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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민우의 시시각각

'떼법'에 굴복한 옥주현…그녀 저격한 뮤지컬계의 숨은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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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최민우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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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배우 옥주현의 '친분 캐스팅'으로 시끄럽다. 대형 뮤지컬 '엘리자벳'이 10주년 공연을 하는데, 옥주현이 자신과 같은 소속사 배우 이지혜를 주인공에 더블 캐스팅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게 논란의 큰 줄기다. 민감한 '공정' 이슈를 건드렸다. 옥주현이 사과했지만 잡음은 여전하다.

옥주현 겨냥한 '친분 캐스팅' 공격 #억지에 가까운 일종의 마녀사냥 #'팬덤'에 휘둘리는 정치권과 유사

뮤지컬 ‘엘리자벳’에 2012년 초연부터 출연해온 옥주현. [사진 EMK 뮤지컬 컴퍼니]

뮤지컬 ‘엘리자벳’에 2012년 초연부터 출연해온 옥주현. [사진 EMK 뮤지컬 컴퍼니]

옥주현은 '엘리자벳' 2012년 국내 초연 때부터 작품이 오를 때마다 빠지지 않고 출연했다. 작품 성공에 일등공신으로 평가받았고, 제작사도 이를 고려해 10주년 공연 출연 회차의 70%를 옥주현에게 배당했다. 나머지 30% 출연분만 다른 배우들 몫이라는 뜻이다. 특급 배우라면 썩 내키지 않는 비율이다. 과거 '엘리자벳'을 연기했던 몇몇의 이름이 거론됐지만, 최종 낙점은 이지혜였다. 이 과정에서 옥주현이 압력을 가했는지, 생떼를 썼는지는 그와 제작사만 알 것이다. 그런들 무슨 상관이랴. 사적 계약 아닌가. '엘리자벳' 제작사 EMK는 엘리자벳 이외 '레베카' '웃는 남자' '마타하리' '팬텀' 등 굵직한 뮤지컬을 다수 만든 제작사다. 바보가 아니라는 얘기다. 게다가 이지혜는 인지도가 높진 않지만, 성악과를 졸업하고 2012년 데뷔해 '지킬 앤 하이드' 등에 출연했던 실력파다. 낙하산으로 치부할 수 없다.

사태가 커진 데엔 '친분 캐스팅' 프레임이 작동해서다. 친분 캐스팅이 나쁘다면 그럼 생판 모르는 사람을 섭외하란 얘기인가. 캐스팅은 공채 시험이 아니다. 국가 공무원을 뽑는 과정도 아니다. 공개 오디션도 하지만 대개 아는 사람, 해봤던 사람, 아니면 친한 사람이 추천하는 사람을 기용한다. 그게 더 낫다는 것을 체득해서다. 그래서 '김수현 사단' '나영석 사단'이 존재하지 않나. 작가·감독은 그럴 수 있지만 배우는 캐스팅에 관여해선 안 된다? 그럼 예능계에서 유재석 라인, 이경규 라인이라고 공공연히 떠드는 건 또 뭔가. '죽이 잘 맞는' 사람과 일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친분 캐스팅=불공정'이란 논리야말로 억지다.

김호영의 "아사리판은 옛말, 지금은 옥장판"이라는 공격에 옥주현이 고소를 하면서 점화된 이번 사태의 변곡점은 이른바 뮤지컬 1세대 배우들의 호소문이었다. 이들은 외형적으로 '자제하자'고 했지만 내용적으로 "배우는 캐스팅 등 제작사 고유 권한을 침범해선 안 된다"며 사실상 옥주현을 저격했고, 이때부터 여론의 무게추는 '안티 옥주현'으로 급격히 기울어졌다. 그렇다면 되묻고 싶다. 여태 뮤지컬계 만연한 배우의 캐스팅 입김을 1세대 배우들은 전혀 몰랐나. 아니 본인들은 떳떳한가. 본인이 친한 후배 미는 건 유망주 '키워주기'이고 옥주현이 한 건 '끼워팔기'인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냉정히 보면 옥주현은 스타 권력이 아니다. 지명도가 높을 뿐, 옥주현이 출연한다고 무조건 '솔드 아웃'(sold out) 되지 않는다. 옥주현보다는 몇몇 남자 배우의 티켓 파워가 훨씬 강하다. 뮤지컬계 주류 관객이 여성이며, 이들의 '회전문 관람'이 흥행을 좌우하는 것과 연관이 깊다. 이 지점에 이번 사태의 숨은 진실이 있다. 그건 '왜 옥주현이 갑질을 했나'가 아니라 '왜 옥주현이 타깃이 됐나'다. 옥주현이 만만해서다. 옥주현에게 충성 관객이 적어서다. 다른 스타를 저격했다가는 팬덤에 조리돌림을 당할까 두려워 옥주현을 먹잇감 삼았다는 게 진실에 더 가깝다. 흡사 '대깨문'과 '개딸'이 무서워 엉뚱한 데 총질하는 민주당과 닮은꼴이다.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친분 캐스팅 논란은 여러모로 한국 사회 축소판이다. 옥주현 공격에 나선 이들은 무리 지어 공정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상 자신의 이익에 촉각을 세우는 좌파 집단주의와 유사하며, 옥주현 역시 호기롭게 완력을 구사하려다 떼거리의 반격에 꽁무니를 빼는 우파의 비겁함을 연상시킨다. 일부 미디어는 이번 사태와 무관한 익명 관계자의 폭로를 내부 고발인 양 퍼다 나르며 옥주현 물어뜯기에 가세했다. 아사리판 정치권보다 썩 나아 보이지 않는다.