 심판의 사인. ‘식’의 받침 ‘ㄱ’ 뒤에 김민재를 연결 시켰다. [사진 축구 커뮤니티]

축구대표팀 김민재는 캐틸락으로부터 SUV 에스컬레이드를 지원 받았다. [사진 캐딜락]

축구대표팀 김민재는 캐틸락으로부터 SUV 에스컬레이드를 지원 받았다. [사진 캐딜락]

-소셜미디어에 김민재를 패러디한 사진을 올렸던데.
“김민재 선수가 캐딜락 차량 SUV를 지원 받은 사진을 보고, 나도 현대차 스타렉스 앞에서 같은 포즈로 찍은 사진을 올렸다. 내가 지방 경기 가거나 용달 화물 배송을 할 때 타는 차량이다. ‘김민재 아님’이란 해시태그를 달았다.”

김민재를 패러디한 사진을 SNS에 올린 정동식 심판. [사진 정동식 인스타그램]

김민재를 패러디한 사진을 SNS에 올린 정동식 심판. [사진 정동식 인스타그램]

김민재를 패러디한 사진을 SNS에 올린 정동식 심판. [사진 정동식 인스타그램]

김민재를 패러디한 사진을 SNS에 올린 정동식 심판. [사진 정동식 인스타그램]

-김민재가 뛰고 있는 튀르키예에 가면 현지 사람들이 사인 요청을 하는거 아닌가.
“그럴지도 모르겠다(웃음). 페네르바체 유니폼 뒤에 스폰서가 있길래 찾아보니 과자 회사더라. 김민재 선수는 몸값이 비싸니 광고모델로 절 쓰라고 하고 싶다.  ‘가짜 유사 제품에 속지 마세요’란 콘셉트로 광고를 찍으면 어떨까. 하하.”

-김민재는 토트넘 이적설이 나온 적이 있다. 꿈 같은 일이지만, 김민재가 토트넘에 입단하고, 토트넘 방한 경기 때 심판을 맡게 된다면 어떨까.
“완전 퍼펙트하죠. 주심 배정은 심판위원회에서 하니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른다. 만약 김민재 선수가 토트넘 이적하고, 제가 주심을 본다면 재미 있고 이슈가 될 것 같다. 김민재 선수가 뛰는 경기를 맡아도 동일하게 경기 규칙에 입각해 판정하겠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

축구대표팀 수비수 김민재를 닮은 정동식 심판. 김현동 기자

축구대표팀 수비수 김민재를 닮은 정동식 심판. 김현동 기자

-최근 K리그에 오심이 늘면서 팬들의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
“오심이나 징계를 받으면 배정이 정지 당하고, 연말 평가 때 하부리그로 강등된다. 난 2013년 2부에서 시작해 2015년 1부로 올라갔다가, 2017년 당시 강등됐다가, 2020년 다시 1부로 올라왔다. 매 경기 오심을 최대한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양 팀 지도자, 팬들이 항의 없이 ‘수고 했습니다’라고 조용히 격려 해주시면, 만족할 만한 경기였던 거다. 관심은 감사하지만 부담도 된다. 경기 후에 같이 사진 찍자는 팬, 욕하는 팬 양 갈래로 나뉜다. 욕 먹을 수 있기에 늘 조심한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심판은 매력적인 직업인가, 고독한 직업인가.
“학교 체육교사, 축구교실 강사 등을 하며 심판을 병행하는 분들이 있다.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심판의 길을 선택하는 분들도 있다. K리그 유명한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며 뛸 수 있는 건 큰 영광이다. 한편으로는 심판은 욕 먹는 직업이다. 지방 경기를 마치고 밤에 고속도로를 운전해 올라올 때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깨끗하게 끝나지 않은 경기에서 팬들로부터 야유를 받고 악플이 달리면 서럽고 서글프다. 내 편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꿈은.
“매년 초에 체력 테스트에서 떨어지면 심판 자격이 박탈된다. 그래서 거의 매일 올림픽공원을 5~10㎞씩 달린다. SNS에 운동일지를 올린다. 술은 거의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핀다. 심판은 50세까지 나이 제한이 있었는데 지금은 체력이 되는 한 계속 할 수 있게 됐다. 50세까지 200경기, 300경기 오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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