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최훈 칼럼

대통령의 무덤 ‘관료주의의 포로’

중앙일보

입력 2022.07.05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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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훈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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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하나. 가장 오래 부침 없이 권력을 이어 온 우리의 지배 계층은. ① 대통령 ② 의회 ③ 재벌 ④ 관료. 제헌의회는 1948년 5월, 초대대통령은 그해 7월이었다. 최초의 기업집단은 1896년 서울 종로의 ‘박승직 상점’(이후 두산상회)부터인 두산그룹이다. 정답은 ④번. 조선 개국 직후인 1394년 정도전이 조선경국전 등을 통해 “임금은 재상의 인사권을 갖고, 재상이 의정부를 통해 6조를 관할한다”는 관료제를 도입하면서였다.

임금을 섬기지만 은근히 견제도 해가며 관료는 조선을 지배했다. 일제 식민통치 때는 메이지 시대 프로이센(독일)을 본뜬 중앙집권식 전문 관료제가  이식됐다. 국민 위에 군림한 강력한 관료 문화였다. 근대화의 효율, 속도를 중시한 대통령으로부터 막강한 권한을 위임받은 박정희 시대는 관료의 전성기였다. 기여와 함께 그 후유증도 커져 갔다. ‘선민(選民) 관료’의 사회가 고착됐다. 견제해야 할 의회, 정당, 지방자치, 법원 등도 허수아비가 됐다.

5년 대통령이 관료에 포위되면
규제 철폐 등 개혁 물거품 우려
관료보다 민간·현장 귀 기울여
‘국민 자유 확대’ 약속 이뤄가길

민주화 이후 선거를 통해 운명이 결정되는 대통령이나 의회는 그래도 조금씩 ‘민주’를 받아들이며 진화해 왔다. 대기업 역시 효율·경쟁 등 시장의 논리와 ‘소비자 주권’에 반응하며 눈을 떠 왔다. 그러나 젊은 시절 한 차례의 시험이 나눠 준 작은 권력 이후, 조직의 이익과 자신의 성공에 길들여져 온 우리 관료 조직의 영혼과 DNA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혜량할 길이 없다. “국민이 진정한 나라의 주인”이란 민주주의로의 독실한 세례(洗禮)나 자기 정화(淨化) 과정을 그들이 스스로 거친 적이 없다. 사각지대의 그림자 권력, 바로 관료였다.

# 청와대 개방 이후 시민들에게 허용됐던 북한산 등산로 입구가 봉쇄됐다. 길 옆의 헌재소장 공관이 불편하다는 이유였다. 고관의 심기 불편에 아예 시민의 ‘자유’를 막아버렸다. 조선 고관의 행차 때 “쉬 물렀거라”를 목청 높이면 걷던 자 멈추고, 앉은 자 서며, 말탄 자 내렸다. 가로지르면 구금이다. 지금이 조선 시대인가. 침묵으로 무시하다 아무런 해명도 없이 다시 슬그머니 길을 여는 데 한 달이 걸렸다. 지난해 민주당 의원들의 헌재 광주(光州) 이전안 발의에 헌재의 반대 입장은 이랬다. “헌재는 국민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최대한 고려해야 한다.” 국민보다 자기 이익 방어에만 철통인 건 변하지 않은 관료들의 현주소다.

# 누리호 솟아오른 뒤 카메라 앞에 선 이들은 취임 40일 된 과학기술부 장관(발사 성공)과 차관(위성 교신)이다. 이 역사적 장면의 주역은 십수 년간 묵묵히 헌신해 온 공학자들이어야 했다. ‘박세리 키즈’처럼 후대의 예비 영웅들에게 영감을 주는 건 현장이다. 힘든 이공학도의 길보다 관료의 평생 꽃길을 각광받게 한 역사적인 실수였다. 중앙 부처의 기술직 출신 고위 공무원은 13.8%에 불과하며 예산·조직의 실권은 대부분 고시 출신 인문계 행정관료(국민의힘 조명희 의원실 자료)다. 영원한 ‘사농공상(士農工商)’이다.

# 한 의원의 장관 시절 회상. “취임 직후 관료들이 나를 밖의 유관 단체 행사로 돌리더라. 여기저기 박수 받고 자신감도 붙으니 초심의 긴장이 풀어지더라. 몰랐지만 바로 그때가 ‘관료들의 포로’가 되는 시간이었다. 부처는 새 대통령과 장관을 거미줄의 포로로 만들 오랜 노하우 족보가 있다. 부처의 최고 관심사? 대통령이 광을 내며 참석할 부처의 행사 만들기다.” 노회한 외교관들을 그토록 비판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해외 순방 때 박수를 받으며 다니다 “우리 외교부 참 유능하다”(말레이시아 순방)고 말하는 데는 단 1년10개월이 걸렸다.

# “기업이 정부다” “풀 수 있는 규제 다 풀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에 따라 경제 규제 혁신TF가 구성된다. 그런데 TF 팀장이 경제부총리다.  총괄반은 기재부 1차관이, 산하의 7개 작업반은 해당 부처 차관이 맡는 그림이다. 민간 전문가도 참여시킨다는 꼬리표가 달렸다. 그러나 규제를 죽일 최종 결정을 왜 규제를 출산한 이들에게 맡기는가. 대학을 질식시킨 교육부의 촘촘한 그물망 규제를 과연 교육부 차관이 없앨 수 있을까.

자유로워진 사람들은 창의적이다. 규제를 벗어난 자유는 창의를 부른다. 창의의 효율이 보상받고 그 성과를 공유하는 사회가 우리의 미래다. 자유와 창의, 효율에 대한 보상에 가장 둔감한 이들은 바로 관료다. 역대 대통령 모두 완벽히 실패한 게 규제개혁이다. 민간의 결정권 확대 없이 그런 성공의 기적이란 없다.

윤 대통령은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약속했다.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국민 자유의 확대를 통해서”라고 선언했다. 시대 흐름 잘 포착한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5년 대통령이 영속적 관료 집단의 포로가 되는 순간 개혁은 끝장이다. 그토록 유능하다는 관료·검찰 주축의 조각(組閣) 인사가 왜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첫째 요인으로 꼽히고 있을까. 관료와 규제에 오래 시달려 온 침묵의 현장은 그 답을 알고 있다. 그러니 저잣거리 시민들에게 대통령이 먼저 귀를 열라. 그래야 국민에게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있다. 그래야 언젠가 그에 따른 책임인 고통분담도 호소할 수 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뿐이다. 대통령 곁 ‘자기들끼리 유능한 관료’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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